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의사람연구] 설치는 암컷, 그 한 마디

2023. 12. 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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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현장서 부딪힌 성차별만큼
‘여성성’ 대한 자기검열 더 문제
시간 흘러도 깨지 못한 차별지각
지도층의 말 한 마디에 되살아나

‘암컷’이란 발언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만일 ‘수컷’이란 어휘도 자주 사용을 하였더라면 ‘암컷’이란 발언이 이렇게 주목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치는’이란 형용사가 ‘암컷’ 앞에 가서 붙게 되면 영락없는 차별 용어가 되는 바 ‘설치는 수컷’이란 표현은 사실 들어본 적 없다.

언론을 통하여 이 표현을 들으면서 과거 익숙하게 들었던 모욕적인 언사들이 생각났다. 특히 공안행정 분야에서 설치는 여성들은 드물었던 오래전 고위험 성범죄자를 만나겠다는 요청은 언제나 필자의 성별에 꼬리표가 달려 거절됐다. 연구자로서 연구대상을 좀 만나보겠다는 시도는 어쩌면 당연한 소망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 꽤 오랜 기간 동안 사법기관으로부터 영문 모를 거절을 당하였다. 아마 ‘암컷’으로서는 매우 적절치 않은 위험천만한 시도라는 해당 부처의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범죄심리학자로서 편견과 싸워야 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설치는 암컷’이란 표현이 최근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향수 어린 어휘처럼 들린다. 사실상 오랫동안 남들이 나를 ‘설치는 암컷’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통사회에서 주입된 소위 ‘여성성’에 대한 자기검열, 바로 나의 자의식이 문제였다. ‘설치는 암컷’ 혹은 ‘암컷’이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 인정하기를 강요하는 목소리는 ‘여성성’이 부족해서 부적절하다는 자기비하였다.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고유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순간조차도 마음 속 갚은 곳에서는 ‘나서지 말자’, ‘여자답지 않다’란 뒷걸음질이 나서지 못하게 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차별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인 호너는 1960년대 초 여성들에게는 ‘성공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개념은 사실 후기 정신분석학자였던 카렌 호니의 신경증적 불안으로부터 유래한 개념인데, 특히 여성들은 사회문화적으로 부여한 역할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신경증적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협소한 한계 안에서의 삶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는데, 현재보다 더 높고 도전적인 상태, 즉 성공에 대한 열망은 한계를 벗어남으로 인한 불특정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성들의 실존적 두려움일 수도 있는 이것은 사회문화적으로 내면화된 자아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게 만드는 스스로의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데, 여성 성공 모델이 언제나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사례에서 쉽게 발견된다.

물론 혹자는 이미 이런 식의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온몸으로 차별을 경험하여 왔던 필자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그로 인한 고통이 여전하다는 느낌이다. 객관적인 지표로 보자면 딱히 임금 격차나 기회에서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 겪었던 부당한 초기경험은 머릿속에 여전한 상처로 남아 있다. 어쩌면 이런 직접경험이 그다음 세대로 전이되어 한 문화권 내에서의 간접적 차별지각으로 내면화되는 것 같다.

분명한 점은 인종이나 성별 연고지 등으로 인한 차별이 없는, 평등한 자유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피해든 가해든 차별로 찌든 모든 기성세대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소위 여혐, 남혐이란 최근의 성별갈등도 윗세대의 사실상의 차별 극복 노력의 반작용으로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젠더평등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으로 번진 성별 싸움은 아주 소소한 애니메이션의 표현에서부터 이상동기 범죄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만일 이런 사회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라면 성차별적인, 그리고 나아가 성비하적인 어휘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영어권 국가에서 인종차별적 네이밍을 불법화한 이유와 동일하다. 사회의 지도층부터 이런 문제에 대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나마 급속도로 남용되고 있는 차별언어를 줄일 수 있을지는 않을까?

우연히도 새로운 일을 앞두게 되었다. 적어도 현장에서 25년 동안 어떤 어려움들이 자기방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지 목도하였다. 어떤 때는 함께 격분하기도 했고 다른 때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법과 제도 변화 없는 시정의 기회만으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되고 스토킹 가해자의 위치 정보가 피해자에게 전달되도록 하기까지 이십년 이상 걸렸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복지제도가 최선인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선별복지가 자리 잡는 데까지 거의 사십년 이상 걸렸다. 물론 기대만큼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분석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심사숙고하여 세세한 제도를 만들어내었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부디 좀더 다양하고도 참신한 제도 도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묵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을 기대해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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