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BBC 카디프 콩쿠르 심사위원을 울렸던 그 한국인, 런던 데뷔 공연 돌연 취소된 이유는
2021년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우승자인 바리톤 김기훈. 경연 과정에서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인 명연을 펼쳐 한국인 최초로 이 콩쿠르 메인 프라이즈인 오페라 부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눈물과 찬탄을 함께 자아내는 벨벳 바리톤'(가디언), '롤스로이스 같은 목소리'(BBC뮤직매거진) 등 극찬을 받았던 김기훈은, 콩쿠르 우승 이후 유럽에서 첫 리사이틀을 열게 되었습니다.
위그모어 홀 데뷔 프로그램엔 한국 가곡도
김기훈은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 브람스의 '네 개의 엄숙한 노래', 라흐마니노프의 가곡 9곡, 그리고 한국 가곡인 '연', 묵향'(이원주 곡), '못 잊어'(조혜영 곡)를 준비했습니다. BBC 카디프 콩쿠르에 출전해서도 한국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김주원 곡)를 불렀는데, 당시 외국인들이 한국 가곡에 대해 발음은 뭔지, 어떤 의미인지 많이 물어왔다고 합니다. 김기훈은 그래서 외국에 한국 가곡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위그모어 홀 디지털 프로그램북을 보니 한국 가곡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국어 원어 가사에 영어 번역을 병기해 실어 놓았습니다.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전엔 외국어 원어 가사 옆에 실린 한국어 번역을 주로 보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못 가지만 런던에 있는 황정원 작가에게 공연에 꼭 가서 직접 보고 어땠는지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연 직전에 취소…그래도 그는 노래했다
그렇게 중요한 공연인데,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취소되다니. 저도 안타까웠는데 당사자는 어떻겠어요. 몇 시간 후, 김기훈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그는 공연 취소 소식을 알리며 너무 아쉬워서 연주 영상을 녹화했다며 한국 가곡 '못 잊어'를 부른 영상을 올렸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reel/C0H1hg2MDDY/?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3D%3D ]
잠시 후 그는 두 번째 게시물에서 또 한 곡, 토스티가 작곡한 이탈리아 가곡 'L'alba separa dalla luce l'ombra(새벽의 빛은 그림자를 가르고)를 올렸습니다. 예술의전당 공연 때 앙코르로 불렀던 곡으로 이번 공연에서도 앙코르로 준비했던 곡이라 합니다. '독창회 못 오신 여러분께 띄워드린다'고 한 그의 노래에도, 그가 이어 쓴 문장에도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reel/C0IT_SRoO7t/?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3D%3D ]
'긍정왕' 바리톤 김기훈이 달려온 길
성악 전공이라 하니 군악대에서 복무하게 되었는데, 전혀 연주해 보지 않은 관악기인 튜바를 새로 배워 연주해야 했습니다. 매일 노래뿐 아니라 튜바 연주에 춤에, 온갖 잡무도 맡아하며 군 생활을 마치고 나니 성대결절이 생겼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성악을 포기할 생각도 했었지만, 백지상태로 돌아가서 발성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면서 목소리를 되찾았습니다.
이렇게 슬럼프를 극복했지만, 독일 유학 후 하노버 오페라 극장에서 3년간 활동하다가 2019년 계약이 끝나 '백수'가 됐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과연 음악가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2019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잇따라 2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공연 기회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는데 2020년 코로나가 덮쳤습니다. 공연 취소가 잇따르면서 또다시 실의의 나날을 보냈죠. 그러다가 2021년 카디프 콩쿠르에 출전해 극찬을 받으며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카디프 콩쿠르 우승 후에도 당장 탄탄대로가 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의 기세는 여전했고, 그는 콩쿠르 우승 후 한동안 노래가 잘 되지 않는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더 좋은 음악, 더 편한 발성,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슬럼프가 왔던 것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성대결절로 목소리를 잃었을 때 그랬듯,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다시 시작해 보고, 놓친 게 무엇인지 돌아봤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 '슬럼프가 올 때마다 성장했기 때문에 슬럼프가 두렵지는 않다'라고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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