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들 물 떠주던 탁구 소녀, ‘사라예보 전설’ 이에리사가 되다[이헌재의 인생홈런]

올해는 사라예보의 전설이 탄생한 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은 세계 최강 중공(현 중국), 직전 대회 우승팀 일본을 모두 꺾고 우승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단체전 세계 제패였다. 그 중심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이에리사가 있었다. 19세 소녀 이에리사는 단체전 단식에서 19전 전승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돈이 많아서 통 큰 기부를 한 건 아니다. 그는 평소 검소하게 생활한다. 만남의 자리에 입고 나온 가죽 재킷도 30년째 입고 있는 옷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알뜰하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다. 절약해서 돈을 모았다”며 “화려하진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었던 주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탁구부에 가서 심부름을 해주면 오빠들이 대신 탁구를 쳐 주곤 했다”며 “물을 떠 오라면 떠 오고,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도 불렀다”고 했다.
그가 출전한 첫 공식 대회는 1966년 전남 목포에서 열린 종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대회에 출전한 여자 초등학생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 그가 승리하면서 생애 첫 금메달을 땄다. 돌이켜보면 그의 금메달 행진이 시작된 중요한 경기였다.
남자 선수들과의 훈련을 통해 그는 ‘드라이브’의 효과를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선수들은 탁구공을 회전을 걸어서 치는 드라이브를 치지 않았다. 세계적인 수준의 중국과 일본 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3때 대표팀에 들어온 후 그는 천영석 당시 코치(이후 대한탁구협회장 역임)에게 “남자 선수들처럼 드라이브를 치고 싶다”고 요청했다. 요즘은 남녀 선수 가릴 것 없이 일상화되어 있는 드라이브 스트로크는 체력이 많이 필요하고, 정교함이 떨어질 수 있다며 여자 선수들에게는 위험한 기술로 여겨지던 때다. 천 코치는 선뜻 이를 받아들였고 공을 들여 그를 지도했다.
이에리사는 나름대로도 노력을 많이 했다. 정규 훈련이 끝난 뒤 일주일에 한 두 번 성인 선수였던 오빠들을 상대로 극비 훈련을 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고 일본 탁구 잡지를 돈을 주고 번역을 시킨 뒤 내 탁구일지에 정리하기도 했다”며 “그렇게 내 것이 된 드라이브 기술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그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앞세워 1969년부터 1975년까지 종합탁구선수권대회 7연패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태릉선수촌장을 할 때 장미란(역도), 박태환(수영). 김연아(피겨)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 난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 선수단 총감독으로 참가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종합 메달 순위 7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9월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열지 못했던 주니어탁구대회도 개최했다. 그는 “대회에 출전한 200여 명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장과 기념품을 줬다. 실력이 모자라는 아이에겐 페어플레이상을 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자 했다”며 “스포츠를 통해 스스로 강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배려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유소년 선수들에게는 ‘꿈나무 장학금’을 지급하고, 숨은 체육계의 공로자들에게는 ‘휴먼 어워드’를 시상한다. 2020년 2회 수상자는 40년 가까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헌신한 신승철 진천국가대표선수촌 검식사였고, 작년 3회 수상자는 10년 넘게 후배들과 함께 달려온 임계숙 KT 하키단 감독이었다.

그는 걷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리는 어지간한 거리는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 시내를 나갈 때도 자동차보다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그는 “자동차를 이용하면 주차 등으로 인해 오히려 시간에 쫓기게 된다”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건강은 물론 마음에도 훨씬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집이 있는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서 양재천으로 이어지는 길로 산책도 종종 한다. 그런 식으로 하루에 1만보~1만2000보 가량을 꾸준히 걷는다.
최근 들어서는 가까운 후배들과 골프 라운드도 가끔씩 나간다. 그는 “탁구공을 치던 감각이 있으니 엉뚱하게 치진 않는 편”이라며 “스코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좋은 공기 마시며 좋은 사람들과 밥 먹는 재미가 크다”고 했다. 골프장에서도 가능한 한 카트를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

그는 “나름 체육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느 자리에서는 당당하고 반듯하게 보이려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후배들에게 닮고 싶은 선배의 모습으로 남는 삶을 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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