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공간, 시간을 만나 차원의 화폭이 되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2023. 12. 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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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리: 공간에 드리운 선과 그림자, 공백들
무릎 위 작은 공간에서 지속해온 뜨개질
선이 공간을 장악하는 조각으로 거듭나
성글게 짠 실일수록 더 멀리 늘어나게 돼
다양한 밀도의 선으로 세상 오롯이 담아
3D 펜으로 그린 검은 탑과 흰색 탑 그림
외면과 내면의 상반된 정체성 표현해내
‘파낸 자리’는 선 이면의 공백 기반해 작업
선과 공간의 관계 조율하는 작업 이어가

뜨개질로 엮어낸 기다란 선이 공간을 가로지른다. 하나의 점에서 출발하여 또 다른 점에 가닿기를 반복하며 허공에 거듭 드리우는 곡선들. 보라리는 실을 재료 삼아 보다 두터운 부피의 선을 짜낸다. 묵직한 선 여럿을 공간 위에 이리저리 떨어뜨리면 어느덧 장소 자체가 삼차원의 화폭이 된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시간으로 조각하는 공간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보라리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부 졸업 후 텍사스 대학교 샌안토니오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갤러리 도스, 2014년 대담미술관, 2016년 환기미술관, 2020년 대구예술발전소, 2023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를 포함해 다양한 전시 공간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청주시립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오산시립미술관, 대구예술발전소, 소다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 기관이 개최한 단체전에 작품을 선보였다. 2021년 서울 양천구에 설치된 ‘연잎징검다리’와 과천서울대공원의 ‘솜사탕 코끼리’ 등 공공미술 작품을 여럿 제작하기도 했다. 현재 인천대학교, 충북대학교, 안동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파낸 자리’(2023) 연작. 보라리 제공, 사진=임장활
◆공기 위에 그린 그림: 현실 공간을 점유하는 ‘선’

털실 특유의 질감과 짜임 무늬 생김새가 사람 손끝의 온난함을 연상시킨다. 뜨개질은 작가가 일상의 빈 시간마다 무릎 위 작은 공간에서 지속해 온 행위이다. 어느 날에는 파도치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었고 또 다른 때에는 그저 습관처럼 거듭하는 노동이었다. 그에게 뜨개질이란 소박한 일상의 한 조각이며, 매일의 자신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무던히 지새우는 보통의 날들을 닮은,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때로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몸짓이다.

지극히 사적인 시공간 속에서 제작된 직물이 전시 공간 내에서 드러내는 확장성은 그러므로 역설적이다. 내밀한 시간을 거듭 먹고 자라난 선들이 보란 듯 공적 장소를 점유한다. 방문객의 시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동선을 조율하는 등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부드럽고 연약한 재료로 이루어진, 단순하고 기초적인 조형 요소로서의 선이 하나의 공간을 장악하는 조각으로 거듭난다. 위대한 서사는 언제나 가장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법이다.
보라리 개인전 ‘당신과 나 사이 In Between You and I’(2016). 환기미술관 전경. 보라리 제공
매번의 전시마다 늘 다른 공간마다 보라리의 선은 새로운 형태로서 드리운다. 평면 회화가 디딜 수 없는 입체 공간을 짚고 나아가거나 보통의 조각이 놓일 수 없는 수직 공간에 자신의 일부를 늘어뜨리기도 한다. 성글게 짠 실일수록 더 멀리 늘어난다. 한 땀 구간이 느슨할수록 전체의 선이 유연한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보다 촘촘히 짜낸 구간은 중력 방향을 향하여 조금 더 무겁게 떨어진다. 치밀한 손의 움직임에 따라 밀도 있는 시간을 머금은 직물은 늘어난 질량만큼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최근에는 허공에 선을 긋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3D 펜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공기 위에서 뜨개질하듯 손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가느다란 선들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다. 여리지만 단단한 필라멘트 선들은 중력을 따라 늘어지는 털실과 달리 현재의 공기를 딛고 수직 방향으로 솟아난다. ‘검은 탑’(2022∼2023) 연작에 줄곧 보이는 탑의 형상은 ‘라푼젤’ 이야기에서 차용한 모티프다. 내밀한 세계로 숨어들고 싶은 한편 세상과의 소통을 갈망하는 양가적 욕망을 탑의 상징에 투영했다. 작품마다 차곡히 쌓아 올린 시간을 낯선 타인이 목격하여 주기를 바라며 거듭 자신의 감정을 선으로 땋아 내리는 일이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품은 채 창밖으로 머리카락을 드리우는 라푼젤의 마음처럼.
앞에서부터 ‘검은 탑’(2023), ‘검은 탑 ― 화이트’(2023) 연작, ‘공간지속, 리듬_왜소은하’(2023). 보라리 개인전 ‘왜소 은하’(2023). 경민현대미술관 전경. 보라리 제공, 사진=임장활
‘검은 탑’의 표면은 저마다 다양한 밀도의 선으로 채워진다. 뜨개질 연작에서 그랬듯 선의 짜임새를 유동적으로 조율하며 작업했다. 가느다란 선의 연약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대조적으로 단단한 면이 필요하다. 느슨한 짜임새의 탑은 주위 환경을 투과하여 보여 주며, 조밀한 짜임새의 탑은 보다 온전히 메워진 벽면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모양새다. 해당 연작을 제작하는 작가의 시선은 또다시 무척 작은 규모의 세상을 바라본다. 무릎 위에서 실타래를 엮어내던 최초의 시간을 복기하듯 말이다. 선을 쌓기 위해 움직이는 작가 자신의 팔 길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조그만 탑들 또한 더욱 커다란 규모의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쌍둥이 유령들: ‘그림자’와 ‘공백’에 관하여

