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삶 어루만지는 우리 옛 정원, 세계가 주목한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아파트 텃밭 정원 가꾸면 층간소음 문제도 해결될 것”
―왜 정원이 필요한 겁니까.
“요즘 우리 아이들이 갈 데가 게임방과 학원 두 군데밖에 없잖아요.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게임방 가서 ‘사람 죽이고’ 학원에서는 경쟁에 시달려요. 그런 환경에서 과연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자연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곳, 예술 감각을 깨우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그게 정원이에요.”

―정원이 사회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요.
“한국 사회에 정원이 많이 퍼져야 해요. 8년 전 어느 지방 건설업체가 수도권에 진출하면서 주차장을 지하로 내리고 지상을 전부 녹지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제안 드렸죠. 나무만 많이 심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경계를 따라 텃밭 정원을 만들자고요. 그랬더니 텃밭을 함께 가꾸면서 아파트 주민끼리 친해졌어요. 눈인사만 하던 사이에서 함께 먹을거리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 거죠. 도시에서 텃밭은 소셜 스페이스(사회적 공간)에요. 요즘 층간소음 문제 많죠? 이웃끼리 이름을 불러주며 밥도 같이 먹는 친한 사이가 되면 서로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많은 사회 문제들이 정원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어요.”
●“사회 지도층이 관심 갖고 정원문화 이끌어야”
성 교수는 올해 7월 국내외 명사 12명의 정원 가꾸는 삶을 소개한 책 ‘인생 정원’을 펴냈다. 영국 찰스 3세와 윈스턴 처칠,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조선 정조대왕….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명사들은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내면의 미적 감각을 총동원해 정원을 가꿔 소통했으며, 그래서 우리 사회 지도층도 정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유명 위인들은 물론 고산 윤선도와 다산 정약용 등 한국의 위인들도 정원을 잘 가꿨어요. 어쩌면 정원이 있었기에 그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 같아요. 정원을 통해 고난과 갈등을 승화시켰으니까요.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디다. 어린 시절 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정원생활을 했다는 점이에요. 어릴 적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정원은 사람됨의 조건인데, 여유 없이 살아온 우리는 정원을 지나치게 사치품으로 인식하는 측면이 있어요. 특히 한국의 사회 지도층이 정원에 관심도 안목도 없어 안타깝습니다. 부디 정원의 가치와 효용을 알고 정원문화를 확산시켜줬으면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국가가 정원을 주도하는 게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요? 의외인걸요.
“세계에서 국가 정원을 지정해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정원은 지극히 개인적 심미 활동의 산물인데 국가라는 최고 권력이 개입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안 맞죠. 그럼에도 우리나라처럼 정원 문화가 꽃피우지 못한 상황에서는 당분간 국가나 공공이 정원 정책을 끌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원박람회도 좀 더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정원박람회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1990년대부터 각국의 정원박람회를 많이 다녔습니다. 특히 독일이요. 합리적이면서 실속을 챙기는 독일인들은 ‘그린(Green) 문화’를 삶 속에서 실천합니다. 한국은 정원박람회를 쇼나 이벤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힘이 많이 들어가고 단발성으로 그치는데요. 독일의 정원박람회는 도시를 일거에 쇄신하는 전략입니다. 독일은 입지와 상태가 나쁜 땅에 박람회를 열어서 그 주변이 개발의 힘을 받도록 합니다. 지저분하고 낙후된 공간이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면 민간이 스스로 찾아와 주변을 개발하죠. 공공에서 리드하고 민간이 따라오는 선순환을 이뤄야 합니다.”
●“한국 정원의 가치를 개념화해야”
성 교수가 조경작업에 참여했던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의 한국 정원 ‘희원’은 우리 정원의 품격 있는 가치를 보여준다. 날이 갈수록 입소문이 나서 미술관 찾아오는 사람 절반, 정원 찾아오는 사람 절반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는 “자꾸 우리 정원을 만들어 정갈한 한국 정원의 가치를 함께 나눠야 한다”고 한다.

“영국 코티지(농촌풍) 정원은 쫓아다니고 따라 만들려고 하면서 정작 우리 정원은 몰라요. 왜 우리 것을 잊었을까 안타까워요. 생각해보면 한국은 일단 정원에 대한 용어학(terminology)이 발달하지 못했어요. 현대 한국조경의 역사가 50년 됐지만 급하게 외국 것들을 받아들이느라 우리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없었어요. 일본만 해도 정원 미학을 소개하는 용어가 많지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만 즐겼지 그걸 개념화, 용어화하는 과정이 없었던 거예요.”

“아, 말씀 잘하셨어요. 독일인 이참 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낼 때 만났더니 이렇게 얘기합디다. 왜 한국분들이 독일 하이베르크까지 가서 철학자의 길을 찾는지 모르겠다고요. 칸트는 걷지도 않았던, 그저 만든 관광상품이라고요. 그곳보다 훨씬 근사한 철학자의 길이 한국에 있다고요. 퇴계 이황이 친구 후배 제자들과 함께 걸었던 안동 토계에서 청량산을 잇는 낙동강변 길이 바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철학의 길’이라고요.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퇴계 이황의 정원 철학, ‘긴수작 한수작’
그런 점에서 성 교수가 강조하는 퇴계 이황의 정원 철학 개념이 있다. ‘긴수작(緊酬酌·어려운 학문적 행위) 한수작(閒酬酌·취미나 놀이 같은 한가한 행위)’이다. 퇴계의 삶에서 자연은 옛 성현의 삶을 본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필수 여건(긴수작)인 동시에 즐기기 위한 매개(한수작)였다.

“‘긴수작 한수작’은 퇴계 선생이 주신 훌륭한 정원 용어입니다. 자연법칙으로 이뤄진 미학의 장으로서 정원은 퇴계에게 배움과 휴식, 그리고 심미의식을 즐기는 장소였어요. 퇴계는 어려운 공부만을 하기(긴수작)보다 산수를 한가하게 노니면서 감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열심히 하는 ‘긴수작’은 기성 세대들은 대체로 다 잘하죠. 과연 ‘한수작’도 잘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한수작이 제대로 있어야 삶이 온전해집니다.”

●프랑스도 감탄하는 한국 정원의 정갈한 멋
성 교수에 따르면 수준 높은 전시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뤽상부르 박물관은 2025년 한국 정원 전시를 열고 싶다는 의사를 최근 표시했다. 예산 문제와 한국과의 협조 등으로 진척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상원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뤽상부르 박물관이 어떻게 한국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정원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프랑스인들이 자기들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한국 정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K-드라마’를 보니 인간이 만든 고궁과 산이 만나는 모습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친밀해 보이더라고 합니다. 서구처럼 인간의 질서가 강요된 정원이 아니라 자연이 건강한 활력을 갖는 정원이라면서 ‘K-정원’(한국 정원)에서 정원의 미래를 찾더라고요. 자연의 섭리를 읽어내고 겸허하게 마음으로 즐기는 정원이 한국 정원인 걸 알아본 거죠.”


| ▽성종상 교수는 |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대통령자문건축문화선진화위원, 한국조경설계연구회장,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장,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등 역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한국ICOMOS 이사 등으로 활동 중 -인사동길,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한국정원 희원, 선유도공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등 설계 |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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