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K콘텐츠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2023. 12. 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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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교수

'2030 부산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 대한 지지가 부산을 크게 앞질렀다. 투표동향과 판세를 잘못 읽은 탓에 끝까지 기대를 놓지 않은 국민의 실망감은 배가 됐다.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여러 분석이 쏟아졌다. 지난여름 잼버리 사태가 벌어졌을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다는 자조도 나온다.

이 중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 홍보영상이 가장 아쉽다. 33초 길이의 영상에는 '강남스타일'을 배경으로 삼아 정명훈, 조수미, 김준수, 몬스타엑스, 태민, 싸이, 이정재 등 K콘텐츠를 대표하는 연예인그룹이 차례로 출연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선택"과 "오직 하나"를 반복한다. 리야드의 홍보영상이 도시의 다양한 경관과 평범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꾸민 점과 확연히 대비된다.

영상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부산 장면은 겨우 9초만 등장하고 철 지난 노래를 쓰고 유명인만을 내세웠다며 혹평이 쏟아졌다. 물론 유치에 성공했다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고 원인에 대한 냉정한 분석은 다음 기회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K콘텐츠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돌그룹을 중심으로 한 K팝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이 실어나르는 K드라마는 명실상부한 '세계화'를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엑스포는 K콘텐츠의 이런 세계화에 기대는 전략을 구사했다. 세계와 지역을 결합하는 이른바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다.

그러나 K콘텐츠의 세계화가 곧 부산이라는 지역의 매력과 곧바로 연결되는 현상은 아니다. 이 영상의 가장 큰 실수는 '부산엑스포'를 '한국엑스포'로 바꿔놓았다는 데 있다. 지역-국가-세계로 이어지는 연결전략의 오류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이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K콘텐츠는 동시대 세계인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K콘텐츠가 도깨비방망이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K콘텐츠는 장르, 주제, 시기, 스타일에 따라 즐기고 참여하는 집단이 모두 다르다. '강남스타일'이 10년 전 세계를 휩쓸었으니 2030년에 열리는 엑스포를 위한 투표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순진하기 짝이 없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 때 이를 소비하고 향유할 '목표집단'(target group)에 대한 분명한 파악은 매우 중요한 고려요소다. 목표집단에 대한 세밀한 조사와 분석 없이 세계가 K콘텐츠를 좋아하니 투표장에 온 사람들도 당연히 그러리라고 추측했다면 이는 '목표화'(targeting)의 실패다.

K콘텐츠를 지역과 국가의 표상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통해 '유능한 국가'를 입증하려는 시도도 멋쩍다. 근대 이후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3가지 필수 불가결한 요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 해도 모든 국가는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 부가요소를 끌어들인다. 군대, 경제, 역사, 스포츠가 단골로 불려나온다.

대규모 열병식, 경제성장 지표, 찬란한 역사, 세계대회 우승 등을 널리 알리는 일은 국민국가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주 활용되는 방법이다. 문화도 빠질 수 없다. K콘텐츠는 때로는 군대가 되고, 때로는 수출이 되고, 때로는 역사가 되고, 때로는 스포츠가 돼 안으로는 국민을 결집하고 밖으로는 국가의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동원된다.

그러나 K콘텐츠가 곧 군대, 수출, 역사, 스포츠로 치환될 수는 없다. 세계의 '아미'가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고 해서, 세계의 시청자가 '오징어게임'을 즐겼다고 해서, 2030년 부산에서 엑스포가 꼭 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K콘텐츠는 세계가 사랑하는 현상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국가적 또는 국제적 문제를 풀어가는 핵심열쇠는 아니다. K콘텐츠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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