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미국 내 반이스라엘론
미국의 대외전략가들 중에는 대외정책이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꽤 있다. 최근 작고한 헨리 키신저, 그에게 영향을 준 조지 케넌 같은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을 가진 이들에게서 그런 입장이 잘 드러난다. 현대 민주주의가 본래 대의의 왜곡 문제를 안고 있지만, 외교는 여론과 정책 결정이 괴리되는 대표적 분야이다. 그중에서 미국이 가장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게, 어떤 경우 국익 측면에서도 비합리적으로 결정해온 게 있다면 바로 이스라엘 정책일 것이다. 그것은 인구의 2% 남짓한 유대계가 정치·경제·언론·예술계 주요 길목을 장악하고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것과 관계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미국에서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분출하는 것은 과거와 달라진 현상이다. 그것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같은 진보적인 유대계 미국인들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국무부, 백악관, 의회 내 인사들이 ‘묻지마 이스라엘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유대계 자본의 영향력이 큰 할리우드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시아 닉슨, 셀레나 고메스, 호아킨 피닉스, 브래들리 쿠퍼 등 유명 배우들이 불이익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휴전을 촉구했다.
철옹성 같았던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도 균열이 생긴 것일까. 단언하기 이르지만 미국인들의 여론이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이스라엘에 비판적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조사에서 20·30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적 견해가 다른 연령대보다 낮은 것이 일관되게 확인된다.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호감정이 이스라엘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갤럽). 그런 경향은 이번 전쟁 후 심화될 수 있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홀로코스트 역사에 대한 기억이 옅어지는 반면 지난 75년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청소에 가까운 방식으로 대우해온 것까지 균형감 있게 바라보려는 태도가 작용하는 것일 수 있다. 민주·공화를 막론하고 외교정책을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려는 미국 지도자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은 시사적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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