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문재인의 탄식…수도이전 위헌 결정에 “머리 참 좋다”

한겨레 입력 2023. 12. 4. 14:25 수정 2023. 12. 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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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천일야화][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43화 신행정수도
2002년 12월8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신행정수도 건설 관련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 후보는 “신행정수도 건설은 지역불균형에 과감하게 메스를 가하여 국가의 면모를 일신하고자 하는 국가개조 프로그램”이라며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면 1년 이내에 계획수립 및 행정수도 입지선정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수도 이전이라는 파격적 공약을 내놓았다. 지방을 사랑하는 노무현다운 공약이었다. 이 문제를 놓고 지역과 성향에 따라 사람들의 찬반이 엇갈렸다. 과연 노 대통령이 공약을 지킬지 세간의 관심사였다. 노 대통령은 특유의 뚝심으로 이 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2003년 4월8일(화) 오전 국무회의에서 신행정수도기획단을 꾸리는 안이 통과되었다. 4월10일(목) 저녁 명동 뱅커스 클럽에서 국책연구원장들과 회식을 했다. 자연히 신행정수도가 화제에 올랐다. 이규방 국토연구원장은 외국의 경우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와 호주의 캔버라는 실패, 캐나다의 오타와는 성공한 사례라며 신행정수도의 성공 조건으로 대도시 인접의 인구 50만 규모, 큰 대학과 대기업 유치, 문화적 자립 가능성을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서대전과 계룡대 사이 7백50만평 규모 땅이 있는데 경부선 철도, 경부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와 인접해 매우 좋은 입지라고 말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바로 세종시 부근인 것 같아 이 원장의 전문가적 혜안에 놀랐다.

신행정수도기획단 신속히 출범
1년여 만에 충남 연기 후보지로
“정책 결정자는 지방 살아봐야”
노 대통령 굳건한 의지로 추진

11월6일(목) 3시 신행정수도 국정과제회의가 열렸다(정부청사 별관 대회의실). 이규방 원장과 최병선, 권용우 교수의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은 흡족한 표정으로 신행정수도위원회가 일을 잘한다고 격려했다. 김학원, 신영국, 이강두, 정세균 등 국회의원들도 참석했는데, 각 당 입장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신행정수도뿐만 아니라 균형발전, 지방분권 등 소위 3대 특별법이 80%를 넘는 압도적 찬성을 얻어 2003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해가 바뀌어 2004년 1월13일(화) 오전 국무회의에 이어 3대 특별법 서명식에 고건 총리,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심대평 충남지사, 김완주 전주시장, 강용식, 김안제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이 서명한 만년필을 강용식 신행정수도 건설 자문위원장에게 전달, 나중에 신행정수도 기념관에 전시할 거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1월13일 오전 청와대에서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등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 공포 서명식을 가졌다. 서명식에는 고건 국무총리를 비롯해 관계부처 장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및 각종 국정과제위원회 위원장, 심대평 시도지사협의회 지방분권특별위원장,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5월21일(금) 11시 신행정수도위 위촉장 수여 및 다과회가 열렸다(인왕실). 노 대통령이 소설가 이호철 위원에게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 썼을 때는 만원 아니었어요, 틀렸어요”라고 농담을 했다. 이호철 작가가 “그때 1966년 서울 인구가 380만명”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강용식 위원장이 “충청도에 살다 보니 신행정수도에 눈물겹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권용우 교수(서울시립대)는 “1978년 신행정수도 계획에 참여했는데, 인구 분산은 못하고 머리카락만 분산시켰다”(탈모)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마무리발언에서 신행정수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서울은 이대로 가면 관리 불능이 된다. 정책 결정자는 지방에 좀 살아봐야 한다. 서울에 살면 분권적 시각을 갖기 어렵다.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 전국 불균형을 서로 조정해야 한다. 서울에도 신행정수도 지지자가 있다. 신행정수도를 동북아 새 문화의 상징으로 만들자”고 열변을 토했다.

이어진 오찬(1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고건 총리는 “일본은 ‘국회 이전에 관한 법’을 만들고 30년 걸려 겨우 후보지 세곳을 정했는데 우리나라는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나더러 축사를 하라기에 “서울 인구가 백년 전 20만이었는데, 지금은 수도권 순유입인구가 1년에 20만이니 신행정수도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후 2시 신행정수도추진위원회 현판식에 고건 총리, 김안제 공동위원장, 강용식 자문위원장, 강동석 장관, 김영주 경제수석과 내가 테이프를 끊었다.

