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찍었던 270만 표, 내년 총선에서 되찾겠다”
‘위기’라는 꼬리표가 제21대 국회 내내 정의당을 따라다녔다. 선거 결과가 정의당의 위기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정의당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2.37%(2017년 대선 6.17%),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9석(2018년 지방선거 37석)을 얻는 데 그쳤다. 지난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에서는 권수정 정의당 후보가 1.8%를 득표하는 데 머물렀다.
당의 위기를 돌파하는 해법을 두고 ‘제3지대 신당으로 재창당’ ‘선거연합정당’ ‘정의당 해체 수준 혁신’ 등 이견이 격돌했다. 11월5일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고 선거연합 신당 추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리기로 결론 내렸다. 정의당을 플랫폼으로 “민주노총 등 노동세력, 녹색당 등 진보정당, 지역 정당 등 제3의 정치세력”과 함께한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김준우 변호사를 인준했다. 김준우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정치 신인’이다. 그런 그가 현재 ‘정의당을 향한 불신과 회의를 뚫고 총선 체제 정비’라는 난제 앞에 섰다. 선거연합정당을 두고 당내 다양한 의견 그룹의 반발도 여전하다. 뿌리 깊은 진보정당의 갈등을 잘 이해하고, 차이를 조정하기 위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김준우 위원장은 그간의 정의당 계파 갈등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정의당의 실패에 대한 책임감과 부채감도 정의당의 기성 정치인에 비해 가볍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다. 정의당에서 탈당했거나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 캠프에 합류한, 그래서 당내에서 “껄끄럽다”라는 인사들과도 접촉한다.
비대위원장 인준 후 일주일이 지난 11월21일 김준우 위원장을 만났다. 정의당과 선거연합정당을 향한 의문, 그리고 비대위의 목표와 구상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김준우 위원장의 목표는 간결하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을 찍은 270만 표를 돌아오게 하겠다. 제3지대까지 갈 필요도 없다.” 정의당에 실망한 전통 지지자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하겠다고 했다. 김준우 위원장의 뒤에는 취임사에 썼던 ‘세상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 정의당’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비대위원장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내부 조직을 정비하는 동시에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여러 인사를 만났다. 정의당이 현재 고민하는 바를 솔직하게 토로하고 이야기를 듣는 상황이다. ‘류호정·장혜영 탓이다, 심상정 탓이다, 운동권 여러 정파의 협잡 정치 탓이다’ 이렇게 책임자를 지목하고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당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평가와 논의가 더 필요하다.
정의당이 왜 위기라고 진단하나?
그동안 진보정당은 복지 영역에서 파괴력을 보여줬다. 이걸 2010년대 중반 넘어오며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서 적극 수용했다. 결국 실천적 변별성이 사라졌다. 진보정당이 주장하던 가치들은 한국 사회에 수용됐는데, 그다음으로 설득력 있는 의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선거제도의 장벽으로 의석수가 확보되지 않으니 구성원들이 지쳤다. (의석수가 없으면) 국회에 일자리가 없다. 진보정당에서 경력을 쌓은 국회 보좌진들이 불가피하게 민주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진보정당 때의 문제의식을 다루다 보니, 법안들이 가지는 유사성이 더 커졌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는 9.7%(270만 표)를 얻었다.
4년 만에 존재감이나 호감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동안 의정 활동을 유능하게 하지 못한 것도 분명히 평가돼야 한다. 한편으로 유권자들은 정의당과 민주당의 관계를 주의 깊게 보는 것 같다.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라는 정의당의 캐치프레이즈가 정의당이 노동 중심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연합정당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당이 중심을 잡고 자신의 정치를 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색깔이 완전히 다른 정당이었다. 지금은 색깔은 같은데 농도가 다른 정당, 태도나 진정성이 다른 정당 정도로 인식된다. 정의당의 독자적인 존재 의미에 회의적인 유권자들이 떠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왜 그런가?
기후 문제를 예로 들면 정의당은 민주당과 ‘가덕도 신공항’에서 다르다(10월6일 본회의를 통과한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법’에 정의당 의원 6명만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표결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 156명은 기권한 10명을 제외하고 모두 찬성했다).민주당은 지역발전 공약에 투항하고 지역개발 토건 요구에 부응하는 정당이다. 정의당은 그에 대응해 견결하게 반대하는 정당이다. 또 그동안 우리가 유럽 사민주의의 ‘패스트팔로어(추격자)’였다면, (정책 영역에서) 민주당은 정의당의 패스트팔로어였다. 그러면 우리가 다음이 있어야 한다. 결국은 정의당이 노동이나 기후 문제에서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바람이 있고, 그 바람이 내년 총선 비례명부 작성 과정에서 반영돼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연합정당을 띄웠다.
지금까지 결정된 건 크게 3가지다. 선거연합정당을 한다. 연합의 대상은 제3지대에도 열려 있지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는 당연히 함께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례 1·2번을 외부에 연다.
