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2030 입소문의 힘, 흥행 공식·트렌드도 깼다
"심장 쫄깃하게 하는 긴박감…이야깃거리 많아 콘텐츠 양산"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손익분기점(460만명)을 넘어 누적 관객 수 5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극장가 비수기로 꼽히는 11월에 개봉한 데다 최근 관객 트렌드에서 벗어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예상외의 대흥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의 봄'이 여러 장애물을 극복하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20·30대 관객들의 '입소문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영화계는 보고 있다.
5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서울의 봄'은 전날 21만4천여 명(매출액 점유율 81.0%)을 더해 누적 관객 수 486만여 명이 됐다. 개봉 14일째인 이날 오후 500만 관객 도달이 확실시된다.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하는 오는 20일까지 마땅한 경쟁작이 없고, '서울의 봄' 열풍이 워낙 거세 '범죄도시 3'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그러나 개봉 전만 해도 '서울의 봄'이 이 정도로 흥행할 것이라고 본 시각은 많지 않았다.
통상 11월은 추석 연휴와 연말 사이에 끼여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적어지는 시기기 때문이다. 이에 배급사들은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들을 수요가 많은 여름 시장이나 추석·설 연휴에 내놓곤 한다.
'서울의 봄'은 최근 극장가에 나타난 한국 영화 흥행작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다. 올해 남는 장사를 한 한국 영화 4편 중 '범죄도시 3'·'밀수'·'30일' 3편이 코미디 영화지만, '서울의 봄'은 코미디 요소가 전혀 없다. 러닝타임도 2시간 20분으로 다소 긴 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이제 코미디가 아니면 관객, 특히 젊은 관객들의 마음을 얻기가 어려워졌다"는 자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30세대가 '서울의 봄' 흥행을 주도하면서 "이런 장르도 먹힐 수 있다"는 분위기로 역전됐다.
CGV에 따르면 '서울의 봄' 관객 중 20대가 26%, 30대가 30%로 20·30대 관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12 군사반란과 영화 속 캐릭터가 비교적 익숙한 세대인 40대(23%), 50대(17%)보다도 높다.
숏폼, 코미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감상(OTT) 등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20·30세대를 극장으로 불러들인 건 '서울의 봄' 콘텐츠 자체가 가진 매력 덕분이다.
이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오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9시간 동안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 세력과 수도경비사경관 이태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담았다. 신군부 세력의 반란 모의와 육군참모총장 납치, 대통령 재가 시도, 병력 이동과 대치, 정권 탈취 등이 긴박하게 그려져 스릴러 영화 이상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12·12로 사람이 죽었다는 건 몰랐다", "역사 교과 참고 자료로 쓰여야 한다", "이름만 알았던 사건을 자세히 배운 것 같다" 등의 반응도 나온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코로나19 여파가 어느 정도 있었던 '남산의 부장들'(2020)이 흥행한 사례를 보면,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은 꾸준했다"면서 "12·12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교과서에서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상업 영화에서 좋은 소재"라고 설명했다.
윤 평론가는 "그렇다고 해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20·30대들은 보지 않을 텐데 '서울의 봄'은 신군부를 막을 수 있을 듯 없을 듯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며 "관객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반응도 2시간 20분이 짧게 느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서울의 봄'을 보고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은 '분노'다. "오늘은 북한이 안 내려온다"며 최전방 부대까지 서울로 결집하는 신군부, 일이 터지자 도망가기 바쁜 국방부 장관, 전세가 기운 직후 바로 항복하는 군 수뇌부 등을 지켜보면서 화를 참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온라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심박수가 올라가는 사진을 올리는 '심박수 챌린지'를 벌이고 있다. 분노가 섞인 영화 감상평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한다. 관객들 스스로가 나서 '서울의 봄'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셈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배급사가 주도하는 바이럴 마케팅은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며 "'서울의 봄'은 관객들이 분노를 표시하고 패러디를 하는 게 놀이처럼 돼 입소문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기 전후 12·12 사건에 관해 공부하거나 실존 인물의 뒷이야기를 찾아보는 등 이른바 에듀테인먼트 열풍까지 불면서 관객들의 입소문은 더 거세지고 있다. 극중 대사와 인물을 활용한 각종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도 유행 중이다.
개봉 2주 차 주말 관객 수(170만2천여 명)가 첫 주 주말 관객 수(149만4천여 명)를 뛰어넘은 것도 입소문의 힘 덕이 크다고 영화계는 보고 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일수록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해지는데, '서울의 봄'이 그런 사례"라면서 "저 인물이나 자손이 어떻게 됐을지를 보면서 입소문이 더 활발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관객 중 56%를 차지한 20·30대는 온라인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세대로, 입소문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윤성은 평론가는 "이른바 MZ세대는 남들은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것을 굉장히 불안해하는 면이 있다. 빨리 봐서 나도 합류해야겠다는 생각이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또 다른 요소일 것"이라고 짚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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