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긴 호흡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곽태원 한국노동경제연구원장 입력 2023. 12.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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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원 한국노동경제연구원장

민주노총이 회계자료를 공시하기로 한 데 이어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복귀를 선언했다.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 물꼬를 트는 계기로 평가되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가능성(민주당도 동의), 노동단체 지원 폐지를 포함하는 고용노동부의 예산안 등 노정 관계가 경색될 여지는 곳곳에 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도 한 요인이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오래전 일이다. 그 출발은 노사정위원회 출범 직후인 1998년 2월에 체결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이다. 대법원 판례를 명문화한 정리해고 요건을 담은 협약사항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거부한 것이 발단이었다. 민주노총은 그해 12월 말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1999년 2월 대의원대회에서 탈퇴를 결의했다. 2기 노사정위원회에 잠깐 참가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일 뿐이었다.

사실 노사정위원회는 주 5일 근무를 비롯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의미 있는 여러 변화를 이룬 성과가 있다. 특히 민주노총이 조인을 거부한 1998년 2월의 사회협약에는 ‘교원노조 합법화’와 같은 노동계의 오랜 요구사항을 비롯해 ‘건강보험 통합’과 같은 사회 개혁적인 내용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명문화를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사회적 대화의 판을 깬 것이다. 이후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야합 수준으로 취급했다. 집행부의 성향에 따라 간헐적인 복귀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됐다. 특히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논의하는 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적으로 무산된 것은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총에서 사회적 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문재인정부 시절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원 포인트 참여’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민주노총 스스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 실례라 할 수 있다. 2020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해고 금지, 총고용 보장,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 사회 공공성 강화를 의제로 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긴 이름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민주노총은 마지막 순간에 발을 뺀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양대 노총과 노사정 대표가 만든 합의안에 민주노총이 서명을 거부하는 일이 재연된 것이다.

이런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민주노총의 참여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낮다. 오죽하면 한국노총조차 5개월간 불참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할 이유는 많다. 전 세계적인 이슈인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산업전환은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고용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주노총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할 자리를 정부에 요구할 처지에 있다. 그것이 비록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라도 말이다. 또 민주노총은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을 문제 삼지만,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상근 간부 중심의, 혹은 일부 파업 사업장 동원 중심의 보여주기 총파업으로, 허공 속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배달 노동, 플랫폼 노동을 지나 이제 인공지능이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될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게다가 현재 많은 사업장이 여기저기서 베껴 실시하고 있는 엉터리 직무급도 문제다. 오히려 민주노총으로서는 전국, 전산업을 망라하는 공정한 직무 평가를 통한 체계적 접근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접근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당면한 문제들은 대부분 사회적 단위에서의 담론 형성, 토론, 컨센서스를 필요로 한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정부와 일회성의 비공식적 접촉을 여러 차원에서 시도해 왔다. 과연 그럴 일일까? 노동계는 유럽을 모범으로 자주 언급하지만, 그러자면 ‘대화’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긴 호흡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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