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의 아침] “태평양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 첫 국내 송환…일본 사과 없이 우리끼리 추도식, 쓸쓸”

윤주성 2023. 12. 5. 11: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BS 광주]

■ 프로그램명 : [출발! 무등의 아침]
■ 방송시간 : 08:30~09:00 KBS광주 1R FM 90.5 MHZ
■ 진행 : 윤주성 앵커
■ 전화연결: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 구성 : 정유라 작가
■ 기술 : 김영조 감독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U_MqDfjaXpU

◇ 윤주성 앵커(이하 윤주성):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됐다 숨진 고 최병연 씨의 유해가 80여 년 만에 우리나라로 봉환됐습니다.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되면서 꿈에라도 그렸을 고국으로 돌아온 것인데요.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이하 이국언): 안녕하십니까?

◇ 윤주성: 강제 동원 희생자 고 최병연 씨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고요. 귀향식과 추도식이 열렸다고 하던데, 먼저 8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고인은 그 먼 곳까지 어떻게 해서 가게 된 것인가요?

◆ 이국언: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일본군이 전세가 계속 밀리자 마구잡이 강제 동원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고인은 24살이던 1942년 11월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머나먼 남태평양 타라와라고 하는 섬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랬는데 불과 1년 만인 1943년 12월 25일 미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고, 고향을 떠난 지 81년 만에 그리고 사망한 지 80여 년 만에 유골로 고향 땅에 묻히게 된 것입니다.

◇ 윤주성: 일제에 의해서 “그 먼 타라와 섬으로 강제 동원됐다가 희생됐다”고 하셨는데 타라와 전투는 어떤 전투였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이국언: 미군이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하나하나 전세를 역전시켜 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첫 번째 전투이자 가장 큰 전투였습니다. 타라와 섬은 한국에서 6,000km의 그야말로 머나먼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인데, 당시 이 섬에는 조선인 1,200여 명 정도가 강제 동원돼서 섬을 지키기 위한 요새화 하는 이런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그런데 타라와 전투는 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벌인 최초 대규모 상륙전이었는데, 미군 3만 5,000여 명과 일본 4,800여 명이 맞붙어서 약 6,000여 명이 사망을 했는데 그중에서 조선인 사망자가 1,200여 명 중에서 대다수였습니다.

◇ 윤주성: 그렇게 돌아가신 분들 가운데 유해가 돌아온 것은 80여 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고요?

◆ 이국언: 네. 그렇습니다. 문서상으로는 1,200여 명 중에 1,117명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단 한 분도 유골 봉환이 이루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이번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머지 1,116구는 아직도 고향을 못 찾은 채 구천을 헤매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윤주성: 뒤늦게 유해라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온 것은 너무 다행인 것인데요. 어떤 과정에 의해서 유해 봉환이 이루어진 것인가요?

◆ 이국언: 그러니까 안타까운 일인데 일본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고 미국이 미 국방부에서 전쟁 포로라든지 전쟁 중에 실종된 미군을 찾기 위한 발굴 작업 과정에서 2018년도에 그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중요한 책임자 중 한 사람이 한국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그 박사가 동양인의 뼈가 다수 발견이 됐다” 해서 이 정보를 우리 한국 정부에 제공을 해서 그때부터 신원 수속, DNA 가족들 검사 이렇게 해서 그동안 사실은 진즉 들어오려고 했었습니다만 묘하게 코로나가 겹치면서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번에야 봉환이 된 것입니다.

◇ 윤주성: 태평양 지역에서 돌아온 한국인 유해가 사실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고 최병연 씨의 유해 봉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 이국언: 네. 그렇습니다. 우리 정부는 지금 일본과 한일관계 회복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예를 들어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워싱턴 포스트 기자회견에서 “100년 전 일로 일본이 더 이상 무릎 꿇을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유골 봉환 문제라든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쩌면 이번 80년 만에 유해 봉환이 우리가 어떻게 보면 잊고 있었던 문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일제 강점기 때 오키나와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이렇게 각 곳으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유골이 군인 군속 2만 2,000여 명, 노무자 1만 5,000명 등 학계에서는 약 8만여 명 정도 될 것으로 그렇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지금까지 일본이나 사할린에서 극히 일부 유해가 봉환된 적은 있었지만, 태평양 지역에서 이렇게 머나먼 곳은 아예 발굴 조사도 한 적 없지, 현지 조사도 한 적 없지, 돌아온 유골도 없지 이런 상황이어서 이런 일을 계기로 흩어진 유골에 대한 정부나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윤주성: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유해를 찾아서 봉환을 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하거나 이러지는 않습니까?

◆ 이국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일인데, 예를 들어서 일본 정부는 2106년에 전몰자 유골 수집 법을 만들어서 2차 세계대전이나 이럴 때 사망한 유골 발굴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DNA 조사를 거쳐서 이것이 일본인의 경우로 확인될 경우만 일본으로 가지고 오고 한국인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배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무고한 우리 한국인들이 끌려갔는데, 지금 유골을 찾는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완전히 찬밥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강제로 끌고 갈 때는 내선일체다, 어쨌다” 똑같이 대우해 줄 것으로 하더니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난 뒤에는 뼈를 죽어서라도 고향에 돌려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른 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윤주성: 어제 “영광에서 유해 봉환식이 진행됐다”고 하던데 이 자리에 혹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없었습니까?

