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신고 안 하는게 더 낫다"…'역차별' 논란[특금법 규제의 늪]②
사업자 신고 업체들 "요건 안 갖춘 업체들이 오히려 문제없이 영업" 토로
[편집자주]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VASP)들이 최초로 당국에 '신고'를 마친 지 2년이 흘렀다. 특금법은 관련 법이 없던 가상자산 업계가 처음으로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가상자산을 위한 업권법이 아닌 특금법을 차선책으로 우선 적용하면서 부작용도 컸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자금세탁 방지가 주된 법 취지였지만 '실명계좌'를 빌미로 막강한 '그림자 규제' 권한을 휘둘렀다. 버티지 못하고 영업을 종료한 사업자들이 속출했고 각종 신사업도 막혔다. 살아남은 1등 기업만 비대해졌다. 전세계가 '코인 강국 코리아'를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는 고사 위기에 놓여있다. 가상자산의 상징과도 같은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다시 치솟고 있지만 규제에 내몰린 'K-코인'은 씨가 말랐다. 설상가상으로 금융당국은 사업자 신고 수리를 위한 심사를 더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불어닥친 디지털 경제라는 불가항력의 흐름에도 정부는 규제에만 혈안이다. 진흥은 없고 규제만 있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미래 먹거리'를 이끌 혁신이 있을 수 있을까.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FIU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하면 일정 기간마다 사업현황을 보고해야 하고, 인적·물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유지 비용도 듭니다. 그런데 오히려 신고를 안 하면 사업에 아무런 방해없이 영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미신고 업체에 대한 제재가 없기 때문이죠".
한 가상자산사업자 업체 대표는 사업자 신고 이후 달라진 점에 대해 밝히며 이 같이 말했다. 법에서 요구한 요건을 갖춰 신고를 한 업체들이 오히려 더 많은 제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사업자 심사를 강화하기로 한 가운데, 정작 '미신고 업체'에 대한 제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상 가상자산사업자의 기준이 모호한 데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신고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만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업자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신고를 하지 않은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모호한 '가상자산사업자' 기준…미신고 업체 활개
현행 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는 가상자산거래업자(거래소), 보관·관리업자, 지갑서비스업자 등 세 가지다. 이는 실제 가상자산 산업과 다소 동떨어진 분류다. 실제 산업에서는 거래소나 지갑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가상자산 관련 사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상자산 예치 업체, 블록체인 밸리데이터(검증인), 장외거래 사업자, 가상자산 운용사 등은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하는지 그 여부가 애매하다. 사업 특성상 가상자산을 보관하는 과정은 거치지만, 보관을 영업으로 하는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준에 대해선 금융당국조차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초 FIU는 홈페이지(누리집)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현황'에서 "가상자산 예치 및 렌딩(대출) 서비스 등은 특금법 상 신고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해뒀다. 하지만 FIU는 지난 9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가상자산 예치업자가 가상자산 매도, 매수, 보관, 이전 등 행위를 할 경우 특금법 상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준이 모호한 탓에 대다수 업체들이 '신고 없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당국이 '신고를 하라고' 하기 전까지는 영업을 이어가겠다는 업체들이 많다.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하는 업체들도 있다. 한국인이 창업했고, 한국에 사무실이 있는 사실상 국내 업체이지만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명목 하에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다.
이는 실제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6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하루인베스트는 고객 자산을 운용하던 중 손실을 입어 자산 출금을 중단했다. 비슷한 서비스인 델리오도 같은 이유로 고객 자산 출금을 중단했지만, 두 업체 중 델리오만 FIU에 신고를 마친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했다. 델리오는 과태료 처분을 받았지만 사실상 국내 업체임에도 하루인베스트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검찰 수사만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신고 업체만 관리·감독…미신고 업체는 제재 안해
이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한 업체들은 규제를 준수한 업체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한 한 업체의 대표는 "신고를 수리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금세탁방지에 문제가 없다는 뜻일뿐 사업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보장의 의미가 아니다"라며 "신고를 수리받은 후에는 FIU에 일정 기간마다 보고를 하고, 현장검사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상자산사업자 기준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신고를 하지 않은 업체들은 이런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신고가 사업에 '독'이 되는 셈이다.
2021년 9월 가상자산사업자 최초 신고 이후 FIU가 미신고 업체를 제재한 것은 지난해 8월 한 번 뿐이다. 당시 FIU는 국내법에 따라 신고하지 않은 채, 한국인 대상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16곳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는 사실상 '경고'에 그쳤을 뿐이다.
하루인베스트처럼 사고 위험이 있는 업체도 살펴보지 않았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할 수 있는 업체들이 여럿 있지만, 신고를 권고한 사례는 없다.
위 업체 대표는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를 하면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준범감시인을 채용하는 등 인적·물적 요건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며 "이런 요건조차 안 갖춘 업체들이 신고 없이 영업하고, 해당 업체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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