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나라 땅은 우리땅?…베네수엘라의 이상한 국민투표 [특파원 리포트]

황동진 입력 2023. 12. 5. 08:06 수정 2023. 12. 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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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남미에서는 우리 관점에서는 다소 황당한 국민투표가 치러졌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현지 시각 3일 자국민을 상대로 이웃 국가인 가이아나의 땅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것에 찬성하느냐를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한 겁니다.
결과는 95%가 넘는 찬성률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시간 4일, 전날 투표에서 투표자 95.9%가 '과야나 에세키바 주를 신설하고 해당 주민에게 베네수엘라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 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투표의 대상이 된 과야나 에세키바는 에세퀴보강 서쪽 159,500㎢ 지역인데, 현재 가이아나 면적의 74%에 이릅니다.
한마디로 인접 국가의 땅을, 그것도 4분의 3에 이르는 영토를 자국땅으로 편입시키고 거기에 살고 있는 주민을 자국민으로 하겠다는 다소 어이없는 투표를 한 것입니다.
참고로, 가이아나공화국은 남미 북쪽에 있는 나라로, 서쪽으로 베네수엘라, 동쪽으로 수리남, 남쪽으로 브라질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가이아나공화국의 면적은 약 214,970㎢로, 한반도보다 조금 작습니다.

가이아나의 74% 가량인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 (출처:CNN)


이렇게 된 이유, 자원 때문입니다.
해당 지역과 그 인근 해저에는 금과 다이아몬드 등 값비싼 광물이 다량 매장돼 있습니다.
게다가 2015년 그 지역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가 발견됐습니다.
미국 최대 석유기업 엑손 모빌이 유정 탐사를 진행했는데 석유 매장량이 32억~50억 배럴이 매장돼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국민 1인당 매장량으로 보면, 1인당 4천~6200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1900배럴보다 2배 이상입니다.
이후 석유 시추 사업은 진행됐고 2019년 이후 가이아나의 경제 성장률은 기존 3~4%대보다 거의 7배 이상인 20~40%로 껑충 뛰었습니다.
인생 한방 역전이 있다면 이런 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베네수엘라는 이미 석유가 많은데 왜 이웃 국가의 석유를 탐하는 걸까요?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이 3,038억 배럴로 전 세계 1위입니다. 사우디의 2,586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매장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베네수엘라 석유의 경우 대체로 황 성분이 섞인 중질유여서 고도화 공정이 필요한 대신 가이아나의 새롭게 발견된 석유는 경제성이 높은 경질유인 겁니다.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의 항구에 석유탐사를 지원하기 위한 선박이 정박해있다.


그런데 이렇게 베네수엘라가 우기는 근거는 뭘까요?
베네수엘라 정부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에세퀴보는 베네수엘라 땅이었고 실효적 지배를 해왔다"는 겁니다.
가이아나 지역은 오랫동안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로 수탈대상이었다가 189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중재판정에서 당시 영국의 손을 들어줬고 그 이후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가이아나가 됐습니다.
즉, 1899년 중재재판소가 현재의 가이아나 땅을 결정한 셈입니다.
그런데 1966년 양국 간 협의를 통해 영토 분쟁을 해결하라는 제네바협약이 발표되면서 베네수엘라로선 여지가 생긴 겁니다.
이번 국민투표 안건도 5가지였는데, '1899년 중재판정 거부', '1966년 제네바 협약 지지', '영토 관련 가이아나 주장 거부', 'ICJ 재판 관할권 인정 반대', '새로운 주 신설 및 베네수엘라 시민권 부여'였습니다.
그래서 마두로 정부가 내세운 슬로건도 '다섯 번의 찬성(5 veces Si)'이었습니다.

(좌)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


그렇다면, 이번 95%의 찬성률은 법적 효력을 가질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어림없다'입니다.
우선 베네수엘라 정부는 전체 투표 인원도, 투표율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국제법적으로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두로 정부는 향후 국내 정치에서 공약으로 국제사회에서 여론몰이용으로 이 투표결과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대선에서 3선을 노리는 마두로 대통령은 민족주의 분위기에 편승해 공정선거에 대한 국내외 요구를 약화 시키려는 의도로 이번 국민투표를 밀어붙였다고 로이터와 AP통신 등은 분석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이아나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하고 있을까요?
인구 2,800만의 베네수엘라에 비해 3% 수준 인구인 80만 명의 가이아나 정부는 규탄집회를 열고 반박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수도 조지타운에서 지난 3일 열린 '애국의 밤' 행사에서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은 "절대 짓밟히지 않을 것이며, 법에서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심하지 않고 국경을 방어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혹시 무력분쟁이 생길 여지가 있을까요?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두 나라와 국경을 접한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지금 남미에 필요하지 않은 건 단 하나, 바로 혼란"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해당 국경 지대에 대비 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했습니다.
석유와 정치, 그리고 역사가 얽힌 이 문제,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료 조사: 양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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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진 기자 (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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