선거연합정당은 위성정당과 무엇이 다른가?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가 같은 당명으로 출마한다.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은 자당의 의석을 늘리기 위한 수작이다. 정의당은 내년 총선에서 몇 석을 얻을지 알 수 없다. 거기다가 1·2번을 바깥에 열겠다고 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비례 위성정당이 아니라 기득권을 내려놓은 선거연합정당이다. 정의당이 원내 제3당의 지위로 얻게 되는 기호 3번, TV 토론에서의 쿼터(자리) 같은 특권을 3% 봉쇄 조항의 벽을 아직 넘지 못한 다른 진보정당과 공유하는 거다.
목표 의석수가 궁금하다.
의석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구도와 선거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을 찍은 표가 270만 표다. 제3지대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 표를 돌아오게 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정의당 광역비례 표를 합친 게 92만 표다. 정의당에 실망한 전통 지지자들이 돌아오면, 그걸 밑천 삼아 2026년 지방선거나 그 이후를 볼 수 있다.
선거연합을 구성할 단위는 확정했나?
현재까지는 공식적으로 녹색당, 노동계 대표자, 지역 정당 등을 만났다. 진보당, 노동당과도 만날 예정이다. 11월27일 민주노총 선거가 끝나면 민주노총을 공식 방문하려 한다. 처음 공개하는 건데, (지난해 정의당을 탈당한 초대 정의당 대표) 천호선 사회민주당 사무총장과도 한 차례 통화했다. 선거연합과 관련해 12월까지는 일차적인 매듭을 지으려고 한다.
비대위원 구성이 당내 그룹 간 단순 배분이라, 위원장의 권한이 없을 거라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연합정당을 하겠다는 전국위 결정 사항 아래서 움직이니까, 이 부분에선 전권이 없다. 그런데 선거연합의 대상이 어디까지냐에 대해, 특히 진보당과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선택’을 두고 당내 이견이 크다. 일단 당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할 계획이다. 당원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비대위는 그 의견에 구속된다. 이건 어떤 의견 그룹에서도 내지 않은 단독 의견이다. 그래서 다들 나를 불안한 눈초리로 본다. 만약 당원 설문조사로 새로운선택이 채택된다면, 금태섭 전 의원이 정의당이 싫다고 해도 적극 만나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선택에 대해 당내 부정적 여론이 많다면, 선거연합정당이 “운동권의 자족적 연합”이라고 비판한 정치 그룹 ‘세 번째 권력’은 당원 의견에 승복할 수밖에 없다.
‘최대 연합’을 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있다.
스스로 돌파할 수 없다면 더 넓게 외연을 확장하고 연합 세력을 구축해 총선을 돌파해보자는 문제의식인 것 같다. 일리 있는 지적인데, 일리만 있어서 문제다(웃음). 각 정당의 강령과 규약, 정책을 기준으로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교집합이 없어 보인다. 양향자 의원의 ‘한국의희망’을 예로 들면 강령에 노동 얘기가 아예 없다. 국가 목표를 ‘세계 1위’라고 제시한다. 우리는 노동에 가치를 두고, 경쟁에 질식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회연대의 원리로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정당이다. 세계 1위에 천착하는 정당과 같이 갈 근거가 없다.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예컨대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면 가치 연합을 할 수 없다. 반윤(윤석열) 아니면 반국민의힘·반민주당만으로는 같이 갈 수 없다.
선거연합정당은 누구의 정당인가?
체제 내에서 배제된 을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정당이다.
젠더 정책은 언급하지 않는데, 이유가 있나?
젠더 이슈를 무시하거나 경시하겠다는 게 아니다. 정의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당의 젠더 정책이 더 정교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정의당이 페미니즘을 제대로 해서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진보정당은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더 이상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새롭지 않다. 민주당도 차별금지법, 평등법을 발의한다. 예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니까 모든 영역에서 이노베이션(혁신)이 필요하다. 총선 공약에서 보여줘야 한다.
‘이준석 신당’에 대해서는?
거기는 보수고 우리는 진보다. 이보다 큰 차이가 있나? 이준석 전 대표가 보수 신당을 만들어서 끝까지 완주하길 바란다. 당이 늘어날수록 당장은 정의당에 불리할 수 있다. 그래도 정치 생태계에 더 다양한 당이 출현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주하길 바란다. 그런데 2020년 이 전 대표가 ‘새로운보수당’을 만들고 한 달 만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과 합당했던 기억 때문에 완주할까에 대한 의구심은 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나?
2주 전까지만 해도 비대위원장이 될 줄 몰랐다. 내년 4월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진보정당에서 비대위원장이 비례 상위 순번에 전략 공천되는 ‘김종인식 정치’는 용납되지 않는다(2016년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배정해 ‘셀프 공천’ 논란을 겪었다).
‘함께’ 정의당의 위기를 돌파하자고 했다.
정의당을 지지하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랑하는, 유일하지는 않지만 유효한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 사회에 진보정당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그런 면에서 나도 답을 온전하게 갖고 있지는 않지만, 별점을 매기는 차가운 소비자가 되기보다 위기의 당을 우리 공동체가 같이 살려보자는 마음에서 비대위원장직을 맡았다. 정의당의 변화는 비대위, 당직자, 현역 의원들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정의당이 아주 부족했지만, 응원석에만 있던 ‘우리’도 같이 정의당의 미래를 책임졌으면 좋겠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