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한 예산, 기재부 맘대로 삭감… “월권” 비판 제기

채명준 2023. 12. 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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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방교부세 등 23조 삭감 논란
2023년 60조원 세수 펑크에 재추계
세수 줄어든 만큼 교부세도 줄여
국회의 예산안 심의·확정권 침해
추경 통한 경감 피하고 ‘꼼수’ 선택
국가 부담 지자체에 떠넘기는 셈
재정자립 약한 지방정부에 파장
일부 단체장, 권한쟁의심판 청구

60조원에 달하는 역대급 세수결손의 대응책으로 정부가 꺼낸든 ‘지방교부세 등 23조원 삭감’ 카드가 ‘월권’(越權)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 확정된 예산을 정부가 국회의 동의 없이 삭감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예산 심의·확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중앙정부의 부담을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김으로써 자치재정권을 침해함과 동시에 지역균형발전까지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 및 지자체장 10여명은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황이다.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 예산은 쓰일 수 없다는 ‘재정민주주의’에 입각해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사진=뉴스1
◆‘세수펑크’에 지방교부세 등 23조원 삭감

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방교부세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23조원을 삭감해 세수 부족분을 충당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각각 11조 6000억원, 11조 4000억원이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각 시·도에 보통교부는 -16%, 부동산교부세는 -18.3%로 각각 조정해 지급할 것을 시도에 안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은 중앙정부가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에 주는 일종의 지원금이다. 내국세 총액의 19.24%를 자치단체의 행정운영에, 20.79%는 시·도 교육청에 지원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세 수입이 줄어들면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연동돼 줄어드는 구조다.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지방교부세는 75조2883억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75조 7606억원으로 총 151조489억원이다. 여기서 15%가량인 23조원이 삭감되는 것이다. 

이번 교부세 등 삭감은 60조원에 육박하는 ‘세수결손’ 발생에서 시작됐다. 기재부는 국세 수입 오차가 커지자 지난 9월 세수 재추계를 했고, 그 결과 올해 세수가 본예산대비 59조1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재예측했다. 올해 세수가 줄어든 만큼 이와 연동된 지방교부세 등을 삭감할 수 있다는 것이 기재부의 입장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통화가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조성한 ‘외평기금’ 등 각종 기금 활용 및 각 부처의 예산 ‘불용’(不用)을 통해 세수결손분을 메우고 있다.
◆국회 ‘예산심의권’ 침해…“재정민주주의 지켜야”      

하지만 이는 기재부의 국회 권한 침해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부의 이번 교부세 삭감은 예산심의권을 가진 국회의 동의 없이 이뤄진 일종의 ‘꼼수’로 보기 때문이다.

헌법 제52조 제1항은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며 국회의 예산 심의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예산안을 만드는 주체는 정부지만 이를 심의하고 확정하는 것은 국회의 역할인 것이다.    

올해처럼 세수가 감소할 경우 정부는 국회에 ‘추가경정예산안’ 제출 후 동의를 얻어냄으로써 교부세·교부금 예산을 줄일 수 있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세출감액경정’을, 국채를 발행해 세수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선 ‘세입감액경정’을 실시한다.

세수 감소분 반영을 미루는 방법도 있다. 기존 예산안대로 교부세·교부금을 지급한 후, 이듬해 결산을 통해 차차기 년도에 추가 지급된 만큼을 차감하는 것이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의 세수 감소 충격을 2년에 걸쳐 완화하려는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두 가지 방법 모두 국회의 예산 심의·확정권을 침범하지 않는다.

실제로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당시 8조5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나자 2년 뒤인 2016년에 교부세를 정산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때는 4조4200억원의 세수결손이 나자 감액 추경을 통해 국회를 동의를 얻은 후 당해에 교부세를 세수결손분 만큼 삭감한 바 있다.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획재정부 현판. 뉴시스
하지만 현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추경을 선택하지 않고, 불용, 외평기금 활용, 지방교부세 삭감과 같은 ‘갓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전 한국지방재정학회장 이재은 경기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마그나카르타(영국의 입헌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문서) 이후 시민, 즉 의회의 동의를 받지 못한 예산은 쓰일 수 없다는 것이 ‘재정민주주의’”라며 “재정은 양출제입(지출을 먼저 결정한 후 이에 맞게 세금을 거두는 방식)이 원칙인데 양입제출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유수영 기재부 행정국방예산심의관은 “2013·2014년도에도 (추경 없이 교부세를 당해 삭감한) 사례가 있다”며 “이번에도 법과 제도에 따라서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정자치권 침해…권한쟁의심판 청구

지방교부세 및 교부금 삭감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재정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시대정신인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가는 지방재정의 자주성과 건전한 운영을 장려하여야 하며, 국가의 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서는 아니된다”는 지방자치법 제137조에 2항은 지자체의 자치재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내국세 감소를 이유로 이미 확정된 교부세 등을 삭감함으로써 국가의 부담을 지자체에 떠넘긴 셈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243개 광역·기초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50.1%로, 재원의 절반가량을 지방교부세 등에 의존하고 있다. 예정된 교부세가 삭감되면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이미 진행중인 사업을 중단하거나 지방채를 발행해 삭감분을 충당해야만 한다.

전라북도의 전주시의 경우 올해 책정된 예산 2조5000억여원 중 교부세(5108억여원)가 약 2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번에 교부세 816억여원이 삭감되면서 상임위에서 지방채 1225억원 발행을 의결한 상황이다.

박형배 전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지방교부세 817억원을 포함해 전라북도에서 총 1조원이 삭감돼 이미 인력감축, 사업축소를 강제 받는 상황이지만, 예산권을 쥔 기재부의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못 내는 지자체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러한 초유의 교부세 삭감과 관련해 막상 교부세를 담당하는 행안부는 공문조차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의도적으로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공문은 보내지 않았지만 기재부에서 교부세 삭감과 관련해 발표한 내용을 지자체에 전달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이번 교부세 삭감 사태와 관련해 지난 24일 국회의원 및 자치단체장 10여명은 헌법재판소에 2023년 교부세 임의 삭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황이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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