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슬로바키아 여행 ②반스카 슈티아브니차

입력 2023. 12. 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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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낯익은 일상을
슬로바키아 언덕마을로 떠난 뜻밖의 여행

포털에서 슬로바키아 여행을 검색하면 수도 브라티슬라바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도시가 바로 ‘반스카 슈티아브니차(BanskáŠtiavnica)’다. 18세기 헝가리 왕국의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약 490톤에 달하는 은광석이 채굴됐던 광산마을,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언덕마을이라고도 불리었던 곳.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반스카 슈티아브니차에서 뜻밖의 여행을 맞이했다.
슬로바키아 반스카 슈티아브니차 거리 풍경
어차피 기차는 잘못이 없다
개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 고요한 반스카 비스트리차(Banská Bystrica) 기차역에 드디어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시보다 8분 지각이다.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기차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불안했지만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역인 즈볼렌(Zvolen)역에서의 기차 환승 시간은 9분. 다시 말해 즈볼렌역에 도착한 뒤 1분 안에 목적지인 반스카 슈티아브니차(Banská Štiavnica)행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혼란스런 마음을 달래려 일단 주변으로 눈을 돌린다. 온통 현지인들뿐이다. 차창 밖으로 스며들어온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만큼 이들의 표정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목적지를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10여 분을 훌쩍 넘기며 꿈쩍도 하지 않는 기차, 안내방송도 없지만 승객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 상황. 답을 찾아야 하지만 그동안 환승 시간 1분마저 사라져버렸다.
슬로바키아 기차 칸 내부 모습
마음은 급한데 마주앉은 현지인 남성은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즈볼렌역에서의 환승 기차와 시간, 최종 목적지 등의 상황 설명을 한 뒤 남성으로부터 전달받은 번역기에 적힌 답은 “You can take a train(당신은 기차를 탈 수 있습니다)”이었다.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론 안심할 수 없었기에 다시금 번역기에 대고 보충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때 뒷좌석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보충설명은 ‘에릭(Erik)’이라는 뒷좌석 남성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차표에 적힌 시간은 숫자에 불과할 뿐, 이 기차가 즈볼렌역에 도착하면 반스카 슈티아브니차행 기차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슬로바키아에서 처음 기차를 탄 건가요?” “아니요. 두 번째예요. 지난번 기차를 탔을 때는 정시 운행을 했거든요.” “운이 좋았나 보네요. 그런 일은 정말 드물어요. 그렇다고 오늘처럼 이 정도로 길게 지연이 되는 일도 흔하진 않죠. 이번에 슬로바키아 기차를 제대로 경험했다고 생각하세요.”
반스카 슈티아브니차행 기차
어떠한 상황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태평스러웠던 현지인들의 면면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그의 말대로 즈볼렌역에서 반스카 슈티아브니차행 기차는 두 팔 벌려 승객을 맞이했고, 기차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 조바심 내거나 서두르는 이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은의 도시는 영원하다
슬로바키아 중부 슈티아브니차 언덕 중앙에 위치한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다. 반스카 비스트리차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닌 광산마을로 유명한 이 곳은 1238년 헝가리 왕국 최초의 왕실 도시로 지위를 얻으며 ‘왕실 광산도시’로 군림했다. 18세기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는 귀금속 채굴이 활발히 이뤄지며 유럽 일대에서 규모가 가장 큰 귀금속 광산 중심지로 각광받았다. 특히 은광석 발견이 도시의 입지를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고, 그에 따른 번영은 산업 환경과 도시 환경 구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은광석 채굴이 한창이던 1790년부터 1863년까지 70여년간 이 땅에서 생산된 은의 양은 약 490톤에 달했다. 오늘날 반스카 슈티아브니차가 ‘은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다.