고건 국무총리가 2004년 5월21일 오후 정부 중앙청사에서 거행된 신행정 수도건설추진위원회 현판식에서 위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우 청와대정책기획위원장, 강용식 자문위원장, 김안제 위원장, 고 총리, 강동석건교부 장관, 김영주 추진단장. 연합뉴스

균형발전 5개년 계획 보고회 때
이명박 불참-손학규 굳은 표정에
“신행정수도-균형발전-지방분권,
수도권과 지방 상생 패키지” 강조

6월11일(금) 오후 3시 신행정수도 후보지가 진천·음성, 천안, 연기, 논산 네곳으로 좁혀졌다는 보고가 있었다(집현실). 6월15일 후보지를 발표하고 평가위원회 심사 및 공청회를 거쳐 8월 최종 확정한다고 했다. 6월17일(목) 10시 균형발전 5개년 계획 보고회가 열렸다(영빈관). 대통령과 장관들이 참석했고, 16개 시·도지사들이 참석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대신 원세훈 부시장이 참석했고, 손학규 경기지사는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문 채 눈을 질끈 감고 앉아 있었다. 노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균형발전, 지방분권은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하나의 패키지”라고 연설했다.

6월29일(화) 오후 4시 우리당 수도권 의원들의 ‘균형발전 및 신행정수도’ 토론회가 영등포시장 창고 당사에서 열렸다. 천장에 난방 파이프가 지나가는 진짜 창고였다. 김밥을 먹으며 7시 반까지 회의했지만, 수도권 의원 78명 중 24명만 참석했다.(참석 신청은 44명) 그나마 잠시 앉아 곧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아 끝까지 남은 의원은 7~8명에 불과했다. 명색이 여당이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6월30일(수) 오전 4시간 동안 경제5단체 초청 국정과제 설명회가 열렸다.(롯데호텔 2층) 무려 7백명이 신청해 선착순 5백명으로 제한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1부(문정인, 윤성식, 성경륭), 2부(김안제, 김용익, 고철환)로 나누고 내가 사회 겸 기조발제를 맡았다. 신행정수도에 관한 질문이 제일 많았는데, 모든 신문이 크게 보도했다. 조중동은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수도 이전이냐”는 중소기업인 한두명의 발언을 크게 다뤘다.

7월5일(월) 아침 7시 신행정수도 입지 평가보고에 노 대통령, 김안제, 권용우 평가위원장 등 10명이 참석했다(백악실). 연기·공주가 89점으로 1위, 공주·논산 80점으로 2위, 천안 3위, 진천·음성 4위였다. 반경 10㎞ 이내는 2004년 1월1일 공시지가로 보상한다고 했다. 인접지역에 투기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니 강동석 장관이 동의했고, 노 대통령이 투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10월7일(목) 대전 토지공사 연수원에서 국정과제위원회 합동 워크숍을 가진 뒤 버스로 신행정수도 예정지를 견학했다. 부지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30분 걸어 원수봉(250m)에 올랐다. 산꼭대기에서 토지공사 박수홍 부장이 도면을 놓고 설명하는데 탁 트인 벌판 전망이 아주 좋았다. 원수봉, 전월산을 배경으로 앞에 금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서울 축소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안개가 끼어 계룡산은 보이지 않았다.

2004년 10월21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수도이전 관련 헌법재판소의 선고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이전 관습헌법 위반’ 결정
기발한 반대 논리라며 놀라워해
“상식적으로 납득 안돼” 말하자
노 대통령 “헌재에 의한 쿠데타”

10월21일(목)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이 ‘관습헌법’을 위배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집무실에서 차별시정기구 관련 회의를 마친 노 대통령이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헌재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문 수석이 “(재판관들이) 머리가 참 좋다”고 답하니, 노 대통령이 “나도 처음 든 생각이 ‘머리가 참 좋구나’ 였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라고 말하니, 노 대통령이 “헌재에 의한 쿠데타”라고 말했다. 곧 이어 열린 국정과제위원회 비서관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춘희 신행정수도추진 부단장(나중에 초대 세종시장)은 실업대책위원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10월22일(금) 종일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김우식 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야당 의원이 김 실장에게 헌재 결정에 승복하는지 물으니 “법적 효력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라고 모범적 답을 했다. 나는 “관습헌법이란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얼마나 논리가 궁하면 관습헌법을 들고나오겠습니까. 수긍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는데, 아무도 물어주지 않아 발언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되어 반쪽 신행정수도가 됐다. 현재 행정부는 세종시에, 대통령과 국회는 서울에 있어서 시간, 노력의 낭비와 행정 비효율이 크다. 수도 이전은 미래에 대통령과 국회가 모두 세종시로 가야 완성될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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