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실례지만 댁의 자녀 대학은 몇 등인가요
대학서열 줄세우기 없어지고
'무조건 의대' 현상도 덜할 것
친구 아들이 수능 가채점 후에 본인이 매력을 느끼는 A대학과 지명도에서 근소하게 앞선다고 평가되는 B대학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두 대학의 점수 차라야 1~2점이다. 그 1~2점 차이로 기어코 대학 서열을 나누고 오랫동안 선망했던 학교 대신 다른 학교를 택하게 만드는 것이 한국 사회다.
친구 아들 덕분에 보게 된 내년도 입시 배치표가 32년 전 학력고사를 치고 나서 봤던 배치표와 대학 간 점수 간격까지 똑같은 것에 놀랐다. 몇몇 학과의 부침, 지방 대학의 몰락이 눈에 띌 뿐이다. 올해 재계 순위표를 10년 전인 2013년과 비교해보면 10위 안에 들던 2개 그룹이 탈락했고 나머지 기업 순위도 확 바뀌었다. 인서울 대학 서열은 32년 전과 지금이 똑같다.
미국, 일본에서도 대학 수준과 위세에 차이가 크다. 일본에서는 대체로 국립대가 사립대보다 인정받는다. 우리 수능에 해당하는 '대학입학공통테스트'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이 국립 도쿄대나 교토대에 간다. 한국인이 늘 하듯 "도쿄대와 교토대 중 어디가 더 좋은가" 현지인에게 물어보라.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며 "둘 다 좋은 대학"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한 끗의 서열 가름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학생들도 순위에 대한 의식 없이 평판이 비슷한 대학 중에서 형편과 선호에 맞는 대학을 택한다.
국립과 사립 간 직접 비교는 더 어렵다. 사립 전형 방식이 너무 다양해서다. 게이오대 같은 사립대는 부속 고교를 나온 졸업생을 별도 시험 없이 입학시킨다. 전속 계약처럼 일부 명문고에 추천권을 나눠주고 수십 년째 그 학교 학생들을 뽑기도 하고 별도 본고사를 치르기도 한다. 정원 상당 부분은 우리의 학생부전형에 해당하는 'AO(Admission Office)' 선발로 채워진다. 게이오대나 와세다대 같은 명문 사립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이 학교를 목표로 준비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게이오인'이나 '와세다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 도쿄대에 갈 실력이 안 돼 그 대학을 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스스로를 1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라이벌이 되는 것이다. 한국엔 1등과 2등, 2등과 3등이 있을 뿐이다.
종합대 기준 8~9위권으로 평가되는 사립대를 나온 70대 학원 사업가가 "나 때는 그 학교가 1~2등 했다"고 한다. 50년도 더 된 그 기억은 의심스럽다. 다만 그는 대학 본고사 세대였고 대학이 지금처럼 촘촘하게 점수로 등급화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본인이 모교를 사랑하고 1~2등으로 생각했다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본고사가 폐지된 1981년 이후 우리는 한 줄로 세워져 대학에 들어갔고 똑같은 줄에 맞춰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있다. 거기에서 파생된 부조리가 한국 사회의 숙환이 된 지 오래다. 지금 외줄로 된 학력 위계의 최정점에는 의대가 있다. 왜 최우수 인재는 무조건 의대인가. 그곳 점수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가령 공대에 흥미를 느껴도 점수에 따른 서열이 명확한 상황에선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 '점수가 아까워서라도' 의대에 가고 만다.
대학의 경쟁이라는 것은 더 나은 인재를 뽑는 경쟁이다. 지금 그 경쟁의 운동장은 문이 닫혀 있다. 대학에 인재 선발의 자율권이 없다. 국공립이야 그렇다 치고 왜 사립까지 수능 점수로 학생을 뽑아야 하나. 자율이 없으므로 경쟁이 없고, 경쟁이 없으므로 발전도 없다. 40년 전 서열 그대로 고만고만한 학생들을 받아 고만고만한 교육을 시켜 사회에 내보낸다.
대학에 선발 자율권이 주어지면 지금의 대학 서열은 10년 안에 형해화할 것이다. 서열이 붕괴돼야 인재가 나뉘고 '우리가 1등'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늘어난다. 오직 한 곳만 1등인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아마 더 행복할 것이다.
[노원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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