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어느 뒷모습의 진심

한겨레 2023. 12. 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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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금지된 재현’, 1937, 캔버스에 유채, 81×65㎝.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Rotterdam, Netherlands. wikiart.org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23년이 벌써 등을 돌리며 떠나려 한다. 우리는 1월에 만났고, 아직 제대로 된 내 모습을 보여준 게 없는데 이별이라니. 무덤덤한 관계였어도 돌아선 등을 보는 것은 쓸쓸하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양팔을 벌리고 가슴으로 안아주지만, 등으로는 팔을 굽혀 안을 수 없다. 몹시 유연한 요가 수행자라면 모를까. 그래서 가슴은 따스함이 배가 되고 등은 늘 시리게 마련이다.

무의식의 작동으로, 우연히 제목이 유사한 책을 두권 샀다. 하나는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에두아르 부바가 찍은 흑백사진들에 대한 감상을 쓴 ‘뒷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미술가 안규철이 연필 드로잉과 생각의 조각들을 글로 펴낸 ‘사물의 뒷모습’이다. 두 글쓴이는 서른 남짓 나이 차이는 있지만 분위기가 비슷하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장면을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고, 호기심을 가지고 예리하게 들여다보면서 다른 사람이 놓치기 쉬운 허를 찌르곤 한다. 뒷모습에 관한 두 작가의 접근방식이 그 예다.

투르니에가 책에서 보여주는 부바의 사진에는 사람은 등장하지만, 독자는 주인공의 표정을 알 길이 없다. 뒷모습만 찍었기 때문이다. 뒷모습의 사람은 대부분 자기 행동에 몰두하고 있다. 칠판에 숫자를 쓰며 계산하는 소녀, 쉬지 않고 낫질하는 농부,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두 친구, 석양에 어른거리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 카메라 앞에서 의도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니 모델들은 비교적 사진가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앞의 세계에 집중할 수 있다. 반면, 안규철이 묘사하는 뒷모습은 우리가 평소에 주목하지 않는 사물의 구석진 영역이다. 그 영역은 눈에는 보이지만 존재감이 없어서 숨어 있는 것과 다름없고, 소리가 난다손 치더라도 배경음처럼 들릴 뿐이다.

2023년에도 사람들은 넘치도록 말하고 열정을 다해 행동했지만, 그 경험이 대부분 세상의 반인 앞쪽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앞쪽에서는 눈과 입의 표정과 손동작, 그리고 얼굴의 강렬한 인상이 스크린처럼 중간에 개입하는 바람에 더는 시선이 파고들지 못한다. 특히 인물의 경우 상대와 눈을 맞추면 다른 세부 관찰은 놓치기 십상이고, 사물이라면 색이나 광택이 주는 표피의 효과가 눈을 멀게 한다. 꾸며지지 않은 심심함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허술함에 잠시라도 진심이 머문다면, 그곳은 바로 뒤쪽이다. 투르니에와 안규철이 뒷모습에 주목한 이유는 소소한 진심을 붙잡고 싶어서다. 모두 정면에 나타나 있는데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반쪽만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뒷모습의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인물이 보고 있는 창밖을 나도 같이 보고, 그가 느끼는 빛과 바람을 나도 느껴본다는 상상에서 오는 친밀감 때문이다. 또한 뒷모습은 경직되지 않은 감상을 권장한다. 인물이 나를 향해 있을 때는 모델을 향해 인사를 건네듯 얼굴을 먼저 봐야 하는 부담이 있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몰려있는 밀도 높은 부분이고, 미학적 중심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통수를 감상할 때는 어딜 먼저 봐도 상관없다.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친한 사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상대에게 자신의 허점을 노출해서는 안 되는 팽팽한 견제 관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뒷모습을 내놓는다는 건 달리 생각하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는 등산 동반자라던가 서로 철석같이 믿는 긴장 느슨한 상대일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개를 예로 들자면, 개들은 방어 태세일 때 자기 몸의 뒤쪽으로 다가갈 여지를 주지 않는다. 개와 친해져야만 무방비해진 개의 목덜미와 등과 엉덩이까지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다.

뒷모습은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반쪽이고, 그러기에 누군가를 대변하는 제대로 된 이미지가 될 수 없다. 과연 어느 신분증에 얼굴 대신 뒤통수 사진이 올라가겠는가. 그런데도 거기에 진심이 담긴다는 역설이 최대의 매력 포인트이다.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가 그린 ‘금지된 재현’에 자기 뒷모습을 보는 남자가 서 있다. 논리적으로는 어긋나지만, 시적인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우리는 거울을 볼 때 그 속의 나와 눈을 맞추고 얼굴에만 집중하느라 내 이면에 감춰진 이모저모를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위장을 마친 앞모습이 아니라 허술한 뒷모습에서 진심을 찾을 수 있다면, 12월에 우리가 봐야 할 거울은 마그리트의 거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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