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업계 고사시키는 윤 정부…“태양광 ‘태’ 자도 꺼내지 말라”
[윤석열 정부][cop28]
“올봄 주거래은행 지점장으로부터 ‘태양광의 태 자도 꺼내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요.”
서울 가산동에 자리잡은 태양광 시공업체 ‘에스디’는 2016년 20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유망 업체로 주목받았다. 김진규(49) 대표가 자본금 5억원으로 창업한 지 2년 만이었다. 고효율 피뢰침 제조를 시작으로 태양광 발전 시공,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업역을 넓힌 결과였다. 2017년 한국전력으로부터 ‘에너지 스타트업’에 선정됐고, 2018년엔 국무총리 표창(전기문화대상)도 받았다. 하지만 에스디의 올해 매출은 15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예전엔 공장이나 개활지에 500㎾ 5억~6억짜리 태양광 설비를 만들겠다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아예 없어졌어요.” 김 대표는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 사업 부실 실태를 들여다보겠다고 선언한 직후 “정확히 그 시기부터” 나타난 변화였다.
지난해 9월, 금융감독원이 태양광 부실 대출을 들여다보겠다고 발표한 뒤에는 아예 1금융권 대출이 불가능해졌다. 고육책으로 올해 초부턴 일감이 준 태양광 시공 일을 접고 설계만 하기로 했다. 시공 분야 일감이 줄어 과열경쟁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른 태양광 업체 대표들 중엔) 도산해서 다른 일 하는 분도 있고,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도 2명이나 돼요. 갑자기 일이 줄면서 대응이 늦었던 것 같아요. 5~6년 잘 하셨던 분들인데, 직원들 그대로 데리고 어떻게든 살려보려다…”
2만개 시공사가 3천~4천개로… “버틸 수가 없다”
정부가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결의안’에 동참하기로 했지만, 정작 국내에선 태양광 지원 제도를 축소하고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태양광 산업 생태계 자체가 고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22일,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 한화큐셀이 1800여명의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버티던 둑이 무너진다’는 신호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한화큐셀 충북 음성·진천공장은 자동차로 치면 완성차 조립공장에 해당한다. 한화큐셀 같은 제조사가 태양광 모듈을 만들면 시공사는 이를 설치하는 일을 하는데, 연쇄적으로 일감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태양광 시공을 해온 홍유길(53) 풍산파워텍 대표도 “일감도 줄고 최근엔 이자까지 올라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재작년 100억원이 넘던 풍산파워텍의 매출은 지난해 30억원에서, 올해 12억원까지 추락했다. 10명이 넘던 직원도 “어쩔 수 없이” 일부 내보내야 했다. 그 역시 최근 1금융권이 아닌 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자를 7%나 요구하더라구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 일단 받아둘 수밖에 없었죠.” 홍 대표 기억으로만 한창때 2만개나 되던 태양광 시공업체는 최근 3천~4천개로 줄었다.
지원제도 없애고 예산 큰폭 삭감… 대출마저 줄어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한 전임 정부가 급속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면서 태양광 산업이 비리의 온상이 됐다고 보고 대대적 점검에 나섰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무조정실과 검찰, 감사원, 국세청, 금융감독원이 업계를 훑었다. 뒤이어 지원 제도를 손봤다. 지난 1월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30.2%에서 21.6%로 줄인 게 시작이었다.
지난 7월엔 소형 태양광 전기를 고정가격으로 사주는 제도(한국형 FIT)가 폐지됐고, 1㎿ 이하 소규모 태양광의 송전선로 무제한 접속제도는 폐지가 검토된다. 정부는 500㎿ 이상 대형 발전사업자가 생산 전력의 일정 비율(2023년 13%)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한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도(RPS)도 손본다는 계획이다.
예산 삭감 조처도 뒤따라왔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비용 절반을 지원하는데,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시공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마을 단위로 한다. 재생에너지 정부 지원 사업 중 가장 인기 있지만, 에너지공단 2023년 예산은 421억원 줄어든 1336억원으로 편성됐다. 2017년 이후 처음 액수가 줄었다. 사전 수요조사에서 151개 컨소시엄이 지원해 2870억원이 필요했지만, 절반에도 모자랐다. 에너지공단은 그나마도 내년에 또 절반이 줄 것이라며 지난 8월 지자체들에 사업계획을 다시 제출하게 했다.
또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6054억원으로 올해보다 42.3% 줄었고, 한국형 에프아이티 관련 예산은 65%, 금융 지원 부문은 28%씩 감액됐다. 관련 대출도 쪼그라들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은행권 태양광 대출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신규 취급액은 모두 2877억원으로 지난해 9257억원에서 크게 줄었다. 대출 건수도 지난해 3249건의 3분의 1로 줄었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어느 업계나 부실·비리는 있을 수 있지만 이 정부 정책은 문제를 점검해 바로잡는 수준을 넘어서 역주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를 후퇴시키는 건 우리 뿐”이라며 “실제 현장에서 도산을 걱정하는 태양광 업체가 늘고 있다. 아니, 사실상 고사 중”이라고 강조했다.
떠밀린 ‘재생 3배 확대’ 결의… “생태계 회복 어려울지도”
실제로 정부가 태양광 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축소하면서, 2016년 처음 1GW를 넘어선 이래 2020년 4.6GW까지 올라갔던 국내 태양광 신규 보급 용량은 지난해 3.0GW로 줄었다. 올해는 2GW를 채우기도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태양광 신규 보급량이 줄어든 건 주요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전 세계 태양광 설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에만 135GW를, 미국은 30GW, 독일 10GW, 유럽 전체로는 60GW를 설치할 전망이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 340~360GW가 새로 설치되는데, 연초 예상치보다 20GW가 늘었다. 기후위기 대응뿐 아니라 날이갈수록 경제적으로도 태양광이 가장 싸고 빠르게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운동단체인 기후솔루션의 계산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의 경우 최초 계획부터 준공까지 걸리는 기간이 5년4개월(20㎿ 이상 대형)로 가장 짧았다. 풍력은 10~11년, 가스와 석탄은 9년4개월, 11년9개월씩 걸리고 원자력 발전은 가장 긴 17년4개월이 있어야 준공이 가능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해 발간한 연례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가 향후 5년간 전 세계 전력 확대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특히 태양광이 중심축이 될 것으로 봤다.
강정화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 태양광은 2018년을 기점으로 석탄발전보다 저렴해졌다. 온실가스 문제를 떠나서도 경제적으로 안 쓸 수 없는 에너지원이 됐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보조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결의에 동참하기로 했지만, 미국과 유럽연합 등 주요국 입김에 떠밀린 기색이 역력하다. 참여국 명단 공표 직전에야 결정한데다, 정부 명의 보도자료에서 “의장국이 주도한 자발적이고 비구속적인 계획”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한국태양에너지학회 회장인 임동건 한국교통대 교수(전자공학과)는 “정부 정책 영향으로 최근 국내 태양광 설치·시공업체들이 폐업을 하거나 다른 전기사업 분야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산업 생태계는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쉽지 않다. 향후 태양광 보급을 늘리고 싶어도 설치 인력이 모자라 발생하는 보급확대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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