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헛소리다, 미스터리 추리 영화 ‘비밀’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8번째 레터는 13일 개봉하는 미스터리 추리 영화 ‘비밀’입니다. 여러분, 힘들 때 이 문장 많이 떠올리시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 This shall pass. 그런데 정말 그렇게 다 지나가질까요. 영화 ‘비밀’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늘 영화 소개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어요. 아래에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영화 어때’ 첫 레터였던가 제가 말씀드렸죠. 대부분 영화는 개봉 2주 전쯤 시사회 한다고요. 신청은 3주 전쯤부터 받고요. 전 무조건 신청은 하는데 가끔 기사 마감과 겹치거나 다른 취재 일정이 생기면 못 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번 영화 ‘비밀’도 그런 경우였어요. 게다가 저 제목. 하고 많은 명사 중에서도 흔하디 흔한 ‘비밀’이라. ‘제목 달기 귀찮았나? 달다가 포기했나? 비밀 영화는 수천편 될 거 같은데. 제작진이 애정이 없나?’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장르가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라 가능한한 보려 했는데 당일 일정이 안 맞아 못 갔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메일함을 열어보니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의 메일이 날아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비밀>의 소준범 감독의 아내입니다.’
보는 순간 뜨끔. ‘아, 시사회 신청 해놓고 안 간 게으른 기자를 꾸짖는 메일인가.’
찔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메일에는 영화 하는 남편을 둔 워킹맘 아내의 곡진한 목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저도 영화를 잘 모르고, 기대도 크지 않았는데 막상 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마주하니 꽤나 재밌고 남편에게 좀 더 잘해줄 걸하는 후회가 밀려와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구구절절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 감독 참 행복하겠구나.’ 즉시 답장을 썼습니다. ‘시사회 못 가서 죄송하다, 가능한 한 빨리 보고 기사가 가능할지 알아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곧바로 배급사에 부탁해 스크리너(온라인 시사를 위한 영상 링크)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상.
영화는 한 살인으로 시작합니다. 공중화장실에서 남성 변사체가 발견됩니다. 누군가 도끼로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입에선 쪽지가 하나 발견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문구와 함께 적힌 날짜는 10년 전입니다. 이 문구, 이 날짜는 과연 무슨 뜻인가. 주인공인 강력반 형사가 추적에 나섭니다. 죽은 사람은 알고보니 군대에서 후임병을 악질적으로 괴롭힌 전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군대 폭력의 피해자가 범인인가. 아니요, 그 피해자는 이미 자살했습니다. 입에서 발견된 쪽지는 피해자의 일기 중 일부였고요. 수사가 벽에 막히려는 찰나, 또 하나의 살인이 드러납니다.
관객은 연쇄살인범이 누군지를 주인공 형사와 함께 추적하게 됩니다. 연출은 소준범 감독과 임경호 감독이 공동으로 맡았습니다. 두 분이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라고 합니다. (소 감독 아내분이 메일로 알려주셨어요.) 주인공 형사로 배우 김정현씨가 나오는데, 전에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논란이 있었나봅니다. 본인이 이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복귀작으로 선택했다고 하네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좋았다고 합니다. 예전 논란을 겪으며 스스로 마음에 새긴 말이었을까요.
그래서 어땠냐고요? 스릴러, 미스터리, 추리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보실 만할 거에요. 제가 범인을 맞혔냐고요? 당근이죠. 핫핫핫.(아, 왜 우리 레터에는 이모티콘이 제공되지 않는가) 한 가지 말씀드릴 거. 제가 스릴러, 미스터리, 추리물은 다른 장르보다 좀 아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거든요. 국민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초등학교 아니고 국민학교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얼룩무늬 끈의 비밀’이 시작이었습니다. 흠흠. ‘얼룩무늬 끈의 비밀’은 삽화까지 기억나네요. (아, 그때의 총기는 모두 어디로) 제가 얼마 전에 일본드라마 베끼고 본인들이 창작한 것처럼 얘기하던 영화 ‘뉴 노멀’ 알아본 거 기억하시죠. 그 영화도 넓은 범주에서 미스터리 추리 계열이라 제 레이더에 걸린 것이고요.
미스터리 추리 쪽은 그야말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어요. 쓰던 초식이 반복 변주되기 때문에 박수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지간하면 기본 설계도만 봐도 맞출 수 있으니까요. 새 작품 나올 때마다 감독과 두뇌 싸움 하듯 범인 맞히기 퍼즐에 도전하는데 맞히면 맞히는 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재밌습니다. 감독이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함정을 파놓으면 더 좋죠. 기꺼이 함정에 빠지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런 게 이 장르만의 재미니까요.
이 영화 ‘비밀’도 저같이 익숙한 장르팬한테는 초반 설계 직후에 ‘응응응이 범인이겠군’이라고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편하게 영화 보시는 분이라면 범인 맞히는 재미 외에도 그 범인이 왜 그랬냐를 두고 던지는 감독의 메시지가 있어서 단순한 퍼즐 맞히기를 넘어선 재미를 찾으실 수 있을 거에요. 영화 초반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나오고, 후반부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냥 지나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장르 특성상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참겠습니다. 이런 장르는 누가 연기 잘했다는 것도 범인 맞히는 재미에 방해가 되는 정보(난도가 확 낮아지죠)라서 그런 얘기도 못하겠네요. 그저 한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응원을 받는 억세게 행복한 어느 감독이 만든 볼만한 미스터리 추리 영화라고 기억해주시고, 이런 장르 영화가 보고 싶으시다면 극장에서 선택해주세요.
우리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주문 외듯 스스로를 다독일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래봤고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물론 지나는 가죠. 때론 상처가 남고요.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그냥 지나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길게 울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일기장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적히고 있는 게 아닐지.
이 영화에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shall pass)’만큼이나 자주 인용되는 니체의 말로 이번 레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정말 그렇더라고요. (저는 그랬어요. ^^) 오늘은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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