[매경춘추] 차카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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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이 잘못되었거나 여러분 시력이 흐려지신 것이 아니다.
즉 지속가능성 논의 자체를 선진국들이 주도해왔기 때문에 논의를 따라가는 데 필수적인 정보와 자원,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후진국들에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당위를 무작정 강요하는 것으로는 실질적인 개선을 견인하기 힘들다.
2025년으로 예정되었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가 연기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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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이 잘못되었거나 여러분 시력이 흐려지신 것이 아니다. 제목을 '차카게' 지은 것이다. 이런 어구는 보통 풍자의 소재다. 이 어구가 새겨져 있을 만한 곳은 건달들의 우람한 팔뚝이며, 그 팔뚝은 흔히 선량한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있다. 정언명령이 폭력이 되는 순간은 실소를 자아낸다.
지속가능한 환경과 사회 그리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이미 법규범의 영역에 정착하고 있다. 분초를 다투고 있는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감안했을 때, 갈수록 분열되는 사회의 일촉즉발 현주소를 감안했을 때, ESG는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ESG는 이미 사실상의 정언명령이다.
그러나 명분이 강할수록 폭력의 여지도 커진다. 획일적이고 급조된 규제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문제를 파생시키고, 오히려 지속가능성을 해할 수 있다. 유명 외교저널인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작년 'Green Upheaval: The New Geopolitics of Energ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환경친화적 에너지만을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격차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네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선진국들이 △친환경에너지를 위한 각종 규제를 입법할 수 있는 힘 △공급망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후진국들은 협상력이 약함) △환경친화적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적 우위 △저탄소 연료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힘을 배타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속가능성 논의 자체를 선진국들이 주도해왔기 때문에 논의를 따라가는 데 필수적인 정보와 자원,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후진국들에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구도로 선진국들이 ESG 논의를 주도하는 경우 후진국은 영원히 선진국의 룰에 종속된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선·후진국 간 격차는 1990년대 이후 국제연합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는데,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지구적 노력이 역설적으로 이 격차를 증폭하는 차별적 구조가 될지도 모른다. E를 추구하다가 S를 훼손하는 셈이다.
E, S, G는 각각의 영역에서 상충할 수 있는 예민한 추이다. 따라서 ESG를 법규범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전에 ESG의 작용과 반작용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평평한 운동장의 룰이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 당위를 무작정 강요하는 것으로는 실질적인 개선을 견인하기 힘들다. 국내 규제의 실효적 여건이 마련되었는지, 행여 부작용은 없을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급증하는 해외 규제에 우리 기업들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유·무형으로 지원할 필요도 살펴야 한다.
2025년으로 예정되었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가 연기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미증유의 공시 자체에 힘을 빼게 되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위 그린 워싱, ESG 워싱은 '차카게 살자'의 사회적 비용이다. '차카게'가 아니라 '착하게' 살기 위하여, 함께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이우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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