◆ 이국언: 없었습니다. 그것이 정말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인데 정작 가해자인 일본이 유골을 발굴해서 가족들에게 돌려드려야 되고, 그다음에 그에 대한 진정한 사죄 표명도 해야 되고 법적 책임도 져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80년 만의 귀향길인 그 자리에 “정작 가해자인 일본은 얼굴조차 비치지 않고 추도문 하나 없다”는 것이 허망하기 짝이 없고, 일본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일본이 참여하도록 우리 정부가 촉구를 했어야 할 텐데 도대체 일본도 없이 점점 우리끼리, 피해 입은 사람들끼리 하는 이 추도식이 얼마나 쓸쓸하고 뭔가 앞뒤가 바뀐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윤주성: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어제 추도식에 참석을 해서 추도사를 낭독했다고 하던데요. 주요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 이국언: 이상민 장관의 추도사를 보면서 이것이 추도사인지 경과보고인지 의심할 정도로 맥락이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히 80년 만에 가슴 아픈 시절을 겪다가 이번에 유골로 상면하게 된 유족들에 대한 위로의 말이었는데 지금 이상민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서 참여한 추도식에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이나 던지고 있을 위치가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에 대해서 무슨 한마디라도 했어야 됐는데 어제 추도식 장면에서 가해자 일본에 대한 사죄 촉구, 진상 규명, 법적 책임 묻는단 한마디가 있지 않았습니다.

◇ 윤주성: 앞으로 우리 정부의 과제, 남아있는 유해 돌아오지 못한 유해들이 너무나 많을 것 같은데요. 우리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국언: 저는 일본과의 여러 문제가 나라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현실적으로 있기는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유골을 돌려주는 문제와 같은 인간이라고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이런 인도적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일본의 태도 전환을 요구해서 다른 것은 못하더라도 뼈를 돌려주고 진상규명하고 가족 품에 돌려주는 것이 이 문제도 못하고 어떤 한일 협력 이런 것들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조차 하지 못하는 일본이 어떻게 역사 문제를 대화할 것입니까?

사진 출처: 연합뉴스


특히나 ‘윤석열 정부에서 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면 그 좋아지고 있는 증표가 무엇인지를 다른 문제는 놔둔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제만큼은 태도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무인가 보여줘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사람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국적과 언어를 떠나서 인간이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설득 가능한 문제이고 “일본을 설득해야 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윤주성: 어제 추도식에서 80여 년 만에 유해를 찾은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거든요.

◆ 이국언: 두 아들과 부인을 놔두고 떠나갔는데 부인은 작고하시고 “큰 아드님마저도 코로나 몇 년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안타깝게도 지난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차남도 80이 넘으셨습니다만, 그분은 추도사에서 “그동안 아버지 이름 한번 불러보고 싶은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다”고 그리고 마지막 작년에 “형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유해를 선산에 고이 모시기를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떠나셨다”고 하면서 그야말로 80여 년 못다 한 인연의 말씀을 추도사로 읊으실 때 식장이 숙연해졌습니다.

◇윤주성: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시민모임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 이국언: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윤석열 정부는 지금 일본은 더 이상 100년 전 일본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하면서 협력을 안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을 해야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될 것은 책임을 져야 되는데, 지금 “우리 정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것이고 “일본이 심지어 배상해야 될 그 배상책임도 우리나라가 대신해 버리겠다”고 하는 것이어서, 지금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손잡고 도모해야 될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것은 그것대로 하더라도 일본이 져야 될 법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서 앞으로 어떻게 나가겠느냐. 그래서 일본에 대해서 보다 원칙적 입장을 견지해서 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 윤주성: 지난 6월부터인가요. 정부의 제3 자 변제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와 유족을 위해서 시민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모금액이나 모금 건수, 그리고 모금운동은 마감된 것인지 궁금해요?

◆ 이국언: 역사 정의를 위한 시민 모금이라고 정부가 일본 기업 대신 억지로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이라고 하는 돈을 쥐어주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고 또 용기 있게 싸우고 계시는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응원 기금을 모금하고 있는데, 현재 6억 4,000만 원 정도입니다. 6억 4,000만 원 정도에서 지난 8.15전에 4억 원은 피해자 네 분에게 각각 1억 원씩 지원을 했습니다. 모금 건수로는, 건수니까 한 건에 여러 명 단체나 모임에서 참여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약 9,000여 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모금운동은 내년 6월 초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피해자들이 정부도 못하고 있는 어떻게 보면 국민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정말 용기 있는 일본의 사죄를 받고 배상을 받고자 하는 것이지 정부가 그냥 손에를 쥐여 주는 출처 없는 돈을 받기 싫다고 하는 것을 응원하기 위한 기금입니다. 앞으로도 관심 가져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윤주성: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주성 기자 (yjs@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