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를 시방허공에 내뿜었지만 흔적조차 남기지 않아”···자승스님 영결식
법구 용주사로 이운...다비식 봉행
“황망하다” 신도들은 눈시울 붉혀
“생사가 없다하나 생사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
3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치러진 자승 전 총무원장의 영결식에선 자승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열반송이 수차례 되뇌어졌다.
조계종은 지난달 29일 경기 안성 칠장사 화재 현장에서 입적한 자승스님의 영결식을 종단장으로 엄수했다. 영결식을 치른 후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한 후 법구를 경기도 화성 용주사로 이운한 후 다비식을 봉행했다.
영결식엔 종정 성파스님, 총무원장 진우스님 등 조계종 주요 인사와 한덕수 국무총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정세균 전 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정치권 인사와 김희중 대주교, 김영주 목사 등 종교계 인사, 불자 등 1만여 명이 참석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신도들은 영결식 1시간 전부터 조계사에 모여들어 영결식을 지켜봤다. 신도들은 “황망하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강렬한 화광삼매 속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리를 시방허공에 내뿜었지만 결코 어느 누구도 손에 넣을 수 없도록 사바세계에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진우스님은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말씀처럼 때가 되니 할 일을 모두 마치게 되었고 홀연히 이사(理事)의 두 경계를 넘어서며 모든 것을 허공계에 회향하셨으니 가이 범부로서는 가늠조차할 수 없는 격외의 모습”이라며 자승스님이 ‘소신공양 자화장’을 선택한 것에 대해 말했다. 진우스님은 이어 “빨리 가고 늦게 가는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선지식께서는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을 먼저 보이신 것일 뿐”이라고 영결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사에서 “자승 큰 스님은 불교의 화쟁 정신으로 포용과 사회 통합의 리더십을 실천하신 한국 불교의 큰 어르신이었다”며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연대의 정신으로 어려운 이웃을 더 따뜻하게 살피고 국민의 삶 구석구석 희망이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불자모임인 정각회 회장인 주호영 의원은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에 황망하고 혼란스럽다”며 “큰스님이 택하신 방법은 충격적이고 그 깊으신 뜻을 아직은 헤아리기 어렵다”고 조사에서 말했다. 이어 “‘더 이상 구해보아야 무상할 뿐이니 구하는 헛된 일이 소용없음’을 보여주시려 하신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영결식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학생의 유가족,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인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득중 쌍용자동차노조 지부장, KTX 해고 승무원 김승하 전국철도노조 KTX 여승무원 지부장, 권미정 부지부장 등이 참석해 헌화했다. 이들은 자승스님이 총무원장 재임 시절 만든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자승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자승스님은 지난달 29일 칠장사 요사채(승려들이 거처하는 집)에서 입적했다. 조계종은 자승스님이 남긴 유서 등을 근거로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 한 것으로 판단했다. 1954년 강원 춘천에서 출생한 자승스님은 1972년 해인사 지관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한 후 2009년 10월분터 2017년 10월까지 8년간 총무원장으로 종단을 이끌었다. 서울 봉은사 인근 자승스님 속소에서는 진우스님 앞으로 남긴 “끝까지 함께 못해 죄송합니다. 종단의 미래를 잘 챙겨주십시요”라는 글이 발견됐다. 또한 네 명의 상좌(제자) 스님들에게 “탄묵, 탄무, 탄원, 향림. 각자 2억(원)씩 출연해서 토굴을 복원해주도록. (20)25년까지 꼭 복원할 것”이라고 화재로 소실된 칠장사를 복원할 것을 당부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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