현재 남아 있는 18세기 광산마을의 흔적
1735년 헝가리 왕국 최초의 광산학교가 이 도시에 설립되었으며, 이후 1763년 고등 광산학교로, 1770년 정규대학으로 승격되어 광산아카데미로 발전해나갔다.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는 현재까지 유럽 최초의 광산학교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술학교가 있는 곳으로 남아 있다. 이후 18세기말 헝가리 왕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영역을 넓혔던 반스카 슈티아브니차의 영광은 그러나 19세기말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은광석 고갈이 도시의 몰락을 가져온 배경이었다. 그렇게 도시 발전은 정체됐다. 20세기 들어 이 도시에 번영을 가져다 준 주요 광산이 하나둘 문을 닫고, 2001년 마지막 광산마저 폐쇄되면서 화려했던 ‘은의 도시’는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슬로바키아 중부 슈티아브니차 언덕 중앙에 위치한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로 반스카 비스트리차(Banská Bystrica)와 함께 오랜 역사의 광산마을로 유명하다. 은광석 채굴이 한창이던 1790~1863년까지 70여 년간 이 땅에서 생산된 은의 양은 약 490톤에 달했다. 오늘날 반스카 슈티아브니차가 ‘은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다.”
도심과 공휴일, 뜻밖의 첫인상
오후 1시 간이역 주변 카페 테라스에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텅 빈 대합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바람소리를 가른다. 오후 1시 간이역 카페 테라스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의 손과 테이블에 그 수만큼의 맥주잔이 함께한다. 모닝 커피 대신 모닝 맥주로 하루를 시작하는 슬로바키아에서 보편적인 음주 시간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중 언제라도 맥주를 마시기에 좋은 시간만 있을 뿐이다.
소도시를 여행할 때 좋은 점 중 하나는 기차역과 도심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 반스카 슈티아브니차역에서 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1~2km 정도 걸으면 도심과 만난다. 간이역을 벗어나 도심으로 가는 동안 행인 한 명 보지 못했다. 발코니에서 빨래를 널거나 화분을 정리하거나 담배를 피거나 하는 몇 사람을 본 게 전부다. 지나치는 마트도 문을 닫았고, 식당과 카페도 마찬가지다.
법정공휴일 문이 닫힌 상점과 카페
간이역 카페가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게 오히려 의아하게 느껴졌는데, 도심에 들어서고 보니 문을 연 식당과 카페가 하나둘 나타나긴 했다. 한데 대다수의 식당에는 오늘의 변경된 영업시간을 알리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상황상 일찍 장사를 접는 모양새 같아 보였다. 그 배경을 알아보니 이날은 슬로바키아의 법정공휴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일곱 가지 슬픔의 성모 축일(Day of Our Lady of the Seven Sorrows)’이었다.
일찍 영업을 마친 식당들 사이로 일몰과 함께 도시의 기능은 멈춰 버렸다. 그것이 성모마리아의 고통을 나누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 때문인지, 이 나라에선 자영업자들 사이 ‘공휴일이 곧 대목’이란 틀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밤새 꺼지지 않는 공휴일의 화려한 밤 풍경이 그리운 건 왜일까?
광장부터 화재까지, 도시의 역사를 살피다
16세기에 형성된 성삼위일체 광장
도심의 메인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약 500m 지난 지점부터 야트막한 오르막이 나타나는데 다시 500m가량 숨이 찰 듯 오른 뒤 가파른 언덕을 넘고 나면 ‘성삼위일체 광장(Holy Trinity Square)’이 등장한다. 16세기에 형성된 광장, 그곳에 세워진 동상은 18세기 전염병 퇴치를 기념하는 의미로 건설됐다. 광부와 시민들을 전염병으로부터 구해낸 6명의 성인이 6개의 동상으로 서 있다.