3D 펜으로 그린 ‘검은 탑’ 연작과 ‘검은 탑 ― 화이트’(2023) 연작은 첫눈에 쌍둥이처럼 닮았으나 사실 서로 완전히 상반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후자의 흰색 탑들은 전자의 형태를 3D 스캔한 뒤 모델링 작업을 거쳐 3D 프린터로 출력한 결과값이다. 그러니 흰색 탑은 검은 탑의 알맹이다. 필라멘트 선이 지나간 자리 이면에 남겨진 공백의 모양새다. 달리 말하면 그리지 않은 여백의 공기를 주물로 떠낸 덩어리다. 흰색 탑은 검은 탑의 내면이고 영혼이다. 등 뒤의 그림자이자, 살갗 아래의 살덩이다.
뜨개질로 만든 작품을 설치 중인 보라리 작가(2013). 일현미술관 전경. 보라리 제공
부피를 지닌 선은 언제나 부피 없는 쌍둥이 유령과 동행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적인 존재라서다. 유령은 종종 그림자이고 때로 여백이다. 보라리가 잠시간 캔버스 위 평면으로 돌아와 제작한 회화 연작 ‘파낸 자리’(2023)는 선 이면의 그늘과 공백에 관한 관심사에 기반한 작업이다. 스스로가 제작한 특정 설치 작품의 그림자 생김새를 본떠 화폭에 옮겨냈다. 그늘이 닿지 않은 자리의 공백은 화면 위 또 다른 조형 요소로서 채색된다. 선의 존재감에 가리운, 손에 잡히지 않는 빈자리의 모양을 포착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선이 있어 여백이 존재하듯이 여백이 있어야 선 또한 생겨날 수 있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얹는다기보다 오히려 얹힌 물감을 덜어내는 감각으로 붓을 움직인다. 파내듯 새겨내듯 집요한 정성으로 유령 같은 그림자를 독립된 하나의 물성으로서 재탄생시키는 일이다.

작업 자체가 선과 공간의 관계를 끝없이 조율하는 일이기에 보라리에게는 “공간 자체가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조형 요소”이다. 물리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작품 내에서 선이 차지하는 공간과 그러지 않은 공간을 동시에 지칭하는 개념으로서다. 가끔은 채운 자리만큼이나 비운 자리의 모양이 중요하고, 빛나는 형상보다 그것이 만들어낸 그늘이 아름다워서 그렇다. 화면 속 얼기설기 엉킨 형상이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 같고, 무언가 머물다 간 흔적 같다.

박미란 큐레이터·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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