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민속주 안동소주’ 김연박 대표] “33년 만의 신제품…물 타지 않은 25도 민속주 안동소주 곧 출시”
“민속주 안동소주 25도 제품(미출시)에는 안동소주의 개성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술 한 모금을, 목 안으로 머금은 뒤 마지막에 안동소주 특유의 흙 향과 풀 향이 살짝 치고 올라오는데, ‘그래 이게 안동소주지’라고 생각했다. 평소 자기주장 센 민속주 안동소주가 낯선 사람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새로 터득한 느낌이다.” (민속주 안동소주 25도 시음자 1)
“물을 희석하여 도수를 맞춘 것이 아닌 증류 원액 25도라니, 신기했다. 매우 부드럽고, 끝에는 군고구마 껍질의 탄 부분에서 느껴지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여운이 남는다.” (민속주 안동소주 25도 시음자 2)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전통주 숍에서는 지방의 한 전통주 양조장이 기획한 시음회가 열렸다. 여기저기서 흔하게 열리는 게 시음 행사지만, 이날 행사는 의미가 남달랐다. 시음회 제목은 ‘민속주 안동소주 신제품 시음회’였다. 경북 안동에는 안동소주 이름을 내건 양조장만 6~7곳이나 된다. 그중 한 곳에서 여는 신제품 시음회가 뭐 대단한 행사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날 행사를 주관한 양조장이 민속주 안동소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왜냐면 1990년부터 민속주 안동소주를 생산·판매해 왔지만, 알코올 도수 45도 한 제품만 만들어, 최근까지 30여 년 동안 신제품 출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33년여 만에 처음으로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사전 시음회 행사를 열었다는 얘기다.
민속주 안동소주가 어떤 술인가. 2020년 별세한 조옥화 여사가 안동소주 제조법 중 가장 보편적인 방법을 복원, 1990년 대한민국 최초로 대중에게 선보인 술이 민속주 안동소주다. 술 개발자 이름을 따서 ‘조옥화 안동소주’라고도 불리는 이 술은 안동소주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국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술이기도 하다.
작고한 조옥화 여사가 갖고 있던 안동소주 관련 두 가지 타이틀(무형문화재·식품 명인)은 현재 2대 민속주 안동소주 대표인 김연박(조옥화 여사 아들)씨와 그의 아내 배경화씨에게 고스란히 전수돼 있다. 아들 김연박 대표가 대한민국 식품 명인을, 며느리 배경화씨가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타이틀을 갖고, 부부가 민속주 안동소주를 같이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조옥화 여사의 친손자인 3대 김윤근(김연박 대표 아들) 본부장이 전수 장학생으로 지정돼,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민속주 안동소주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증류 원액과 자가 누룩 사용해 차별화
안동소주는 ‘물 타지 않은 증류 원액’으로 만든 45도 안동소주 단일 제품만 내놓고 있는데, 이 같은 전통은 1990년 조옥화 여사가 민속주 안동소주를 상업 생산할 때부터 고수해 온 것이다. 1990년부터 현재 2023년까지 무려 33년간 45도 한 제품만 만들어온 것이다. 민속주 안동소주 김연박 대표는 “현재 물 타지 않은 증류 원액을 안동소주로 판매하고 있는 안동소주는 우리 민속주 안동소주뿐”이라며 “물을 타지 않는 이유는 오랜 세월 내려온 안동소주 제조법이 그렇기(물을 타지 않는다)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맑고 깨끗한 맛과 숙취가 없는 것이 민속주 안동소주의 특징이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민속주 안동소주의 차별화 포인트는 ‘45도 증류원액 사용(물 타지 않는다)’뿐이 아니다. 전통 누룩 소재인 밀을 통밀 상태로 분쇄해, 20일간 발효시킨 자가 누룩을 사용하는 양조장 역시, 민속주 안동소주 외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누룩 제조에 20일 그리고 술덧(증류 전인 발효주 상태) 제조에 또 20일을 보내 총 40일 이후에 증류를 거친다. 증류 원액에 물 타지 않는다고 해서 증류 직후 곧바로 제품화(병입)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6개월, 평균 1년 정도 스테인리스 숙성 탱크에서 시간을 보낸 뒤에, 병입해서 시중에 내보낸다.
