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에 불만 있던 조형도 “군졸들 굶겨 죽인다” 모함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입력 2023. 12.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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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34> 을미년(1595년) 5월 16일~6월 9일

- 대접받지 못해 무고했을 가능성
- 충무공, 가마솥 만들어 소금 생산
- 곡물과 맞바꿔 군량 비축하기도

- “같은 항왜가 흉측한 짓을 한다”
- 투항 왜인이 일러 목 베라 시켜

충남 아산 현충사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전시된 조형물. 이 기념관은 전면 개편 공사로 지난 9월부터 2024년 2월까지 휴관한다. 내년 3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5월16일[6월23일]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탐후선이 들어와 어머니께서는 편안하시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비로소 조카 해 등이 잘 간 줄도 알았다. 그런데 아내가 불 난 뒤로 마음이 많이 상하여 기침과 가래가 더해졌다고 하니 이 또한 걱정이 된다. 활 20순을 쏘았는데, 동지 권준이 잘 맞추었다.

5월17일[6월24일] 맑음.

아침에 대청으로 나가 본영 각 배의 사부와 격군으로서 급료 받는 사람들을 점고했다. 늦게 활 20순을 쏘았는데, 박종남, 권준 두 조방장이 잘 맞추었다. 오늘 쇳물을 부어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만들었다.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주민들을 시켜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서 소금을 만들어 곡물과 교환해 많은 군량을 비축하였다.(행록)

5월18일[6월25일] 맑음.

새 충청수사(선거이)가 한산진에 도착했다. 그런데 결성현감, 보령현감, 서천만호만을 거느리고 왔다. 충청수사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세 조방장(권준 박종남 신호)과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거제현령이 보러 왔다가 그대로 하룻밤을 잤다.

※3월 17일 충청수사 이계정이 물에 빠져 죽은 뒤 오늘 선거이가 충청수사가 되어 부임해 온 것이다. 선거이는 이순신과 오랜 친구다.

5월19일[6월26일]

맑으나 동풍이 차게 불었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권, 박, 신 세 조방장과 사도, 방답 두 첨사와 함께 활 30순을 쏘았다. 수사 선거이도 와서 같이 참여했다. 저녁에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더 만들었다.

5월20일[6월27일]

비바람이 저녁 내내 또 밤새도록 멎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봤다. 수사 선거이, 조방장 권준과 같이 바둑을 두었다.

5월21일[6월28일] 흐림.

오늘은 꼭 본영에서 소식이 올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장 어머니 안부를 몰라 답답하다. 종 옥이, 무재를 본영으로 보내고, 전복과 밴댕이젓, 어란 등을 어머니께 보냈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보고 있는데, 투항해 온 왜인(항왜)들이 와서 고하기를, 같은 항왜 중에 산소(山素)란 놈이 흉칙한 짓거리를 많이 하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왜인을 시켜서 그놈의 목을 베게 했다. 활 20순을 쏘았다.

5월22일[6월29일]

맑고 화창하다. 동지 권준 등과 함께 활 20순을 쏘았다. 이수원이 상경할 일로 들어왔다. 그편에 비로소 어머니께서 지난번 불 난 이후에도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다행, 다행이다.

5월23일[6월30일] 맑음.

세 조방장과 함께 활 15순을 쏘았다.

5월24일[7월1일] 맑음.

아침에 이수원이 장계를 가지고 나갔다. 조방장 박종남과 충청수사 선거이를 시켜 활을 쏘게 했다. 쇳물을 부어 소금 굽는 가마솥을 또 만들었다.

5월25일[7월2일]

맑다가 저녁나절에 비가 왔다. 경상수사(배설), 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선거이)가 모여서 같이 활 9순을 쏘았다. 충청수사가 술을 내었고 모두가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경상수사 배설에게서 “김응서가 거듭해서 대간들의 탄핵을 받고 있고, 원수(권율)도 거기에 끼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김응서가 화의한답시고 맘대로 적장(소서행장)을 만나고 왕래했는데도 그 상사인 권율이 죄를 청하지 않았다. 승정원이 이를 이유로 김응서와 권율을 잡아 신문해야 한다고 청하자 선조가 이를 수락했다.(1594.4.5 선조실록)

5월26일[7월3일]

저녁나절에 개었다. 홀로 대청에 앉아 있었는데 충청수사와 세 조방장이 들어와 함께 종일 이야기했다. 저녁에 현덕린이 들어왔다.

5월27일[7월4일] 맑음.

활 10순을 쏘았다. 수사 선거이와 두 조방장이 취하여 돌아갔다. 정철(그의 종질인 정대수가 이순신 어머니가 사는 고음내의 집을 내어준 사람임)이 서울에서 진에 왔다. 장계회답 내용에는 김응서가 함부로 강화에 대하여 한 말들이 죄가 되었다는 말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영의정(류성룡), 좌의정(김응남)의 편지가 왔다.

※김응남은 윤두수와 함께 원균을 옹호하고 이순신을 경계한 인물이다. 이순신도 훗날 일기(정유년 9월8일)에서 김응남의 잘못된 인사를 비판하고 있다.

5월28일[7월5일]

줄곧 흐리다가 저녁에는 비가 많이 오고 밤새 바람이 크게 불어, 배들을 안정시키기 어려웠는데 간신히 구호했다. 식후에 수사 선거이 및 세 조방장과 함께 이야기했다.

