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상인의 상술이 바꾼 음식, 전골
오는 7일이 대설(大雪)이다. 많은 눈이 내리는 때, 즉 겨울이 깊어지는 시기다. 절기를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최근 들어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이럴 때면 뜨끈한 국물의 음식이 생각난다. 만두전골과 두부전골 등 전골류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요즘 음식점에서 파는 것과 달리 ‘전골’은 원래 국물이 거의 없는 음식이다.
우리의 전통 요리인 전골은 음식상 옆에 화로를 놓은 뒤 그 위에 전골틀을 올려놓고 볶으면서 먹던 음식이다. 잔칫상이나 주안상을 차릴 때 곁상에 재료 등을 준비해 두고 즉석에서 볶아 대접하는 요리였다. 이것을 아예 부엌에서 볶아서 나오면 ‘볶음’이 되고, 국물을 잘박하게 붓고 미리 끓여서 올리면 ‘조치’가 된다. 조치는 ‘찌개’나 ‘찜’을 가리킨다.
즉 요즘 우리 주변의 음식점에서 보는 전골은 거의 다 찌개에 가깝다. <표준국어대사전>도 현재 전골을 “잘게 썬 고기에 양념·채소·버섯·해물 따위를 섞어 전골틀에 담고 ‘국물을 조금 부어 끓인’ 음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쇠고기·돼지고기·해물이나 내장 등을 잘게 썰어 양념을 한 뒤, 채소·버섯 따위를 곁들여 전골틀이나 냄비·벙거짓골 등에 담고, 국물을 조금 부어 즉석에서 볶으면서 먹는 음식”이라고 했던 뜻풀이를 살짝 바꾼 것이다. 특히 요즘의 형태에 맞게 ‘볶다’가 ‘끓이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물은 여전히 ‘조금’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면 상인들의 상술이 반만 먹힌 셈이다.
‘국’과 ‘탕’의 차이에도 상인들의 상술이 조금 담긴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생선국’과 ‘생선탕’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국’의 높임말이 ‘탕’일 뿐이다.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법은 똑같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집에서 동탯국을 끓여 주시는데, 식당 아주머니는 동태탕을 판다. 동태탕이 동탯국보다 좀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일 듯하다.
다만 ‘탕’에는 “국의 높임말” 외에 다른 뜻이 하나 더 있다. “제사에 쓰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국”이다. 소탕, 어탕, 육탕 따위로 나뉘는 ‘탕국’이 바로 그것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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