광장 서쪽에 위치한 옛 성(Old Castle)은 역사적 가치는 물론 주변 전망을 즐기기 좋은 장소. 성을 구성하는 벽은 역사적으로 도시의 문으로 통했다. 13세기 교회로 쓰였던 공간은 16세기 투르크족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요새로 변모했고, 18세기 광산마을을 알리는 전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던 옛 성은 이후 고딕과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1777년 재건축을 한 이후로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도시의 문으로 통했던 옛 성벽(좌), 세계 유일의 사랑은행(우). 슬로바키아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사연을 담고 있다.
광장 언덕 아래에 세계 유일의 ‘사랑은행(Love Bank)’이 있다. 슬로바키아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이 은행에 보관되어 있는데, 원작과 다른 점은 실화라는 것. 가난한 가정 출신인 시인 안드레이 슬라드코비치(Andrej Sládkovič, 1820~1872)는 부유한 가문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리나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지만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짝사랑에 그치고 만다. 1844년 어느 날 마리나가 부유층 자제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안드레이. 그는 마리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시로 표현하고자 결심한다. 시의 제목은 그녀의 이름을 딴 ‘마리나’.
광장 주변 1500년에 세워진 성 캐서린 교회
안드레이는 1년에 걸쳐 2,900절의 시를 완성했다. 이것이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긴 ‘사랑의 시’다. 17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깨지지 않은 기록이며, 2017년 세계 기록 아카데미(World Record Academy)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았다. 마리나 가문이 거주했던 건물은 사랑은행으로 탈바꿈했고, 이들 가문이 사용했던 금고 안에는 ‘사랑의 시’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끝내 이뤄지지 못한 짝사랑의 아픔과 슬픔, 새드엔딩의 장소였던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각자의 해피엔딩을 꿈꾼다.
옛 성에서 바라다 본 도심 풍경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밀집된 이곳, 안타깝게도 현재 사랑은행은 굳게 닫혀 있다. 2023년 3월18일 이후 반스카 슈티아브니차를 언급할 때 이곳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사고를 빼놓을 수 없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던 토요일 아침,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사랑은행을 포함한 광장 일대 여러 곳의 역사적 건물과 주택이 불에 탔다.
강한 바람과 언덕이 많은 지형, 좁은 거리, 오래되고 낡은 집이 서로 붙어 있는 탓에 불은 지붕을 따라 여러 구조물로 삽시간에 번졌고 당시 이곳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화재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인근 도시와 마을에서 온 소방관과 군인, 자원봉사자 등은 수백 명에 달했다. 이제 까만 그을음에 뒤덮인 텅 빈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건물 앞에는 화재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글귀가 전시돼 있다. 이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들. 화재는 도시의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화재로 타버린 건물과 화재 당시의 사진들
신성한 산, ‘갈보리’에 오르다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인 ‘갈보리(Calvary)’가 반스카 슈티아브니차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처형된 이스라엘 예루살렘 갈보리(골고다) 언덕에서 이름을 딴 갈보리는 ‘신성한 산’이라 일컬어지며 언덕의 경사면에 지어진 기독교 성지이자 순례자의 길을 의미한다. 반스카 슈티아브니차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거리, 오르막을 따라 계속해서 오르다 보면 어렵지 않게 샤펜버그(Scharfenberg) 언덕에 위치한 칼바리아(Kalvária)에 닿는다.
신성한 산으로 가는 순례의 길
1744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751년에 완공된 이 갈보리는 당시 슬로바키아 이전 헝가리 왕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유럽 전체에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바로크 양식의 그림 장식이 있는 3개의 교회와 22개의 예배당 및 성모 마리아 동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정죄를 나타내는 총 17개의 스테이션은 순례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길에 각각 배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위로부터)칼바리아 하부 교회 전경, 주일예배가 열리는 하부 교회 내부 모습,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상부 교회로 올라가는 길
17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2세기 동안 이곳 갈보리 언덕에는 풍요로운 영적인 번영과 영광이 자리했다. 1951년부터 갈보리는 성지순례장소로서 점차 그 의미와 목적을 잃어갔으나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이곳이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슬로바키아의 여러 종교단체와 활동가들이 갈보리 복원에 앞다퉈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광범위하고 완전한 이곳의 재건축 계획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
칼바리아를 찾은 날은 때마침 주일예배가 열리는 일요일. 가파른 순례자의 길을 따라 올라간 하(下)부교회 예배당 내부에는 예배에 참여하거나 혹은 예배를 구경하려는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모습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한 교회 내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이내 평화가 찾아왔다. 천장과 벽을 감싼 예술적인 프레스코화가 갈보리의 신성함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 슬로바키아어로 진행된 예배는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나 몸과 마음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소통이 더 중요했다.
