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자 구제에 벼려진 칼날이 필요한 이유

김동찬 2023. 12. 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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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건물에서 뛰어내리겠다는 고객부터 투자자 열댓명이 단체로 영업점에 찾아오는 등 현장은 난리가 났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고 퇴사를 고민하는 직원도 생겼다."

지난달 중순께 식사 자리에서 만난 한 시중은행 임원이 들려준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의 현주소다.

H지수 ELS의 민낯을 전한 시중은행 임원은 자리를 뜨며 '조금 더' 설명해야 했었다는 논리로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고객에겐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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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자자 구제에 벼려진 칼날이 필요한 이유
"본사 건물에서 뛰어내리겠다는 고객부터 투자자 열댓명이 단체로 영업점에 찾아오는 등 현장은 난리가 났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고 퇴사를 고민하는 직원도 생겼다."

지난달 중순께 식사 자리에서 만난 한 시중은행 임원이 들려준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의 현주소다. 내년 상반기 H지수 ELS 손실은 사실상 불가피해졌다. 문제가 되는 H지수 ELS의 대부분은 지수 평균이 1만을 넘었던 2021년 중 발행됐다. 현재 H지수는 6000 선에서 횡보 중이다. H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원금손실 규모는 3조원 안팎으로 라임펀드 피해액의 2배가량이다.

많은 투자자들은 은행이 ELS의 원금손실 가능성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항의하고 있다. 손실 가능성은 들었어도 H지수 변동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사실상 예·적금 같은 상품으로 소개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위험성 고지 여부는 불완전판매의 핵심 잣대다. 은행이 판매 과정에서 ELS의 수익, 손실 구조를 상세히 안내하지 않았다면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ELS 가입자의 대부분이 재가입자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ELS로 한 번 이상 수익을 본 기존 투자자들이 원금손실 가능성을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H지수가 최고로 오른 지난 2021년 당시 예금 금리는 1%대 초반에 불과했다.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은 금융소비자 보호만큼이나 중요하다. 리스크에 기인한 이익은 여러 차례 누려놓고 이제 와서 시키는 대로 '네, 네' 했다는 사람들의 손실까지 보상해준다면 금융시장의 신뢰 제고는 요원하다.

H지수 ELS의 위험성도 여러 차례 경고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출시 한 달 만에 녹인 구간에 진입한 홍콩H지수 연계 ELS가 등장했다. 당시 지수는 해당 기간 40% 가까이 폭락했다. 2015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돼 원금손실 우려가 발생한 바 있다. 상품의 리스크를 실제 투자결정에 앞서 면밀하게 따져보는 것은 투자의 기본이다.

평생 걸쳐 모은 돈을 날렸다는 이야기가 연일 보도된다. 위법행위엔 엄벌이 뒤따라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반드시 구제돼야 한다. 다만 이번 ELS 사태가 나쁜 선례로 남아서는 안 된다. H지수 ELS의 민낯을 전한 시중은행 임원은 자리를 뜨며 '조금 더' 설명해야 했었다는 논리로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고객에겐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 금융당국의 칼끝이 좀 더 날카롭게 벼려져야 하는 이유다.

김동찬 금융부 eastcold@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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