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쌓아놨다던 보조금은 다 어디에···美 반도체 지원 이상 기류에 '비상' [biz-플러스]

진동영 기자 입력 2023. 12.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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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몰아주기' 심상찮은 기류에
삼성, 美서 '보조금 촉구' 행사도
투자 발 빼지도 못하고···기업만 피해
취임 후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지난해 5월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527억 달러(약 69조 원)의 반도체 보조금을 미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끌어들이던 미국이 최근 묘한 기류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선언하면서 삼성전자(005930)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투자를 끌어내더니 최근 들어 약속했던 보조금 집행 결정이 지연되거나 축소하는 듯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어서다.

이 같은 상황의 여파로 반도체 기업들의 경영 전략 또한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투자 이후 최종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3~4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보조금 지연으로 투자 시기가 밀릴 경우 시장 수급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 “美 믿고 투자했는데”···보조금 압박

5일 재계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여야 상·하원의원을 초청해 반도체 산업의 영향을 분석하는 리셉션을 열었다. 행사에는 민주당 소속의 마크 켈리 상원의원과 마이클 매콜(공화당), 라자 크리슈나무르티(민주당)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삼성 반도체는 30여 년에 걸쳐 47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집행했다”며 “삼성이 반도체지원법 결정에 앞서 투자를 결정한 것은 미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을 적기에 지급해달라고 촉구한 셈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지원법을 도입하면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총 527억 달러(약 69조 원)의 보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미국 정부가 군사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인텔에 최대 40억 달러의 보조금을 선지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보조금을 신청한 반도체 기업이 13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 기업 우선’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면 보조금 규모가 줄거나 지급 시기가 뒤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법인을 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삼성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확산하고 있다”며 “삼성의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공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받은 기업 없는 美 보조금···자국 기업 몰아주나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보조금 지급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위해 추진한 ‘반도체지원법’은 도입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보조금을 공식적으로 확정받은 기업이 없다.

미국 기업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당장 미국의 전체 보조금 중 최대 40억 달러가 인텔의 군사용 반도체 생산 지원에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비롯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기업이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며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상황 정리가 쉽지 않다. 책정한 예산에 비해 보조금 신청 기업이 많아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보조금을 분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 부어도 반도체 공급망을 독점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경제위기까지 지속되면서 바이든 정부로서는 ‘외국 기업 퍼주기’라는 비판 여론을 계속 외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정부 재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우크라이나 등에 퍼부어야 하는 돈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430억 유로(약 62조 원)를 투입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뛰어들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독일은 TSMC와 인텔에 각각 50억 유로, 99억 유로를 보조금으로 제공하겠다며 공장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 연방법원에서 독일 정부가 예산을 반도체 공장 지원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실제 지원이 이뤄질지 불확실해진 상태다. 독일 정부가 새로 예산을 편성해 지원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의회의 비판 또한 거세 집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투자 발 뺄 수도···기업만 전전긍긍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건설 중인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장.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SNS 캡처

이 같은 불확실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들에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생산기지 구축 계획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지연되면서 미래 사업 계획 전체가 흔들리며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TSMC는 현지 인력 확보 어려움 속에 공장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 TSMC는 400억 달러를 투입해 공장 2개를 짓고 있는데 현장에 투입할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이미 첫 공장 가동 계획은 1년 넘게 미뤄졌다. 삼성전자 또한 1공장 완공을 앞둔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에서 2공장 건설이 지연될 것이라는 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처음부터 투자 자체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뤄진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투자에서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문제는 향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기업이 이를 신뢰하고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겠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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