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 출범 10주년, 출동하지 않는 그날이 올 때까지 [포토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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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게 잘 먹었습니다." "따뜻하네요." 김이 모락모락 나던 그릇을 싹 비워낸 이들이 인사를 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이하 밥통)의 박민선 상근 활동가와 밥알단(자원 활동가)의 표정도 밝아졌다.
밥통은 재정을 관리하는 이사회와 활동을 결정하는 집행위원, 요리를 비롯해 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상근 활동가와 웹진 팀, 밥알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밥통은 1명을 위해 출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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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게 잘 먹었습니다.” “따뜻하네요.” 김이 모락모락 나던 그릇을 싹 비워낸 이들이 인사를 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이하 밥통)의 박민선 상근 활동가와 밥알단(자원 활동가)의 표정도 밝아졌다. 11월16일 저녁 서울 명동 거리, 속을 든든히 채운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이 영하의 날씨에 문화제를 열었다. 어두워진 농성장 옆 밥통의 노란 차가 환한 조명을 켜놓고 있었다.


노동자, 장애인,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와 한 끼의 식사로 연대해온 밥통이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밥차’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굶는 걸 본 몇 사람이 트럭을 개조해 밥을 지었다. 부엌도 없이 길에서 음식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가야 할 곳이 계속 늘어났다. 좀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2014년 1월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틀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상천 집행위원장은 “한 끼의 비용을 줄여준다는 차원보다, 싸울 때 느끼는 고립감을 덜어준다는 의미가 더 컸다”라고 말했다.


첫 출동은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의 노숙 농성장이었다. 당시 조합원 2400명이 3교대로 800명씩 상경했다. 한광주 이사는 “하루 세 끼를 만들다 보니 진짜 밥하다 죽겠구나 싶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밥통은 재정을 관리하는 이사회와 활동을 결정하는 집행위원, 요리를 비롯해 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상근 활동가와 웹진 팀, 밥알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웹진을 구독하는 후원자는 현재 200명 정도다.


밥통은 1명을 위해 출동하기도 한다. 기아자동차 대리점 내부고발자인 박미희 해고자의 농성장이 그런 곳이다. 박민선 상근 활동가는 “사람들이 없는 시간, 박미희씨랑 점심 먹기 행사를 벌였어요. 가장 마음이 쓰이던 곳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3기 이사장을 맡은 김수영 이사장은 “노동 현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으로 가려 합니다. 더 작고 더 열악한 곳으로요”라고 말했다. 밥통의 출동 현장은 10년 동안 약 900곳이 넘는다. 제주도와 경남 남해, 경북 성주 등 전국을 다녔다. 밥통 식구들의 소원은 하나다. 밥통이 출동할 곳이 더 이상 없는 그날이 오는 것.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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