5월29일[7월6일]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종일 퍼부었다. 사직의 위엄과 조상님들 음덕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을 뿐인데, 임금의 총애로 분수에 넘치는 벼슬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하였고, 몸은 장수의 직책을 지녔건만 세운 공은 티끌만큼도 보답이 되지 못했다. 입으로는 교서를 외우지만 얼굴은 부하들을 대하기가 부끄러울 뿐이다.

▶을미년(1595년) 6월

한산바다에서의 진중생활은 항상 긴장 속에 있으므로 편한 날이 없지만 특히 바닷바람과 습기는 그의 건강에 위협을 준다. 충청수사(선거이)는 부임하자마자 병에 걸리고 평산포만호 김축도 김대복도 병이 중해진다. 그도 수시로 앓지만 그런 중에도 나라 걱정, 어머니 걱정은 한시도 그를 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특히 이달에는 “이순신이 군졸들을 굶겨 죽이고 있다”는 조형도의 무고를 전해 듣고는 할 말을 잊고 만다.

6월1일[7월7일]

늦게 개었다. 권, 박, 신 세 조방장과 웅천현감, 거제현령과 함께 활 15순을 쏘았다. 선거이 수사는 이질에 걸려 쏘지 않았다. 새로 번(당직)서는 영리가 들어왔다.

6월2일[7월8일]

종일 가랑비가 내렸다. 식후에 대청에 나가 공무를 봤다. 한비가 돌아가는 편에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영리 강기경 조춘종 김경희 신홍언이 모두 당직을 마쳤다. 오후에 가덕진첨사, 천성보만호, 평산포만호, 적량첨사 등이 와서 봤다. 천성보만호 윤홍년이 와서 청주 사는 이계(李繼)의 편지와 서숙부(庶叔父)의 편지를 전하며, 김개(金介)가 지난 3월에 죽었다고 했다. 비통함을 이길 길이 없다. 저물 무렵에 권언경 영공(권준)이 와서 이야기했다.

6월3일[7월9일]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식후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각 처에 공문을 처결해 보냈다. 느지막에 가리포첨사, 남도포만호가 왔다. 권, 신 두 조방장과 방답첨사, 사도첨사, 여도만호, 녹도만호가 와서 활 15순을 쏘았다. 아침에 남해현령이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해평군 윤근수가 남해에서 본영(여수)으로 건너온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로 배를 정비하고 현덕린을 본영으로 보냈다. 사량만호가 와서 양식이 떨어졌다고 보고하고선 곧 돌아갔다.

6월4일[7월10일] 맑음.

진주의 서생 김선명이라는 자가 계원유사(繼援有司:군량을 지원하는 유사)가 되고 싶어한다고 하여, 보인(保人) 안득이라는 자가 데리고 왔다. 그자의 말을 듣고 행동을 살펴보니, 그럴만한 위인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직 좀 더 두고 보려고 공문을 만들어 주었다. 세 조방장과 사도첨사, 방답첨사, 여도만호, 녹도만호가 와서 활 15순을 쏘았다. 탐후선이 오지 않아 어머니의 안부를 들을 수 없으니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난다.

6월5일[7월11일] 맑음.

두 조방장 등과 같이 아침식사를 했는데, 자윤 박종남(조방장)은 병으로 오지 못했다. 늦게 우수사, 웅천현감, 거제현령이 와서 함께 종일 이야기했다. 정오 때부터 비가 내려서 활을 쏘지 못했다. 나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 저녁식사도 하지 않았고, 종일 고통스러웠다. 종 경(京)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한다. 매우 다행이다.

6월6일[7월12일]

종일 비가 왔다. 몸이 몹시 불편했다. 송희립이 들어왔다. 그편에 도양장의 농사 형편을 들으니, 흥양현감이 무척 애를 썼기에 추수가 잘될 것이라 했다. 계원유사 임영도 원호 사업에 힘을 많이 쓴다고 했다. 정항(진해현감)이 이곳에 왔다. 나는 몸이 불편하여 종일 앓았다.

6월7일[7월13일]

비가 종일 계속해 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앉았다 누웠다 하며 신음했다.

6월8일[7월14일]

비가 내렸다. 몸이 좀 나은 것 같다. 저녁나절에 세 조방장이 와서 봤다. 곤양군수는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분상(奔喪)하러 급히 집으로 돌아간다고 전했다. 조의를 표했다.

6월9일[7월15일] 맑음.

몸이 아직도 쾌하지 않아 답답하고 걱정이 된다. 조방장 신호, 사도첨사, 방답첨사가 편을 갈라서 활쏘기를 했는데, 신호 편이 이겼다. 저녁에 원수의 군관 이희삼이 임금의 분부가 든 서류를 가지고 왔는데, 조형도가 이순신을 무고하여 장계하되, “수군 한 사람에 날마다 쌀은 5홉씩, 물은 7홉씩만 준다”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한다. 이 말은 군사들을 모두 굶겨 죽이고 있다는 말인데 천지에 어찌 이처럼 속이는 일이 있단 말인가. 인간사가 참으로 놀랍다. 저물녘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이질에 걸리셨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난다.

※조형도는 3월11일 한산진에 왔다가 2박3일 머물렀는데 아마도 이순신의 대접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그가 영남지방을 다녀와 보고하기를 “한산도의 수군은 격군 1명에게 하루 쌀 5홉, 물 7홉만 먹여 병들면 물속에 밀어 넣고 굶주리면 산골짝에서 죽게 해 마치 한산도가 귀신의 나라와 같으며 … 세수와 빨래도 못해 역질이 생겨 죽게 만드니… 이는 모두 주장(이순신)이 병졸을 걱정하지 않아 생긴 것입니다”(선조실록 1595년 5월 19일)라고 이순신을 무고했다.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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