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공공의료와 필수의료가 당면한 문제들

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2023. 12. 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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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류의 의료서비스가 존재한다.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 병의원, 지방의료원, 보건소 등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전 정부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의료진은 국민과 함께 고군분투했고,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정부를 중심으로 공공의대설립 등 공공의사 확충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으나 획기적 성과는 거두지는 못했다.

'공공의료'란 국가와 지자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 계층, 분야와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 의료 이용을 보장해 주는 의료시스템이다. 즉,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공공의료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일찍이 국가 차원의 공공의료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의료환경이 발달했기에 현재로서는 공공의료의 역량이 미진한 형편이다. 지역의료 협력체계를 통해 보완을 꾀한다 해도 민간병원으로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방의료원 확장과 지역 안배로 공공의료시스템을 확충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지만, 지방에서 근무할 의사를 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리라 본다.

지방 의료인력의 확충 문제는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의료원이나 공공의료의 근무 환경을 상급종합병원에 맞추기는 어렵겠으나, 충분한 재정을 바탕으로 한 인력보급이 우선돼야 한다. 의료진은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하고, 지역 환자들은 안심하고 진료를 보려면 공공의료시스템이 민간의료시스템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국민이 인식할 수준까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들이 애써 확충한 공공의료를 외면하고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원정진료 가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공공의료와 함께 논의의 중심에 있는 '필수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공공의료적 광의의 개념보다,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중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이다. 최근, 서울 소재 종합병원의 간호사가 뇌동맥류로 사망한 사건과 소아과의사 공백 이슈 등은 붕괴 직전의 필수의료에서 곪아 터져 나온 문제다. 필수의료 공백이 생기면 누구라도 응급치료를 받을 수 없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누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 일인지 정부와 의료계는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여긴다.

그런데 필수의료의 개선이 과연 의사의 수적 확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일까. 어려운 문제다. 현재와 같은 의료체계 아래에서는 의사 수가 늘어나든 의대 정원이 늘어나든 필수의료에 몸담는 의료진 수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응급환자를 치료하려면 동시에 다수의 의료진이 필요한 여건상 의료행위를 하면 할수록 재정적으로 이윤을 낼 수 없는 마이너스 구조다. 의료진도 언제든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24시간 대기해야 하는데, 노동에 따른 보상이 부족하다. 더불어 필수의료를 담당할수록 중환자를 맡을 일이 많아지는 탓에 의료행위에 따른 법정 분쟁에 휘말릴 확률이 늘어난다. 이런 부정적 상황을 감수하며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해온 필수의료진들이 경제적 보상과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기회에 흔들린다면, 사명감이 부족한 이들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필수의료의 척박한 환경은 이미 언론 기사나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드라마를 통해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조차 진작 알고 있는 문제일 텐데 말이다.

다급한 의대 증원보다는 필수의료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먼저 개선돼야 하고, 병의원과 다른 수가체계로 조정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필수의료시 발생한 의료분쟁을 의사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맡아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적은 비용으로 미슐랭 스타의 요리를 즐기기 어렵듯 적은 의료비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라면, 필수의료에 부족한 의료비를 국가가 보조해 주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공공의료와 필수의료 개선을 목적으로 한 국가 의료시스템의 재정비 없이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모두 인식했으면 한다. 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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