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기보다 ‘인간’···‘조세핀의 남자’ 나폴레옹[리뷰]

최민지 기자 2023. 12. 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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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1804년 스스로 황제가 된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은 조제핀에게 직접 황관을 씌웠다. 소니픽쳐스 제공
영화 <나폴레옹>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 당한 1789년부터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30년의 시간을 그린다. . 소니픽쳐스 제공

하얗게 센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가 단두대에서 댕강 잘린다. 선혈이 흐르는 그의 머리를 사형 집행인이 높이 들어올리자 광장의 군중은 열광한다. 절대왕정을 끌어내린 혁명의 불꽃이 프랑스 전역을 활활 태우고 있다. 군중 속 한 젊은 군인이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변두리 섬 코르시카 출신의 장교인 그는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자리를 뜬다. 15년 뒤, 그는 이 나라의 황제가 된다.

‘구국의 영웅’, ‘전쟁광’, ‘침략자’, ‘타고난 지도자’ 등 엇갈리는 평가의 주인공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다. 촌뜨기 장교에서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전쟁 영웅이자 황제 자리에 오른 그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인물이다.

<에일리언>(1979), <글래디에이터>(2000), <마션>(2015)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여든 여섯의 거장 리들리 스콧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 만들지 못한 영화’로 늘 ‘나폴레옹’을 꼽아왔다는 스콧 감독에게 <나폴레옹>(6일 개봉)은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다.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 당한 1789년부터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30년의 시간을 그린다. 프랑스 혁명 직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 공화국 수립과 소멸, 나폴레옹에 의한 제국 건설, 그의 실각과 왕정복고에 이르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시간 순서대로 펼쳐진다. ‘코르시카 출신 깡패’ 정도로 취급 받던 나폴레옹은 뛰어난 전략가로서 능력을 발휘, 가는 곳마다 크게 승리한다. 혼돈의 시대를 끝낼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그의 위세는 유럽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다.

영화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전투들을 상당 분량을 할애해 담아낸다. 툴롱, 아우스터리츠, 워털루 등 스크린에 구현된 주요 전투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사실감 넘치고 때론 그로테스크한 전쟁 장면은 관객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감독은 수십만 제곱미터에 걸친 드넓은 촬영지에서 최대 11대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하며 참혹한 전장의 모습을 스크린에 담았다.

나폴레옹은 한 사교 파티에서 만난 조제핀에게 반한다. 소니픽쳐스 제공

나폴레옹이 겪는 역사의 파고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조제핀(바네사 커비)이다. 나폴레옹은 젊은 시절 파리의 한 사교 파티에서 아름다운 조제핀에게 반한 뒤 평생에 걸쳐 그를 사랑한다. 조제핀은 나폴레옹보다 6살 연상으로 두 아이의 엄마였다. 나폴레옹의 열렬한 구애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순애보와는 거리가 있다.

조제핀은 나폴레옹이 원정을 나간 사이 다른 남자를 끌어들인다. 멀리 이집트에서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나폴레옹은 몰래 전장을 이탈하고, 조제핀에게 울부짖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론 감정적·신체적 착취로 물들고, 때론 지극한 사랑으로 가득찬다. 전쟁 영웅으로서의 삶과 영 순탄치 않은 사랑을 하는 남자로서의 삶은 두 축을 이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이 위인과 그의 사랑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미국 배우 호아킨 피닉스, 영국 배우 바네사 커비의 뛰어난 연기력이다.

<나폴레옹>은 지난달 프랑스에서 공개된 직후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영국인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인 배우가 미국식 영어로 내뱉는 대사가 프랑스인의 마음에 쏙 들긴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비판의 주된 내용은 영화가 나폴레옹과 그를 둘러싼 여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앙투아네트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거나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폭파시키는 장면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스콧 감독이 나폴레옹을 싫어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실제 영화 속 나폴레옹의 모습은 전기 영화의 카리스마적 주인공과는 거리가 있다. 군사 전략에 뛰어나다는 묘사가 있지만, 전장에서는 힘에 부친 듯 숨을 헐떡이고 중요한 자리에서 꾸벅꾸벅 존다.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시키는 장면은 특히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다. 나폴레옹이 내리는 많은 결정은 구국의 결단이 아니라 조제핀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처럼 묘사된다.

<나폴레옹>은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을 자신 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픈 거장의 욕망을 그대로 실현한 결과물이다. 그가 읽은 나폴레옹은 ‘위인’보다 ‘인간’에 가깝다. 감독의 관심도 나폴레옹의 업적보다 내면에 더 가있다. 그는 “사람들이 여전히 나폴레옹에게 매료되는 이유는 그가 매우 복잡미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객이 <나폴레옹>을 보며 느낄 영화적 재미는 스콧의 이같은 인물 해석에 대한 동의 여부에 따라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을 듯 하다.

러닝타임 158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여러 전투들을 상당 분량을 할애해 담아낸다. 툴롱, 아우스터리츠, 워털루 등 스크린에 구현된 주요 전투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소니픽쳐스제공
소니픽쳐스 제공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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