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수제비의 고향을 찾아서
쌀쌀해진 겨울, 따뜻한 국물의 든든한 수제비 한 그릇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수제비의 고향은 머나먼 중국 서북쪽 바깥이었다. 이곳은 밀이 자라고 양을 방목하는 유목민의 터전이다. 수제비는 이곳에서 밀가루 반죽을 얇게 떼어내 양고기 국물에 삶아낸 음식인 ‘투투마스(Tutumas·禿禿麻食)’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투투마스에 대한 첫 기록은 원나라(1271~1368년) 때 음선정요(飮膳正要)에 나온다. 궁중 요리로 소개하며 ‘밀가루 반죽을 양 다리 삶은 국물에 넣어 끓이고 파, 상차이 다진 것 등을 넣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투투마스는 6세기 이전에 이미 중국에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북위(386~534년) 시기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밀가루를 얇게 반죽해 물에 삶아내는 음식인 ‘박탁(餺飥)’이 등장한다.
박탁은 당나라(618~907년) 때는 불탁(不托), 탕병(湯餠)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신당서(新唐書) 왕황후전(王皇后傳)에서 ‘현종 황제를 위해 생일날 탕병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볼 때 수제비의 조상인 불탁이나 탕병은 특별한 날의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고급 음식이던 수제비가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 불탁(弗托)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썼던 불탁(不托)의 다른 표기법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흉년 구휼을 위해 메밀을 심어 불탁을 만들라’는 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우리의 수제비가 배고픈 백성을 위한 음식으로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중국 서북쪽 일대에는 투투마스가 여전히 있다. 다만 더 이상 궁중 요리가 아니라 유목민의 일상 음식이다. 특히 손님이 갑자기 올 때 그들은 투투마스로 마음을 전한다. 밀 반죽을 세밀하게 떼어내 고양이 귀 모양을 만들고 그것을 양고기 국물에 끓여 낸다. 혹은 반죽을 8할 정도만 끓인 뒤, 채소나 고기와 같이 볶아 손님상에 올린다.
6·25전쟁 이후 널리 퍼진 우리의 밀가루 수제비는 양고기 국물이 아닌 멸치 국물이라도 저 멀리 투투마스의 후예인 셈이다. 손님상에 올리는 투투마스에 깃들인 정성과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끓였던 우리네 수제비는 모두 ‘따스함’에서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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