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 기업의 해결책 "해고 피하라" [마켓톡톡]
기업대출·기업파산 동반 증가
기업대출 연체율도 상승세
가계부채와 함께 소비 갉아먹어
성장 막아서는 ‘해고’ 회피해야
미국의 호황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한국은행은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낮췄다. 한국은 기업대출과 기업 파산신청이 늘고 기업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내년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내년 경제를 끌어내리고 있는 소비 실종의 악순환을 알아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도 살펴봤다.
■ 한미 결정적 차이=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미국 경제가 뜨거워서다. 미 상무부가 11월 마지막 주에 발표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잠정치는 속보치보다 0.3%포인트 상승한 5.3%를 기록했다. 팬데믹 직후를 제외하면 10년 만에 최고치다.
미국의 성장세를 이끈 건 민간 소비다. 미국의 3분기 소비자 지출 증가율은 3.6%였다. 기업투자는 속보치가 0.8%였는데 실제로는 2.4% 증가했다. 정부 지출도 4.6% 늘어났다.
반면 한국은 소비의 감소가 오히려 경기침체를 부추기는 수준이다. 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10월 소매판매지수는 1년 전보다 4.0%, 전월보다도 0.8% 감소하면서 4개월 연속 마이너스였다. 소매판매는 올 7월 -1.7%, 8월 -4.7%, 9월 -2.0%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의 경기 인식도 4개월 연속 악화 추세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7.2로 10월보다 0.98포인트 떨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30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인 2.2%보다 0.1%포인트 낮은 2.1%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경제는 소비가 이끌지만, 수출주도경제인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게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GDP 대비 소비 비중은 이미 지난해 4분기 수출을 추월했고, 이 추세는 지속하고 있다.
■ 소비 실종의 악순환=우리 경제에서 소비의 실종을 부른 직접적 요인은 세계 최고 수준인 가계부채다. 국제금융협회가 지난 11월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34개국 중에서 유일하게 GDP보다 가계부채가 많은 나라였다. 높은 가계부채는 고금리 상황에서 가계의 소비를 막아선다.
지난 3분기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3.4% 증가했지만, 소비로 이어지지 못했다. 소득 증가가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에 집중됐기 때문이다(4.1% 증가).
그런데 이제 고소득층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20일 발표한 '우리나라 가계부채와 소득 불평등(김수현·황설웅)' 논문을 통해 "2018년 이후 고소득 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늘려 원리금 상환액이 증가하면서 소비가 감소했다"며 이들이 사치재 격인 사교육비·외식비를 줄인 이유를 설명했다.
가계대출만 소비를 위축시키는 게 아니다. 기업대출 증가세는 파산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가계 소득의 공백, 소비자심리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소비 악순환의 고리를 구축한다. 기업대출이 증가하는 추세는 최근 몇년 사이 발생한 현상이 아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3년 9월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규모는 647조원이었는데, 10년 후인 2023년 9월에는 1238조2000억원으로 두배가 됐다.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10월 현재 998조원으로 증가하며 11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 실종의 악순환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기업들의 대출 금리가 2년 만에 2%대에서 5.30%대(올 10월 기준)로 상승하면서,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의 연체율은 지난해 0.20%대에서 올 9월 0.49%대로 치솟았다(대기업 연체율은 0.14%). 그 결과 법인 파산신청 건수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10월까지 1363건으로 1년 전보다 66.8% 늘어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향후 3~4개월이 고비가 될 것을 보인다.
■ 해고가 능사인가=더 큰 문제는 기업과 가계 빚 증가세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이다. 국제금융협회가 지난 11월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한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6.1%로 3개월 만에 세계 4위에서 3위로 상승했다. 기업부채 증가 속도는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였고, 증가폭은 말레이시아에 이어 세계 2위였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박춘섭 신임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의 파산은 직접적으로도 충격이 크지만, 해당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경제력을 상실시키면서 소비에 큰 충격을 준다. 전미경제연구소에 2019년 6월 게재된 '기업 파산으로 인한 근로자들의 비용(Employee Costs of Corporate Bankruptcy)'이라는 논문은 "회사가 파산을 신청하면 근로자들의 수입이 첫해 10% 감소하고, 7년간 총 67%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샤이 번스타인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도 지난 2017년 '파산 여파'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기업이 청산되면 지역경제에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불러온다"며 "파산의 여파는 지역경제의 고용을 5년 동안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시켰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기업파산이 증가하자 해당 지역경제에서 창업하는 기업의 수가 5년간 매년 3.7~4.7%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기업대출 증가세가 소비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기업들의 해고 회피 노력이다. 기업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한국의 법적 해고비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두번째로 높다(한국경제연구원 2019년 '세계은행 기업환경평가' 보고서). 미국도 마찬가지다. 경제 매체 포춘은 지난 2월 "미국 기업이 근로자 한 명을 해고하는 숨은 비용은 15만8000~19만1000달러"라고 보도했다.
기업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해고를 최대한 회피해 위기 이후 성장을 위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란제이 굴라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게재한 '경기침체에서 살아나 번영하는 방법'이란 기고문에서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 강하게 성장하려는 기업은 경기침체 중에 해고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며 "근로시간 단축, 성과급 축소, 무급휴가 등을 먼저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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