갈보리 정상에서 바라다본 풍경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마주한 일상
기차 안에서 만났던 에릭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주말 하이킹 계획을 이야기하며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가 첨부한 하이킹 장소의 위치는 슈티아브니차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시트노(Sitno).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포추바들리안 호수(Počúvadlianske jazero)에서부터 시작되는 하이킹 코스다. 현지인들의 인기 주말 여행 코스라는데 그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에릭을 다시 만났다. 그의 사촌누나 니콜(Nicole)과 함께.
호수에서 해발 1,009m에 위치한 시트노 정상까지는 약 2.5km, 한 시간가량 소요된다. 나무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산을 오른다. 역사적으로 시트노 전망대는 유럽 하이킹의 요람으로 간주돼 왔다. 이곳의 고도와 위치가 훌륭한 전망을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이킹의 시작점인 포추바들리안 호수
게다가 1860년 유럽 최초의 하이킹 클럽인 ‘시트니안(Sitnian)’ 설립의 배경장소인 데다, 1864년 유럽 최초의 하이킹 코스가 조성된 곳이다. 그 당시 사회 최고 계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하이킹과 하이킹 클럽은 유럽 내에서 권위 있는 사회활동으로 조직되고 인식되었다.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 꼭대기 전망대는 듣던 대로 장관을 이룬다.
정상에 자리한 성과 교회를 둘러본 뒤 날이 저물기 전 호수 주변을 구경하기 위해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간 길 그대로 다시 걸으며 발자국의 방향을 반대로 찍는다. 호수에 닿고 보니 일요일 오후 풍경이 제대로다. 가을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호수에 몸을 담그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호수 주변 카페 테라스는 모두 만석.
나무 숲이 우거진 시트노 하이킹 코스와 해발 1,009미터 시트노 전망대(가장 우측)
테이블마다 맥주잔이 넘쳐난다. 우리 세 사람도 인파들 사이에 껴서 ‘짠’을 외쳤다. 찬바람에도 잔에 담긴 차디찬 맥주가 목구멍으로 삽시간에 흘러 들었다. 한 잔, 두 잔으로도 부족한 시간. 니콜은 맥주 값이 너무 올랐다며 인상을 찌푸리기를 여러 번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상을 활짝 펴게 하는 건 오직 맥주뿐이다. 물가는 올랐지만 맥주는 포기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인해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슬로바키아의 경제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일년 사이 2~3배 이상 오른 밥상물가는 에릭과 니콜의 일상에 최대 이슈이자 고민거리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일상을 마주하는 일은 그것만으로 삶에 커다란 위로가 된다.”
하이킹을 함께한 니콜(Nicole)(좌)과 에릭(Erik)(우)
일 년 사이 2~3배 이상 오른 밥상물가는 에릭과 니콜의 일상에 최대 이슈이자 고민거리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일상을 마주하는 일은 그것만으로 삶에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것이 계속해서 낯선 나라, 낯선 도시를 찾아 떠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날이 저문 것도 모른 채 맥주와 물가는 우리의 테이블을 오르내렸고, 낯선 일상에서 낯익은 일상을 만난 행운은 반스카 슈티아브니차 여행의 커다란 이유로 남았다.
챗GPT로 요약한 슬로바키아 여행② 반스카 슈티아브니차 여행기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 90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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