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뒤흔든 '그 손가락'…'메갈'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최우영 기자 2023. 12. 3. 16:19
[게임인마켓]
외주 영상 및 일러스트 속 남성혐오 손모양 넣어 물의
게임사는 외주사 탓 하지만 실제 게임사 내부 동조 움직임도 감지
자신의 신념 또는 사상을 공동작업에 넣어 사회적 물의 및 재산상 피해 야기
외주 영상 및 일러스트 속 남성혐오 손모양 넣어 물의
게임사는 외주사 탓 하지만 실제 게임사 내부 동조 움직임도 감지
자신의 신념 또는 사상을 공동작업에 넣어 사회적 물의 및 재산상 피해 야기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지난 주말 넥슨 직원들은 단체로 새벽 3시 출근을 감행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손가락 제보' 때문이었다. 남성혐오, 정확히는 한국 남성 혐오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명 '메갈' 손 모양이 자사 게임 일러스트와 홍보영상 곳곳에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새벽 시간대 판교 넥슨사옥 근처에는 때 아닌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어두운 주말 판교 오피스타운 가운데 넥슨 사옥만이 등대처럼 불을 밝혔다. 새벽에 출근한 직원들은 게임 영상과 일러스트를 우선 다 내린 뒤 '전수조사'하기에 이르렀다. 프레임 단위로 영상을 끊어 보고, 명암을 조절해가며 혹여나 숨어있을지 모를 '그 손가락'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한 누리꾼이 파격 제안을 했다. "유저들에게 영상 찾아오라고 한 뒤 보상을 주는 방식이면 어떨까.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메소'(게임 내 재화)를 어느 정도 준다고 하면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의 컷들을 찾아올텐데." 게임사도 그 같은 방식의 효율성을 모르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새벽에 현업 부서를 총출동 시켜 영상 전수조사에 들어간 데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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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제작 영상에도 손가락 있을라…전전긍긍 게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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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만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스튜디오 뿌리가 작업을 맡았던 넥슨게임즈, 카카오게임즈 등의 게임사도 자체 조사에 착수해 문제의 손가락을 찾아내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떠한 게임사도 영상 속 손가락 '색출' 작업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직접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와 비교적 무관한 한 게임사 관계자는 그 배경을 이렇게 짐작했다.
"유저들이 찾아낸 영상 외에도 '메갈 손가락'이 등장하는 다른 영상들을 직원들이 먼저 찾아내 없애겠다는 목적이 있겠지요. 더 큰 문제는, 외주사가 아닌 '자체 제작'한 영상이나 일러스트 속에도 그러한 모양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걸 게임사가 아닌 유저들이 먼저 발견한다면 파장이 더 커질 수밖에 없거든요. 선제적으로 영상을 전수조사하면 자체 영상에서 찾아내도 아무도 모르게 빨리 없앨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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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사 애니메이터 탓만 하기엔…못믿을 내부 동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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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와 관련 사람들의 충격을 자아낸 요소 중 하나는 외주사가 의뢰 받은 작업을 하면서 '장난질'을 쳤다는 것이다. 차후 감당할 손해배상도 문제지만 자신의 직업과 커리어, 나아가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는 데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한 게임사 직원은 "게임이라는 게 한두명이 아닌 여러 사람이 장기간 노력해 만든 결과물"이라며 "거기다 개인적인 신념을 반영해 많은 사람을 고생시키는 게 사회운동이겠냐"고 꼬집었다.
외주사가 아닌, 게임사 내부에도 이들에 대한 옹호 여론이 감지된다. '아트 부서'에서 일한다는 한 넥슨게임즈 직원은 "동료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누리꾼들이 오버한다'는 식의 의견을 내놓는다"며 "온 회사가 발칵 뒤집혔는데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부서 내에는 그런 의견이 다수라 사무실에서는 동조하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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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의 메갈 논란 '오래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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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별 '메갈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8년 XD글로벌의 소녀전선, 스마일게이트의 소울워커, 나딕게임즈의 클로저스 등이 일러스트레이터의 '메갈 옹호' 성향 때문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2016년에는 시프트업의 데스티니차일드 일러스트를 맡은 작가가 논란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경우 게임사들은 일러스트레이터를 교체하고, 기존 작업물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과거 논란에 휘말렸던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억울한 면도 있다. 이번 사태처럼 작업물에 몰래 장난질을 친 게 아니라, 작업물과 별개로 자신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메갈리아 옹호 글을 올리다 누리꾼들과 논쟁이 붙은 정도였다. 다만 당시에도 누리꾼들은 "남성혐오한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 남성 유저들 상대로 장사하는 게임사에서 돈을 받는다는 게 맞지 않는다"는 논리로 게임사에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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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 해줄게" 일베와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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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에 불을 붙인 것 역시 스튜디오 뿌리 소속 애니메이터의 소셜미디어 글이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남자 눈에 거슬리는 말 좀 했다고 SNS 계정 막혀서 몸 사리고 다닌 적은 있어도 페미 그만둔 적은 없다.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해줄게."라는 말을 남겼다. 누리꾼들은 이 발언이 게임사 영상과 일러스트 속에 '은근슬쩍 스리슬쩍' 메갈 손가락을 넣은 정황 증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거에도 '은근슬쩍 스리슬쩍'으로 여러 회사의 혼을 쏙 빼놓았던 집단이 있다.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다. 게임업계에선 2016년 '네시삼십삼분'의 이터널클래시가 유명한 사례다. 게임 속 챕터 4-19를 '반란 진압', 챕터 5-18을 '폭동'으로 이름 지으며 일베식 역사관을 '은근슬쩍 스리슬쩍' 드러냈다. 한 출판사는 도서 번역본을 내면서 '바보처럼 당했다'는 표현을 "민주화됐다"는 식으로 쓰다 물의를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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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짓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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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은근슬쩍 스리슬쩍'에는 유희적 성격이 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조성우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의무이사(같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는 "일베나 메갈의 심볼을 삽입하는 사람들은 이를 일종의 '게임'으로 여기는 것"이라며 "화이트해커들이 사이트를 해킹한 뒤 눈에 띄는 피해를 안 주더라도, 해킹을 완료했다는 표식을 심어놔 자기들끼리만 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바라봤다.
조 이사는 "물론 그 같은 행위가 개인정보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 등으로 사회적 도덕률이나 법질서에는 맞지 않지만, 자신들끼리는 일종의 놀이가 되고 유희가 되는 측면이 있다"며 "돈벌이와 상관 없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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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사 관리해도 제2, 제3의 손가락 방지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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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를 바라본 게임사들은 외주사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며 선제적 경고를 날리고 있다. 일부 외주업체들은 직원들의 개인 소셜미디어를 검열한 뒤 '메갈 옹호' 성향이 보이는 일부 직원들에게 사직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를 전면 수정해 '작업물에 개인의 사상과 신념 등을 넣어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문구를 집어넣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외주사와 별개로 게임사 내부에도 이 같은 '손가락'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는 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온갖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일베는 현재도 동시접속자가 1만여명이 넘는 거대 커뮤니티다. 메갈리아는 2017년 폐쇄됐지만, 이를 뒤잇는 것으로 알려진 '워마드' 역시 일베와 비슷한 규모이기에 모든 조직 구성원을 검열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과거 일베가 '우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식으로 업계에 공포를 조장했다면 이제는 '메갈' 역시 일베와 같은 요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개개인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한 선제적으로 이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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