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이재명 때문이다”[김지현의 정치언락]
최근 이재명 대표를 향해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3일 발언입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텃밭인 광주에서 열린 박시종 전 청와대 행정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죠. ‘이재명의 민주당’이 누굴 욕할 자격이 있느냐는 취지입니다.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요즘 민주당은 안팎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원내지도부는 ‘검사 탄핵’에 이어 ‘김건희 특검’까지 정기국회 내에 밀어붙인다고 합니다.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강경파들은 매일같이 막말을 이어가고 있고요. 선거 전문인 민주당이 대체 총선을 코앞에 앞두고 왜 이러나 생각해봤는데, 결국 공통으로 이 혼란의 배경엔 이 대표가 있는 듯합니다.
● ‘이재명 수사 검사’들 줄줄이 탄핵
그런데 이 검사는 수원지검에서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인물입니다. 이 부분에서 충분히 잘 쌓아뒀던 민주당의 명분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죠. 충분히 의미 있는 의혹 제기마저도 ‘이재명 사법리스크’와 엮이는 순간 ‘결국 또 방탄?’이라는 반발을 사는 거죠. 심지어 민주당은 이 검사 후임으로 새로 이재명 수사를 맡은 안병수 수원지검 2차장 직무대리도 곧장 공격했죠. 안 검사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가까운 ‘친윤 사단’이며 “수사 무마 및 수사기밀 유출 의혹이 있다”는 겁니다.
이러니 당연히 여권에서는 “민주당이 대놓고 ‘방탄 탄핵’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3일 “민주당이 당 대표 사법리스크에 휩싸여 판사·검사를 겁박하고 내년 총선까지 더욱 난폭한 정쟁을 유발할 것으로 예견된다”고 했습니다. ‘다 이재명 때문’이라는 겁니다.
● “‘막말의 맏형’ 이재명”
요즘 정치부 기자들은 밤이고 주말이고, 강경파 현역 의원 및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 생중계를 지켜보느라 바쁩니다. 이들은 ‘상부상조’하듯 서로의 출판기념회를 찾아 격려사를 해주고 있는데, 여기서 연일 논란성 발언이 쏟아지고 있죠.
총선을 앞두고 일찍부터 터진 막말 논란에 당 지도부는 노심초사하며 거듭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강경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 폭탄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11월 19일 열린 민형배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선 ‘설치는 암컷’ 발언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총선에서 200석 달성’ 등 당 지도부가 하지 말라는 말만 골라서 하는 ‘막말 종합 세트’가 펼쳐졌죠. 지난주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출판기념회 생중계를 지켜보던 중 야권 원로라는 함세웅 신부가 나와 “방울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한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총리, 다 남자들이잖아요”라고 목소리를 높일 땐 정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인가” 싶더군요.
● 이재명의 “생존형 DNA” 탓
4년 만에 또다시 ‘꼼수 위성 정당’ 논란이 되풀이되는 배경에도 이재명 대표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11월 28일 유튜브 라이브에서 “(선거에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죠.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선 자신이 지난 대선 때 “위성정당은 절대 안 된다, 금지할 것”이라고 했던 약속도 깰 수 있다는 취지로 들립니다. 민주당 의원 75명이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 요구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이 어떤 수를 쓸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하고 나이브한 주장이라는 거죠.
결국 이 대표의 ‘현실론’은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대로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됐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거나, 현행 준연동형제를 유지하더라도 위성정당 방지법의 당론 채택은 어렵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3일 민주당 혁신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상식’ 세미나에서 “이 대표의 생존주의적 DNA”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는 “내 생각에 이 대표의 정치적 DNA는 추상적, 거시적인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단기적이고 본능적, 실용적 생존에 특화돼 있다. 생존주의적 DNA가 굉장히 강하다”라며 “이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적으로 다른 점은, 노무현은 민심의 바다에 대한 중장기적 믿음이 굉장히 강하다”라고 분석했더군요.
사실 정치판처럼 ‘명분’이 더 중요한 바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대표가 ‘실리’를 내세우며 명분을 포기하려는 건 ‘원내 1당’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일 겁니다. 물론 어느 당 대표나 선거 승리가 목표이겠지만 ‘사법리스크’가 산적해 있는 이 대표는 누구보다 다수 의석에 대한 열망이 강해 보입니다. 친명 의원 및 이 대표 측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년 총선에서 지금만큼의 의석을 지켜내지 못하면 ‘감옥행’이라는 우려가 적잖이 깔려있더군요. 이 대표가 자신의 ‘측근’이라고 인정했던 김용 민주연구원 전 부원장이 최근 다시 법정구속된 뒤로 불안감이 더 커지는 모습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전 대표의 말로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전 대표는 11월 28일 ‘연대와 공생’ 토론회에서 처음으로 이 대표를 직격하며 “어쩌다 정책을 내놓아도 사법 문제에 가려지곤 한다”고 비판했죠. 결국 다 이 대표 때문이라는 겁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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