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수용 감독 영면…“한국 영화계, 온몸으로 보여준 가르침”[스경X현장]

김지우 기자 2023. 12. 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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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김수용 감독 영결식에서 배우 신영균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김수용 감독이 영화인들의 추모 속 영면에 들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수용 감독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날 영결식은 배우 강석우의 진행하에 고인을 기리는 묵념으로 엄숙하게 시작됐다. 정지영 장례위원장의 약력소개를 비롯해 배우 신영균, 제작자 황기성, 이장호 감독, 양윤호 감독, 배우 장미희, 김성수 감독, 김경식 청주대학교 예술대 학장 등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고인과 남다른 친분을 밝힌 신영균은 “난 1928년생이고 김수용 감독은 1929년생이다. 촬영장에서 처음 만나 동갑내기처럼 지냈다. 열 작품 정도 함께했다”며 “참 보고 싶었는데, 긴말하지 않겠다. 잘 가길 바란다. 먼저 가니 너무 안타깝다. 난 죽어서도 영화배우로 살고 싶다. 저세상에 가면 또 김수용 감독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김수용 감독 영결식 사회를 맡은 배우 강석우. 연합뉴스



황기성 대표는 “평생 진담을 농담처럼, 농담을 진담처럼 에둘러 말하길 좋아하던 분이다. 그렇게 많은 영화를 남기고 농담처럼 우리를 떠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누구보다 자기의 삶에 자신 있고, 고집 세고,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분이다. 당대 어떤 감독과도 비교되기를 거부했다. 자신만의 작품을 썼고, 누구보다 제자들을 사랑했다. 영화계엔 김수용 사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며 “우리들의 영원한 대생인 선배님, 한국 영화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를 주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장례위원장 이장호 감독은 “지금 이 시간 영화감독이라는 말이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고인은 1950년대 한국영화사를 빛낸 감독이다. 대단한 사명과 빛깔로 한국 영화의 새 영역을 개척하고 한 획을 그었다. 제가 영화감독 길을 걸어오는 동안 등불과 이정표로 자리했다. 빈자리가 크게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검열에 맞서 외친 창작의 자유, 소신이다. 당국이 영화의 장면을 삭제하자 고인께서는 50대 중반 연세에 ‘이런 상황에선 더 이상 창작활동을 할 수 없다’며 은퇴를 선언하셨다. 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잊지 못할 온몸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이다”면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구가 생각난다. 종교적 믿음대로 부디 환생하셔서 다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며 한국 영화의 내일을 열어가시길 바란다”고 추도사를 전했다.

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김수용 감독 영결식에서 장미희 장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미희는 “이 자리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제게 감독님은 커다란 산이셨고, 늘 우러러보던 어른이자 대 스승이셨다. 저는 감독님이 데뷔작을 만드셨을 때 태어났다. ‘한국의 영화 거장’ 김수용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듣고 자란 세대”라면서 “감독님은 청주대 연극영화과 교수로도 역임하셨다. 후배 양성에 생을 바치셨고, 그런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배우로서 지향점에 관해 감독님은 제 멘토셨다. 감독님이 보여주신 봉사 정신은 제가 꽃과 꿀만 따는 배우가 아닌, 단체에 기여하며 사랑받고 있는 것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줬다”고 존경을 표했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감독님을 충무로에서 본 마지막 세대가 저인 것 같다. 전 유현목 감독님의 제자다. 1988년 유 감독님 분부로 김수용 감독님을 뵙고 온종일 긴 대화를 나누고 정리한 기억이 있다. 그때 감독님은 참 정정하셨다”며 “감독님의 영화는 시대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투영했다. 삶의 피로와 외로움, 등뼈까지 아려오는 허기도 오롯이 담아내셨다. 관객들은 휘청이며 건너온 고달픈 세월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투사하며 따뜻하게 위로받았다. 시대 영화가 해야 할 일을 김수용 감독은 성실히 완수했다”고 회상했다.

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김수용 감독 영결식에서 김성수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김수용 감독은 지난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46년 서울사범학교 연극부 부장 연출가로 활동을 시작한 김수용 감독은 전쟁이 끝난 뒤 1958년 영화 ‘공처가’로 데뷔했다. 이후 ‘버림받은 천사’(1960) ‘굴비’(1963)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갯마을’(1965) ‘토지’(1974) ‘중광의 허튼소리’(1986) 등 109편 이상의 작품을 연출했다.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91년까지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2년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학과 특임강사 겸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임교수를 지냈다. 영화감독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장례식은 영화인장으로 치러졌으며, 아들 김석화 씨와 배우 안성기, 장미희, 이장호 감독, 정지영 감독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장례위원으로는 류승완 감독, 봉준호 감독, 윤제균 감독과 배우 김혜수, 문성근, 문소리, 민규동, 이영애,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등이 이름을 올렸다.

오늘(5일) 오후 1시 발인이 엄수됐다.

김지우 온라인기자 zwo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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