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파적 <47>] ‘저 양반은 우리 편에서 뽑은 사람이야!’ 과다대표의 심리학

김진국 2023. 12. 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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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18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로 고통받고 있던 미국인(엄밀하게 말하자면 미국 거주 영국인들)의 비애를 잘 드러내는 유명한 말이다. 당시 대영제국은 영국령이었던 미국 동부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면서, 그들이 선출한 국회의원이 영국 의회에 들어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돈은 세금으로 악착같이 걷어가면서 우리가 뽑은 대표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식민지 미국인의 분노는 영국 본토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미국 독립전쟁(1775~83)으로 폭발한다.

김진국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이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뜻을 관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간접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여기서 대의(代議)는 문자 그대로 ‘대신 의논한다’는 뜻이다. 지금 대부분 나라에서는 대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그만큼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권리를 논하고 이해관계를 조절할 대표자를 뽑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뽑아 놓은 대표자가 전체 유권자의 뜻을 고루 공정하게 대변하지 않고, 특정한 일부 집단의 이익만을 편향되게 대변한다면 어떨까. 또한 우리가 뽑은 대표자가 특정한 직역(職域), 특정 계층, 특정 인종 혹은 특정 집단의 이해만을 대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멀리 갈 것 없이 제20대 대통령 선거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대권 주자로 부각되고 실제 후보자로 선출되어 당내 경선을 거친 이들, 결국에는 자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 최종적으로 본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들의 면면 말이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경우, 당내 예비 경선을 거쳐 본경선에 진출한 사람은 정세균, 이낙연, 추미애 등 세 명의 당대표 출신과 이재명, 김두관 등 두 명의 도지사 출신 그리고 박용진 의원 등 여섯 명이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법대 출신인 정세균, 이낙연, 판사 출신 추미애, 변호사 출신 이재명을 포함하여 법조인 비율이 6명 중에 4명 즉 3분의 2(66.66%)에 달했다. 법조계가 기형적으로 많은 ‘과다대표(overrepresentation)’의 양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상수, 하태경 의원과 황교안 전 총리,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4명이 2차 경선에서 탈락하고, 최종적으로 원희룡, 유승민, 홍준표, 윤석열 4인이 본경선에 이름을 올렸다. 경제학을 전공한 유승민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검사 출신 홍준표, 윤석열, 판사 출신 원희룡 등 네 명 중 세 명이 법조인(75%)이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도 매일반이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법조인은 지역구 42명, 비례대표 4명을 포함 총 46명으로 15.33%였다. 전체 국민 가운데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0.05% 미만인 것을 고려하면 이 역시 과다대표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법조인들이 일반 여타 직역보다도 법률 전반과 행정 절차에 익숙하고 해박하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막론하고 법조인들이 이런 분야에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법조계의 이익을 상대적으로 더 대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인간적 한계까지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소대표가 지닌 문제

과다대표와 더불어 ‘과소대표(underrepresentation)’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더 넓은 인구 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서 특정 영역에서 특정 그룹이 대표권을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거나 적다면, 그 대표권이 편향적으로 행사될 것이라는 것은 합리적 의심 아닐까. 그들이 자연스레 이익 단체 역할까지 겸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회경제적으로 소수집단의 경우에는 오히려 과소대표가 문제 된다. 역시 우리나라 21대 국회의원의 경우를 볼 때 전체 300명 중 여성 의원은 18.5%에 불과하다. 전 국민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50.1%)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과소대표다. 물론 이런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미성년자들은 차치하더라도, 청년과 중장년 그리고 노년층까지 세대별로 모든 유권자가 대표자로 선출되기 위해서 골고루 유권자의 표를 나눠 가져야 하느냐는 말까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요즘 문제 되고 있는 소위 ‘개딸’들의 경우 일부 소수의 집단이 전체 다수를 좌지우지하려는 본말이 전도된 대표적인 과다대표 사례일 것이다. 오죽하면 이들은 자당 내부에서 조차 비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과다대표나 과소대표의 문제는 간접민주주의가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통 언론에 이어 소셜미디어(SNS)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넓혀 가면서 이제는 선출직의 범위를 넘어 사회 전반의 문제가 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그 근거를 확보하려면, 대표자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한 가장 편리한 방법은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론조사가 과연 공정하게 유권자의 이익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레거시 언론과 여야 각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이익단체, 시민단체에서부터 거대한 포털 사이트와 SNS를 장악한 이른바 인플루언서들까지 나서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니, 건전하고 상식에 입각하여 판단해야 할 일반 유권자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으로 당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드루킹 사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여론 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가 대의민주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대의민주주의 핵심 중 하나가 여론 형성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엄청난 규모의 여론 조작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반을 통째로 흔드는 국기 문란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 일반 시민은 드루킹 같은 범죄 조직이 여론몰이를 할 때, 그것의 진위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 순위, 댓글 순위 등에 쉽게 선동당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던 것처럼, 뇌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의 뇌는 대다수 혹은 유명인이 하는 말에 끌리게끔 세팅되어 있다. 더구나 먹고살기에 바빠서 일상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에도 급급한 선량한 시민은 언론이나 정당에서 혹은 각종 SNS에서 던져주는 정보를 차근차근 검증할 시간도 여력도 없지 않은가.

심리학자 키스 E. 스타노비치 교수는 이렇게 고백한다. “대학교수 집단은 압도적이라 할 만큼 자유주의적이면서 한쪽에 크게 치우쳐 있다.” 그에 의하면 미국 하버드대의 예술 및 과학 분야 교수진 가운데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밝힌 이는 2% 미만이었고, 리버럴하다고 답한 사람은 80%가 넘었다고 한다.

과다대표, 과소대표 이야기를 하다가 왜 뜬금없이 대학교수 이야기를 하느냐고? 기존의 정당이나 언론, SNS는 그렇다 치자. 교수들은 자신의 개인적 정파성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인 연구만은 가장 중립적인 입장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교수들이 오히려 더 편중된 정보를 쏟아내고 있는 게 현 미국의 실태인데, 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 해서 하는 말이다.

과다대표나 과소대표를 막고, 진정한 대의정치를 구현하려면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그것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려면 정보를 만들고, 나르고, 받는 이 모두의 인간적 본성과 문화적 한계를 고려한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인간 본성에 입각하지 않은 그 어떤 정책도 탁상공론이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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