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이주노동자 존재 선언
고용허가제, 사용자에게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용자의 ‘고용’을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다. 2003년 8월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그 다음해인 2004년부터 시행되어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고용허가제 도입 전 외국인 노동자는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1994년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는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를 개발도상국에서 우리나라에 일을 배우러 온 ‘연수생’으로 부르며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 달 평균 276시간, 하루 종일 일을 시키면서 월급 대신 ‘연수비’, ‘훈련수당’이란 이름으로 월 30만~40만원을 지급했다. 임금 체불,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호도 전혀 받지 못했고, 사업장에서 위험한 일은 모두 연수생들 몫이었다. 법의 탈을 쓴 노예제도와 다르지 않았다.
제도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제도 밖으로 빠져나간다. 2003년 기준 산업연수생 제도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 10명 중 3명 이상이 사업장에서 도망쳐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정부와 기업은 잘못된 제도를 고치려고 하지 않고, 사람을 사업장에 묶어두려 했다. 여권 압류, 강제 적립금, 폭행 등 비인간적인 수단들이 사용되었다.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정부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기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한다.
고용허가제는 형식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였지만, 껍데기에 불과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사업주에게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사업장에 종속시켰다. 사업주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되었지만, 사업장을 마음대로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노예가 농노(農奴)로 신분이 바뀌었을 분 여전히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 이전에 법 밖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법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하는 합법화 정책이 아닌 단속과 추방이라는 강경책을 썼다. 제도를 잘못 설계한 책임을 제도의 피해자들에게 전가하며 ‘불법체류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었다. ‘인간사냥’과 같은 비인간적인 단속은 억울한 죽음으로 이어졌다.
2003년 11월 외국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우리도 사람이라는 절규를 외치며 명동성당으로 모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소도는 법의 힘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신성한 지역이라, 죄인이라 해도 그곳으로 도망가면 잡으러 오지 못했다. 삼한시대의 ‘소도’와 같은 곳이 바로 명동성당이었다. 네팔, 방글라데시, 몽골,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은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하고 싶은 말은 같았다. 명동성당 들머리 돌계단에 천막을 치고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은 해를 넘겨 1년 넘게 이어졌다. 그새 많은 이들이 단속되고, 죽고, 추방되었지만 이들의 투쟁은 이주노동자도 노동자라는 당당한 존재 선언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이주노동자의 투쟁을 돌아보는 전시회가 이달 15일까지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주길 바란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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