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 첨예한 31개국 단일대오로 묶어내는 ‘조율·타협의 달인’[Leadership]

이현욱 기자 2023. 12. 4.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Leadership -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내년까지 임기 1년 추가로 연장
총 10년간 나토의 ‘수장’ 역할
유럽·북미·아시아로 외연 확대
11년 노르웨이 총리 역임하며
4%대 경제성장률 등 성과 인정
트럼프의 방위비 · 탈퇴 협박 때
끊임없는 설득으로 미국 잔류시켜
이후 ‘큰형님’ 미국의 절대적 지지
지난달 21일 북마케도니아 스코페를 방문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위기 속에서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외형과 영향력을 확장해온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1년 더 나토의 수장으로 근무하는 중책을 맡았다. 역대 두 번째 최장수 사무총장이 된 그는 나토 창설 75주년을 맞는 내년까지 10년간 나토 수장 자리를 지키게 됐다. 나토 사무총장 임기가 4년이 원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회원국들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조율과 타협의 리더십’으로 변화하는 국제 안보 조류 속에 저마다 이해관계가 다른 31개 회원국을 결집해 단일대오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 군사 협력의 지평을 북미·유럽을 넘어 아시아 등 다른 대륙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반전운동가에서 나토 수장으로 =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1959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아버지가 외교장관을 지낸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나토라는 세계 최대 안보·군사 기구를 이끌고 있어 군인 출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학생 시절 반전운동가로 활동했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며 미국 대사관을 향해 돌을 던졌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다. 오슬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통계청 관리, 오슬로대 강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3년 오슬로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2000∼2001년 노르웨이 최연소 총리를 지냈고, 2005년 다시 총리직에 올라 2013년까지 재임했다. 이 기간에 노르웨이 방위력 증강을 이끌었고,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유일하게 평균 4% 이상의 경제성장률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10.5%의 재정 흑자, 실업률 3.4% 등 눈에 띄는 경제 성과를 남겼다. 국정 운영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2013년부터 유엔 기후변화 특사 자격으로 처음 국제 조직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이듬해 나토와 인연을 맺었다.

나토 사무총장은 민간조직과 군사조직으로 이원화된 나토의 민간조직 수장이지만 나토의 각종 협의와 의사결정을 조율하며 결정 사항을 집행할 책임을 지기 때문에 군사와 무관할 수는 없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국제사회에 위협을 알렸으며, 러시아에 침략의 후과를 경고했다. 개전 이후에는 러시아의 민간인 살상과 불법 무기 사용 등에 관한 책임을 묻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표명했다.

◇나토 외연과 영향력 확장 주력 =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자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나토 영향력 확장을 위해 회원국 가입 문호를 넓혀갔다. 올 4월 중립국인 핀란드를 새로운 회원국으로 품었고, 마찬가지로 중립국인 스웨덴의 가입을 돕기 위해 튀르키예와 헝가리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나아가 동맹의 저변을 북미와 유럽에 국한하지 않고, 인도·태평양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태평양은 글로벌 위협에 직면했고 우리는 글로벌 파트너들과 함께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을 위협하며 근원적인 군비 증강을 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새로운 국제 안보 위협으로 대두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아태 지역 파트너국으로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미국 CNN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대만이 크게 떠올랐다”며 “아태 4개국 정상이 참석한 것은 북미·유럽 군사동맹 의제에 우크라이나만이 주요 안보 이슈가 아님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조율과 타협의 달인 =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조율과 타협의 달인’으로 통한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너무 적게 낸다며 탈퇴 위협을 하자 끊임없는 설득으로 잔류를 시키는가 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 경시 기조로 흔들리던 회원국 간 단합을 유지하는 데도 중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회원국 방위비 지출 확대를 두고 미국과 유럽 간 신경전이 계속되자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7월 9년 만에 ‘방위비 지출 가이드라인’을 ‘연간 GDP의 최소 2%’로 개정하는 합의를 도출했다. 이전까지는 최대 2%였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 사항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실제 올해 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한 회원국은 11개국으로 2014년(3개국) 때보다 3배가량 늘었다. 국방비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독일도 내년 처음으로 GDP의 2%를 넘길 예정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나토의 큰 형님’ 격인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 유임도 미국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역대 유럽 국가 정상급 인사가 맡은 사무총장은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선출될 수 있으며, 관례적으로 미국의 지지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에 대해 “꾸준한 리더십과 경험, 판단력으로 2차 세계대전 이래 유럽 안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전에서 우리의 동맹을 이끌었다”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단합되며 결의에 차 있다”면서 “내년 워싱턴DC에서 열리는 75주년 기념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그와 계속 협력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