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동물원이 성인들 사로잡은 비결은?[현장에서]
“동물들이 웃고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2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김다영씨가 암사자 ‘도도’를 보며 말했다. 30대 중반인 김씨는 ‘동물원 마니아’다. 조련사가 꿈이었던 그는 6개월 전부터 전국 동물원을 찾아 동물들 영상을 촬영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동물원을 좋아해 실내 동물원을 포함해 전국 동물원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대부분 동물원 동물들이 좁은 우리에 갇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은 편안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이 동물 복지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야생동물의 재활을 돕고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동물 복지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수달 방사장 주변은 고요했다. 큼지막한 바위와 웅덩이 여러 개, 풀밭 등 최대한 자연과 가깝게 만들어진 800㎡ 규모의 방사장에 수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오늘 수달 기상 예상 시간 오후 2시’라는 안내 문구가 놓여 있었다. 야행성인 수달의 활동 시간을 배려해 동물원 측이 써놓은 것이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은 “일부 동물원들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수달이 잠자는 장면 등을 그대로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며 “청주동물원은 수달의 습성을 고려해 야생에 가깝게 방사장을 만들고 입장객들을 위해 오후에 수달의 훈련모습을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달 활동 시간을 안내하는 문구는 여느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장치다. 대신 청주동물원에서는 입장객들을 위한 먹이 주기 체험 시간이나 공연 시간 등을 안내하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동물원 한편 방사장 4곳에는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동물을 보호하고 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청주동물원은 2014년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지 외 보전기관’이다.
김 팀장은 “이 곳을 미아 및 장애야생동물 방사장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이곳에는 다양한 기관에서 구조됐지만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한 동물들이 모여있다”고 설명했다.
야생동물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참매 ‘매르씨’는 유리창에 부딪혀 머리를 다쳐 이곳에 왔다.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 제대로 날지 못한다. 오소리 ‘군밤이’와 너구리 ‘헝구리’는 어릴 때 사람들에게 구조된 탓에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다. 군밤이와 헝구리는 야생으로 돌아가는 데 실패해 이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온 사자 ‘바람이’와 독수리 ‘하늘이’, 농장에서 구조된 반달가슴곰 ‘반이’·‘달이’·‘들이’도 이 동물원에서 산다.
김 팀장은 “실내 동물원·야생동물구조센터·농장 등에서 학대받거나 크게 다쳐 안락사 위기에 놓인 동물들이 이곳을 찾는다”며 “매르씨를 통해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조류 충돌 방지 장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1997년 것대산(해발 484m) 자락에 문을 연 청주동물원이 동물 복지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다. 청주동물원은 강원도 곰 농장에서 구조돼온 반이·달이·곰이를 위해 곰사를 새로 지었다. 2021년에는 11억원 사업비를 들여 수달 방사장과 맹수 방사장을 동물들의 생태환경과 비슷하게 꾸몄다.
곰·원숭이·고양잇과 동물 등을 대상으로 동물행동풍부화 사업도 진행한다. 동불 복지에 전념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사육사를 ‘동물복지사’로 부르고 있다.
사육 두수도 줄이고 있다. 동물들에게 넓은 사육장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청주동물원 내 동물은 2019년 85종 516마리에서 올해 67종 300여마리로 감소했다.
청주동물원은 지난해 환경의날 환경보전유공 대통령상을 받았다.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지속적인 환경 개선과 멸종위기종 복원 및 증식 등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동물복지에 신경쓰면서 성인 입장객도 늘고 있다. 청주동물원에 따르면 2019년 12만9889명이였던 성인 입장객은 올해 10월 현재 15만2890명으로 17.7%(2만3001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에는 전체 입장객 26만3876명 중 아동이 13만3987명으로 더 많았지만, 올해 26만2663명 입장객에는 성인(15만2890명)이 아동(10만9773명)수를 넘어섰다.
학대받다 이 곳으로 이송돼 새 인생을 살고있는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의 인기스타가 됐다. 지난 9월 청주시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바람이의 첫 외출 영상 조회수는 53만뷰나 된다.
김 팀장은 “어린이는 호기심에 동물원을 찾지만 성인들은 좁은 사육장에 무기력하게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며 불편해 한다”며 “바람이 등의 사연이 알려지고 청주동물원이 동물 복지에 신경 쓰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성인 입장객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바람이가 발을 다쳐 내실에서 치료 중인데 바람이 안부를 걱정하는 입장객들의 문의가 잇따를 정도”라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앞으로는 동물 복지를 생각하는 동시에 입장객들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재미있는 동물원’으로 변할 계획이다.
김 팀장은 “동물원에 들어설 예정인 동물병원을 입장객들에게 공개해 동물들이 건강검진을 받는 모습을 선보일 계획”이라며 “먹이주기 체험 대신 동물들을 위한 장난감 만들기 등의 활동으로 입장객들에게 동물복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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