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치명적 약점을 공략하라[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그뿐만 아니다.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한 김정은은 전방에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사단 하나만 재배치해도 병영과 진지, 신형 장비를 숨길 갱도를 수없이 지어야 한다. 백성들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겨우 1년에 1만 가구 아파트를 짓는 북한에는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도 뒷짐만 지고 있진 않는다. 내년 국방예산은 59조5885억 원으로 4.5% 증가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2.2%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한국형 3축 체계’ 강화에만 7조1565억 원을 투입하며 그 외 각종 무기 도입과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구축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스텔스 전투기 F-35A 20대 추가 도입에도 3조3010억 원을 쓰는데, 단순 계산으로 1대에 1650억 원씩 주고 사오는 셈이다.
강력한 국방력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국방 예산을 보면 한 가지 크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죽이고 부수는 것에만 골몰하다 보니 신형 무기를 사 오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북한군의 치명적인 약점을 공략하는 데는 소홀하다.
북한군은 그들의 고물 장비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 두 가지를 갖고 있다. 우선 지휘 체계이다. 모든 부대에 부대장과 그 부대장에 대한 해임 권한을 가진 정치위원이 각각 있다. 그리고 이 둘을 다 자를 수 있는 보위부장도 있다. 이렇게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한군은 쿠데타를 막는 데는 최적이지만 전쟁을 치르기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비유하면 사장 3명을 둔 회사가 위기 상황에서 절대 잘 굴러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 치명적인 약점은 따로 있다. 바로 군인들의 심리이다. 북한군은 수령을 위해 죽는 게 구호인 김정은의 가병 집단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전쟁에서 패배하면 잃을 게 많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은과 측근 몇 명만 잃을 게 많다.
북한군은 장마당 세대가 주축이다. 키가 142㎝만 넘어도 8년 이상 군에 끌려가야 하는 북한 청년들은 통일되면 자신들이 배불리 먹고살 수 있으며, 해외여행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항복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행복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세대다. 그들은 겉으론 충성하는 듯 보여도, 실제론 김정은을 위해 죽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건 탈북해 온 사람들만 인터뷰해도 알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북한군을 죽이는 데 집중하기보단 이들을 투항하게 만드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저항하면 죽음뿐이지만, 항복하면 당 간부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유사시 “투항하면 중대장 30만 달러, 소대장 10만 달러, 병사 5만 달러씩 포상금을 준다”는 전단을 수없이 뿌린다면, 수십만 달러짜리 미사일로 진지를 부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밤에 경계진지에서 흰 발싸개(북한군 양말)만 흔들어도 당신들 진지를 내려다보던 무인기가 즉각 안전한 귀순 루트로 안내할 것이다”라는 식의 구체적인 안전보장책도 세워야 한다.
북한과의 전쟁에선 동족 청년들의 시신이 널려 있는 참호를 점령하기보단 ‘사면초가’를 불러주어 손을 들고 투항하는 병사들을 맞는 게 최선이다. 국군의 피도 훨씬 적게 흘리고, 통일 이후의 적개심도 최소화해 진정한 마음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북한군의 심리를 정밀 연구해 가장 효과적으로 마음을 움직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 탈북민이 3만5000명이나 와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국방예산에서 심리전 예산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텔스 전투기 하나를 사오는 돈만 심리전에 쓸 수는 없을까. 전쟁은 무기로만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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