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엑스포 유치불발이 남긴 값진 경험

김미경 입력 2023. 12. 4. 18:30 수정 2024. 1. 2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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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무산됐다. 1년 6개월동안 부풀었던 기대가 한 순간에 꺼졌다. 사실 부산엑스포 유치는 처음부터 쉽지 않은 과제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보다 무려 1년여가량 먼저 엑스포 유치에 뛰어들었을 뿐 아니라 수십조원을 쏟아부으며 '오일머니 파워'를 과시했다.

한국 부산이 사우디 리야드를 바짝 추격하는 듯하자 사우디 측은 2030 엑스포 개최지 투표를 2개월 가량 앞둔 지난 9월 아프리카 12개 국가에 5억8000만달러(약 7500억원) 규모의 개발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고,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을 리야드로 초청해 100억달러(약 13조원) 상당의 수출과 50억 달러(약 6조5000억원) 규모의 개발 자금 지원 등을 담은 금융 포트폴리오도 제시했다.

결과는 165표 중 사우디 리야드 119표, 한국 부산 29표, 이탈리아 로마 17표. 2030 엑스포 개최권은 리야드에 돌아갔다. 불리한 것을 알고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씁쓸하고 아쉬운 패배였다. 특히 우리가 선전한 만큼 1차 투표에서 투표 참여국의 3분 2 이상 득표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사우디 리야드가 넘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2차 투표에서 이탈리아 로마 표심을 흡수한다면 역전까지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 희망을 부풀렸다.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커서일까. 29표라는 성적표는 '우리는 열심히 했다'는 것을 위안삼기엔 너무 초라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사과했다. 윤 대통령은 엑스포 유치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모든 것은 대통령인 저의 부족의 소치"라며 "엑스포 유치를 지휘하고 총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부산 시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 여러분께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긴급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국민적 실망감은 지지율에도 영향을 줬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주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부산·울산·경남(PK) 지역 지지율이 3.1%포인트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4일 공개한 12월 1주차 주간집계(에너지경제신문 의뢰, 11월 27일~12월 1일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0.5%포인트 내린 37.6%로 집계됐다. 11월 2주차 34.7%에서 11월 3주차 35.6%, 11월 4주차 38.1%로 상승세를 이어가다 3주 만에 상승세가 멈췄다. 부정평가는 59.2%로 집계됐다. '잘 모름'은 3.2%다. 일간 지표를 살펴보면 11월 28일 41.5%, 29일 41.3%로 40%를 웃돌았던 긍정평가는 30일 35.9%, 12월 1일 33.0%로 급락했다. 지역별로는 PK 지지율이 44.2%로 3.1%포인트 내렸고, 대전·세종·충청은 38.2%로 4.1%포인트, 서울은 35.0%로 2.8%포인트, 광주·전라는 19.4%로 2.0%포인트 떨어졌다.

그러나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끝났다고 지난 1년 6개월동안의 엑스포 유치전마저 덮고 묻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실패'다. 윤 대통령을 비롯해 민관합동유치위원회 등 많은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들이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윤 대통령은 총 96개국 정상과 150여차례 만났고, 유치위 관계자들이 국제박람회기구 180여개 회원국을 만나며 다닌 거리는 무려 지구를 495바퀴 돈 것과 같다.

그렇기에 비록 엑스포 개최권은 리야드에 내줬지만 확장된 '외교 네트워크'는 자산으로 남았다는 자평이 가능한 것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정말 2035 엑스포 유치에 도전한다면 우리의 이번 실패는 반드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엑스포 유치전을 총괄했던 인사들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나친 낙관론으로 윤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고, 유치전에 막대한 예산을 쓰게 만들고, 국민들을 희망고문했다는 이유다. 그들이 실제로 경질된다면 '희망고문'이 가장 큰 죄목이 될 듯 하다.

그래서일까. 얼마전 접했던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화성 헬리콥터인 인제뉴어티의 50번째 비행 성공 소식이 떠올랐다. 인제뉴어티는 지난 2021년 4월 화성에서 첫 비행에 성공하고 우주과학 역사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 대기가 희박한 화성에서 헬기를 띄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인제뉴어티의 성공으로 공중탐사가 가능해졌다.

인제뉴어티 개발 책임자인 미미 아웅은 6년 간 팀을 이끌면서 900억원 상당의 연구비를 썼다고 한다. 미미 아웅의 연구팀이 수없는 실패를 딛고 성공하기까지 그들을 믿어준 나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사는 연구가 실패했다고 연구책임자를 자르지 않는다고 한다. 연구 실패의 원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 그 원인을 해결할 적임자로 여기는 것이다.

한국은 문제가 생기거나 실패를 하면 담당자를 경질하는 것으로 책임을 묻는다. 당연히 그가 가진 지적·인적 자산과 경험치는 사라진다.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돌아가고 경질설이 나왔을 때 나사를 떠올린 이유도 그 때문이다. 외교는 나라 간의 합의된 문서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문서 이면에 존재하는 인적 교류와 네트워크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여기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값진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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