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발행사 유통계획… 감시망 구멍 탓 시세조종 우려 [심층기획-‘투기판’된 국내 코인시장]
‘온체인 데이터’ 검증할 기관 없어
추가물량 쏟아져도 파악·제재 난항
거래소도 발행사에 공시 강제 불가
불공정거래 난무 땐 투자자만 피해
2024년 총선 탓 입법논의 지연 가능성
“백서 관리할 법정기관 등 명시해야”
수이코인의 발행사는 지난 5월 업비트에 상장하면서 유통계획서를 거래소에 보냈고 7월2일, 7월24일 두 차례에 걸쳐 유통계획서를 변경했다. 최초 공개한 유통계획서와 마지막 유통계획서는 약 6억개의 물량차이가 났고 수이코인의 가격은 5월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가상자산의 유통량은 투자자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다. 아로와나 사례처럼 시장에 풀기로 약속한 물량 외에 다른 물량이 존재한다면 시세조종에 의한 급등과 급락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투자자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유통량을 통해 가상자산 사업의 지속가능 여부를 파악하거나 가치를 산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긴다.
위메이드의 가상자산 위믹스 투자자들은 지난해 11월 위믹스에서 유통량 문제가 불거지자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를 고소하고 나섰다. 추가 유통량 의혹이 불거진 이후 위믹스 가격이 70% 가까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위믹스는 지난해 11월 5대 거래소가 모인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에서 유통량 문제로 상장폐지 처분을 받았다. 지난 9월 엔진코인(ENJ)도 블록체인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유통량이 늘어나 업비트 원화마켓에서 상장폐지되는 일이 있었다. 시세조종 의혹을 받고 있는 피카코인(PICA) 역시 2021년 업비트에서 유통량 문제로 상장폐지됐다.
거래소 등 민간업체들은 가상자산의 공시 책임을 지기 꺼린다. 발행사에 제대로 된 공시를 강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들은 각 프로젝트가 내는 공시를 게시해주는 입장에 불과하다”며 “업권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행사에는 공시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의무가 없는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거래소 탓만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도 “투자자에게 정보를 주는 차원에서는 할 수 있겠지만, 의무를 지운다면 제품의 하자 책임을 마트에만 떠넘기는 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가상자산 공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가상자산 주석공시에 대한 모범사례를 공개하며 가상자산 발행사가 유보물량, 위탁자산, 보호수준 등 중요정보를 최대한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도 가상자산의 유통, 발행, 공시 등이 담길 2단계 입법에 앞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하지만 내년 7월 1단계 가상자산법(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가상자산의 공시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불공정거래 자체를 잡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현재도 수많은 가상자산이 급등락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고래(대량보유자)들의 물량이 국내외를 오가고 있지만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의 2단계 입법 윤곽은 내년 상반기쯤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만 7월 가상자산법 시행에 맞춰 공시시스템이 갖춰질지도 미지수다.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2단계 가상자산법 논의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법이 통과됐지만 가장 중요한 시행령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불공정행위 종류, 미공개 정보의 범위부터 통합공시 등은 반드시 공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가상자산 발행사들이 백서에 유통량을 명시해놓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슬그머니 추가 내용을 변경하거나 끼워 넣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을 관리하는 법적 권한을 가진 법정기관이 있어야 하고, 규정을 어긴 발행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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