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탓에 발 묶인 ‘러시아산 헬기’…산불 진화 어쩌나 [주말엔]

정상빈 입력 2023. 12. 3. 09:02 수정 2023. 12. 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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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11시 반쯤 발생한 강원도 홍천 산불 진화 작업에 헬기(CH-47)가 투입됐다. (사진제공 : 산림청)


■ 건조하고 강한 바람에 산불 발생 우려…대규모 피해 없어

날이 참 건조합니다. 살을 에는 칼바람까지 부는 겨울이 됐습니다.

건조한 날씨와 잦은 강풍이 산불 발생 위험을 키우면서 봄철 못지 않게 전국적으로 산불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달(11월)부터 강원도에만 7건, 전국적으로 24건의 산불이 산발적으로 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규모 피해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산림청과 소방, 지자체가 신속하게 진화한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산림청의 산불 진화 주력헬기 ‘카모프 헬기’ 가 불을 끄고 있다.


■ 러시아산 '카모프 헬기' 산불 진화 효과 톡톡

그 노력의 중심엔 헬기가 한몫하고 있습니다. 산림청의 산불 진화 헬기인 카모프 헬기(KA-32) 덕분입니다.

러시아산 카모프 헬기는 강풍에 안정적인 데다 물을 채우기 수월해 산불 진화에 특화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을 품을 수 있는 담수량도 국산 산불 진화 헬기인 수리온보다 1,000리터나 더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산림청은 산불 진화 헬기 48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29대를 카모프 헬기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생산한 카모프 헬기(KA-32)


■ 전쟁으로 러시아산 헬기 가동 중단…산림청 '한숨'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카모프 헬기 가동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카모프 헬기의 주요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 러시아 군수 기업인데, 헬기 부품이 미국의 경제 제재 대상에 포함된 겁니다.

산림청은 급한대로 소방과 해경 등에서 헬기 부품을 빌려썼지만, 정상적으로 헬기 가동을 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산림청은 외교부 등과 협의를 통해 미국에 헬기 부품은 제재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 정부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지난 6월 헬기 부품 수입에 대한 특별허가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러시아에서 헬기 부품과 기술자 수급이 불가능해지면서 10년마다 대대적인 점검을 받아야 하는 카모프 헬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른바 '10년 점검' 대상이 된 카모프 헬기도 늘어나면서 산림청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10년 점검’을 받지 못해 가동을 못 하는 카모프 헬기 (사진제공 :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실)


현재 산림청에서 '10년 점검'을 받아야 하는 헬기는 5대입니다. 이 헬기 모두 점검을 받지 못해 가동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봄…발 묶인 러시아산 헬기 3배로

문제는 사계절 중 산불 피해가 가장 큰 '봄'입니다.

산림청은 내년 2월이면 추가로 헬기 9대가 정비를 받지 못해 가동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두 14대의 카모프 헬기가 가동 불능 상태가 되는데, 산불 위험이 연중 가장 높은 시기에 산림청 산불 진화 헬기 석 대 중 한 대 꼴로 산불 현장에 투입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10년 점검’을 못 받아 엔진과 날개 등을 떼어낸 헬기. 떼어낸 부품은 다른 헬기 정비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다.(사진제공 :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실)


산림청은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10년 점검'을 받지 못한 헬기에서 사용이 가능한 부품을 떼어내고 있습니다.

떼어낸 부품은 엔진부터 날개까지 다양합니다. 이 부품들은 가동 가능한 헬기에 장착돼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경훈/ 산림항공본부 항공정비과 기술통제팀장
"수명이 남은 부품들은 지금 저희가 다른 헬기에다가 장착해서 충분한 점검을 거쳐서 사용하고 있고요."

이마저도 모자라 민간 업체에서 헬기 부품을 사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헬기 부품은 여전히 모자라, 산림청은 산불 피해가 크지 않으면 산림청 헬기 투입을 가급적 자제하고 있습니다.

■산림청, 미국 등지에 헬기 7대 임차…"진화 역량 문제 없어"

산림청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내년 2월부터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헬기 7대를 임차하기로 했습니다.

산림청은 "임차 헬기가 러시아산 헬기보다 담수 능력이 뛰어나다"며, "봄철 산불 진화 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임차 헬기 대수가 가동이 중단되는 러시아산 헬기보다 7대나 적다는 겁니다.

특히 봄철에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헬기 숫자가 많아야 동시에 여러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데, 신속한 진화가 가능할지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유태정 극동대학교 교수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촬영기자 : 최진호)


■ 헬기 임차도 임시 방편…국산 헬기 역량 강화가 대안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관계 기관의 체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유태정/ 극동대학교 헬리콥터운항학과 교수
"육해공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형헬리콥터하고 수송기를 산불 취약 시기에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합니다. 국산 산불 진화 헬기인 수리온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국내 첫 다목적 헬기로 생산된 수리온은 카모프 헬기와 비교하면 산불 진화 역량에서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강풍 등 열악한 환경에서 비행하는 능력과 담수 능력 등이 카모프보다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산림청이 산불 진화용으로 도입한 수리온 헬기는 1대뿐입니다. 산림청 전체 산불 진화 헬기의 2%에 불과합니다.

내년에 2대가 추가 도입될 예정이지만 수리온이 '카모프 헬기'를 대체할 수 없다고 산림청 실무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는 국산 수리온 헬기의 산불 진화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국산 헬기는 해외 헬기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대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후 변화로 산불 발생이 더 잦아지고, 피해는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습니다. 카모프 헬기 무더기 가동 중단 사태를 계기로, 외부 여건 변화에도 안정적인 산불 진화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고심과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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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빈 기자 (normalbe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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