물 타지 않고 도수 낮춘 안동소주 개발
민속주 안동소주의 차별화 포인트였던 ‘증류 원액 제품’은 한편으론 외연 확대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알코올 도수 45도 단일 제품만으로는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점점 도수 낮은 술을 찾는 음주 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사실 45도 소주는 증류주 중에서도 도수가 높은 편이다. 가령 증류식 소주의 절대 강자 화요를 예로 들면, 알코올 도수가 가장 낮은 17도 제품부터 시작해, 25도, 41도, 53도 제품까지 다양하다. 술이 센 소비자라면 독한 술을 선호하겠지만, 도수 높은 술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도 많지 않은가. 그러니 도수가 다른 제품을 여럿 만들어 소비자층을 넓게 공략하는 게 상식적인 영업 전략이다.
그러나 그동안 민속주 안동소주는 고집(?)을 피웠다. 안동소주의 전통적 제조법에 따라 ‘증류 원액 45도 소주’를 고수해 온 탓에 도수 낮은 술을 선호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민속주 안동소주 팬덤’으로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안동소주 생산 업체 중 안동소주의 정통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매출 실적을 거두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45도 안동소주 단일 제품’을 30년 이상 고수해 온 민속주 안동소주에 변화를 가져 온 주역은 조옥화 여사의 친손자인 3대 김윤근 본부장이다. 김 본부장은 민속주 안동소주 25도 제품을 개발, 국세청으로부터 최근 제조면허 허가까지 받았다.
물 타지 않고 도수 낮춘 비법은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 타지 않은 증류 원액’을 고수해 온 민속주 안동소주가 알코올 도수 45도 제품이 아닌 25도 제품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상식적으로 보면 알코올 도수 45도를 25도로 낮추려면 부득이 비슷한 정도의 물을 첨가해야 한다.
그러나 민속주 안동소주는 이번(25도 안동소주)에도 ‘물 타지 않은 증류 원액’을 고수했다. 김연박 대표는 “증류 과정 후반부에 나오는 원액은 알코올 도수가 5도 밑까지도 떨어지는데, 이처럼 도수 낮은 원액까지 합치면 물을 타지 않고도 ‘증류 원액 25도’를 맞출 수 있다”며 “증류 원액 고수는 민속주 안동소주만의 자랑인데, 도수 낮은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이 원칙을 깰 수는 없다”고 말했다.
‘증류 원액 25도’는 부연 설명이 꼭 필요한 대목이다. 술 증류란 알코올 끓는 점과 물 끓는 점 차이를 이용해 알코올을 분리하는 것이다. 물은 100℃에서 끓는 반면, 술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순수 알코올(에탄올)은 78.3℃에서 끓는다. 그래서 증류하면 먼저 끓는 알코올이 먼저 나오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물도 같이 나오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처음에는 70도를 넘었다가 점점 5도 정도로까지 낮아진다.
그래서 도수 높은 원액을 만들 경우에는 후류를 미리 끓여 평균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는 걸 막는다. 또 반대로 도수 낮은 증류주, 가령 알코올 도수 25도 제품을 만든다면, 증류 과정에서 알코올 도수가 5도까지 떨어지더라도 버리지 않고, 바로 사용하면 된다. 도수 높은 본류와 도수 낮은 후류를 섞으면 알코올 도수를 25도 정도에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민속주 안동소주 김 대표는 기자에게 출시 전인 25도 안동소주 한 모금 시음을 권했다. 민속주 안동소주 25도 제품 향을 우선 맡아본 뒤 한 모금 들이켰다. 향과 맛이 다 구수했다. 고소하다기보다는 구수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역한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전 시음회에 참가한 전통주 마니아들로부터 호평받은 민속주 안동소주 25도 제품은 언제 출시될까 궁금했다. 김윤근 본부장은 “출시 준비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 된다”며 “이르면 올 연말쯤 세상에 내보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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