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불수리' 요건 개정 추진에…업계는 '고사 위기'[특금법 규제의 늪]③
업계 "이미 진입장벽 높은데…사업자 폐업 늘어날 것"
[편집자주]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VASP)들이 최초로 당국에 '신고'를 마친 지 2년이 흘렀다. 특금법은 관련 법이 없던 가상자산 업계가 처음으로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가상자산을 위한 업권법이 아닌 특금법을 차선책으로 우선 적용하면서 부작용도 컸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자금세탁 방지가 주된 법 취지였지만 '실명계좌'를 빌미로 막강한 '그림자 규제' 권한을 휘둘렀다. 버티지 못하고 영업을 종료한 사업자들이 속출했고 각종 신사업도 막혔다. 살아남은 1등 기업만 비대해졌다. 전세계가 '코인 강국 코리아'를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는 고사 위기에 놓여있다. 가상자산의 상징과도 같은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다시 치솟고 있지만 규제에 내몰린 'K-코인'은 씨가 말랐다. 설상가상으로 금융당국은 사업자 신고 수리를 위한 심사를 더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불어닥친 디지털 경제라는 불가항력의 흐름에도 정부는 규제에만 혈안이다. 진흥은 없고 규제만 있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미래 먹거리'를 이끌 혁신이 있을 수 있을까.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신고 심사와 검사를 강화해 가상자산이 자금세탁에 악용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달 28일 금융정보분석원(FIU) 주최 '자금세탁방지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사업자(VASP) 심사를 강화한다. 2년 전 최초로 신고를 받을 당시엔 요건만 갖추면 신고를 수리받을 수 있는 '신고제'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금융당국의 심사를 거쳐야만 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는 사실상 '허가제'가 본격화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심사 강화를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자금세탁 우려가 있는 사업자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대주주 심사를 강화하고, 기존 사업자에 대해서도 신고 심사 과정에서 자금세탁 위험이나 이용자 보호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따져 보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주주 적격성을 이유로 신고를 불수리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FIU는 국회에 요청, 특금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또 가상자산사업자 불수리 요건을 더 추가하는 특금법 개정안 역시 발의될 예정이다.
◇특금법 위반 '가능성'만 있어도 불수리…심사 대폭 강화
5일 국회에 따르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은 FIU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검토 시 형식적 요건 외에도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 확립에 필요한 요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특금법,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자본시장법 등을 위반하거나 위반할 우려가 상당한 경우 △신청서나 첨부 서류에 거짓이 있거나 필요한 내용을 적지 않은 경우 △신고 수리 시 시장질서의 투명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FIU가 신고를 불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윤 의원 측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시 대주주 적격성을 검토하는 특금법 개정안도 발의한 바 있다. 대주주가 특금법을 비롯해 국내 경제 관련 법률을 위반했을 때는 물론, 국내법에 상응하는 외국법을 위반했을 경우에도 신고를 불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 같은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질 경우,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불수리할 근거는 현행법보다 훨씬 많아진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불수리 요건은 현행 특금법 제 7조 제 3항에 명시돼 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FIU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경우 △가상자산과 금전 간 거래가 있음에도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실명계좌)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 △특금법, 자본시장법 등 금융관련 법률에 따라 벌금 이상 형을 선고 받은 경우 등이다.
따라서 현행 특금법으로는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신고 건들이 법 개정 시엔 불수리될 확률이 높다. 고팍스가 대표적인 예다.
고팍스는 지난해 FTX 사태의 여파로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에 묶인 고객 자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 고초를 겪고 있다. 이에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 회사를 매각, 바이낸스가 고파이 자금을 지급해주는 방향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바이낸스의 진입을 이유로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를 수리해주지 않고 있다. 앞서 고팍스는 바이낸스 측 인사로 대표를 변경하고 변경신고서를 제출했으나, 수리가 지연되면서 다시 국내 코스닥 상장사인 시티랩스 측 인사로 대표를 교체한 상태다.
바이낸스는 최근 미국 법무부에 돈 세탁 등 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43억달러(5조500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기로 했다. 윤 의원의 개정안은 대주주가 국내법에 상응하는 외국법을 위반했을 경우에도 신고를 불수리하게끔 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낸스가 계속 고팍스 대주주 자격을 유지할 경우, 고팍스의 변경신고는 끝내 수리되지 않을 수 있다. 시티랩스가 바이낸스 지분을 취득해 고팍스 대주주가 되려는 배경이다.
최근 불수리 통보에 불복해 행정소송 제기를 추진 중인 한빗코도 법 개정 시 소송을 제기할 근거를 잃게 된다.
한빗코는 광주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면서 원화마켓(원화와 코인 간 거래 지원) 거래소로 전환하려했지만, 현장검사에서 특금법 의무 위반 사항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과태료 처분을 받았지만 과태료는 특금법상 불수리 요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FIU가 환빗코의 변경신고를 불수리하면서 한빗코는 현재 행정소송 제기를 고려 중이다.
◇높아진 진입장벽, 진흥 법안은 '제로'…사업자 줄폐업 위기
따라서 법 개정 시 현재도 높은 가상자산사업자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사업자 대부분이 내년 갱신 신고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특금법 위반 가능성만 있어도 신고를 불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갱신 신고에도 실패하는 사업자들이 나올 수 있다.
또 사업자 신고를 준비했음에도 불수리 통보를 받을 경우, 이미 신고 준비를 위해 들인 비용을 복구할 수 없어 폐업에 이를 가능성도 크다. 이미 코인마켓(코인과 코인 간 거래만 지원) 거래소들이 이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한 업체의 한 대표는 "특금법 준수를 위해선 컴플라이언스(법률 준수) 인력도 채용해야 하고, 자금세탁방지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ISMS 획득 비용까지 합치면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며 "이런 투자를 하고도 신고를 수리받지 못하면 해당 업체는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에 진입 규제가 강화된 만큼, '산업 진흥'을 위한 법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도 규제 법안이다.
이용자 보호법에 이어 추진되는 '2단계 법안'은 가상자산 발행을 위한 길을 터주는 등 진흥의 성격을 담았지만, 21대 국회에서 발의 및 통과가 모두 이뤄질 가능성은 요원하다.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산업 발전을 국가 과제로 채택한 일본이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 임박한 미국 등과 대비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목소리는 2단계 법안에 담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통과 당시부터 2단계 법안이 빨리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며 "진흥 법안이 생기기 전에 사업자 진입 규제로 인해 줄폐업하는 업체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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