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고대 백내장 수술로 시작된 안과 수술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2023. 12.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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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수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고대인들의 안과에 대한 관심과 수술에 대한 기록

“의사가 눈 수술을 하여 눈을 살려 내면 10세겔을 받는다”

기원전 2250년경에 제작된 함무라비 법전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를 토대로 눈 수술이 아주 오래 전에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550년경 만들어진 에베르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도 백내장, 익상편 결막주름이나 섬유혈관성 조직이 날개 모양으로 각막을 덮으며 자라나는 안과 질환, 안근마비 등 다양한 안과질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고대 눈수술. 위키미디어 제공

고대 이집트에서 신격화된 파라오의 왕권을 보호하는 상징이자 건강과 치유를 상징하는 부적의 하나였던 호루스의 눈은 악의 신 세트(Seth)에 의해 찢어졌다가 나중에 지혜와 정의의 신 토트(Thoth)에 의해 마법적으로 복원되었다고 전해진다. 눈이 찢어지고 복원된다는 점에서 이미 눈과 안과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유추할 수 있다.

호루스의 눈. 위키미디어 제공

기원전 1400~900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리그베다(Ṛgveda)에 실명의 성공적인 치료와 시력 회복에 대한 내용이 있다. 실제가 아닌 은유적 표현으로 생각되지만 여기서도 눈과 안과 질환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 의학자 알크마이온은 사람의 눈을 연구하고 기록을 남긴 최초의 학자다. 그는 눈 외부에 공막과 각막이 있고, 중심에 액체가 들어 있는 동공에 의해 앞쪽으로 경계를 이루는 내부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또 시각 매체로 여겨지는 특별한 액체가 눈에서 뇌로 흐르는 관을 통해 눈이 뇌에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제자들이 쓴 『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눈이 두꺼운 외부 층, 얇은 중간 층, 가장 얇고 손상되기 쉬운 내부 층 등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는 (오늘날 시신경이라 할 수 있는) 눈과 뇌막을 연결하는 관의 존재를 주장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트라코마라는 감염성 결막염을 외과적 수술로 제거했다. 또 다양한 조각품에 안과적 질환이 드러나 있다. 의학 백과사전을 남긴 켈수스(Celsus, 기원전 25~서기 50)는 안과에 대한 내용도 기술해 놓았으며, 로마 시대에 안과를 발전시킨 인물의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시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수정체이고 백내장은 수정체와 홍채 사이의 불투명한 응결체라 생각했다. 

의안수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의안의 발전 

시력을 보장하지 못하는 인공 안구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겉모습을 좋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매년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이나 질병으로 눈의 기능을 잃고 있으며 많은 경우에 겉으로 보기에 손상이 생긴다. 인공 눈은 눈을 잃은 사람의 외모를 개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불어넣는 등 심미적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인공 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 남동쪽 샤르에수헤테 부근에 위치한 고대 도시에서 발견된 키 큰 여성의 유골에서 발견되었다. 이 눈은 자연산 타르와 동물 지방을 혼합하여 만든 반구형이며 표면은 얇은 금으로 덮여 있다. 이 눈은 특유의 빛을 발했고 이 키 큰 여성이 선지자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눈의 상태를 감안하면 제 수명을 다할 정도로 오래 살았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초에 이집트 성직자들은 안과 의사 역할을 했다. 이들은 안구에 사용할 보철물을 제작했고 색칠한 점토와 천을 이용하여 눈 근육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인공 눈을 제작했다. 전연성이 뛰어난 금을 이용하여 모양을 좋게 하고 빛이 나게 했다.

15~16세기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최초의 인공 눈이라 할 수 있는 얇은 껍질을 가진 의안을 개발했다. 안와 내에 안구를 심으면 겉모습이 좋기는 했지만 사용자는 불편하게 여겼으므로 그 후로 기술과 재료가 점점 발전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독일에서는 의안에 대안 연구가 일층 진보하여 1884년에 손실된 부분을 회복하고 보철물이 움직일 수 있도록 유리구를 자연 안와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을 지닌 독일 기술자가 미국을 여행하면서 기술을 전해 주자 미국에서 수백예가 시도될 정도로 유행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독일에서 개발한 유리 재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1943년부터 독일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수출이 중단되자 미국에서는 플라스틱 인공눈을 개발했다. 수요가 신제품 생산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공 눈은 플라스틱 아크릴로 제작한다. 이식된 인공 눈은 안와의 근육에 부착되어 손상되지 않은 눈과 유사하게 움직이므로 인공 눈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현재는 시신경이나 뇌의 시각 피질과 소통하는 첨단 마이크로전자공학을 사용하여 정상 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망막에 부착하는 다양한 임플란트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백내장수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긴 역사를 자랑하는 백내장 수술

백내장은 눈에서 빛을 모으는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흐려져서 시력이 떨어지는 질병이다. 일단 백내장이 발생하면 수정체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리는 방법은 없으므로 혼탁이 생긴 수정체를 제거하고 액체를 함유하지 않은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눈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백내장 수술은 놀랍게도 기원전 600~800년경 고대 인도에서 시도되었다. 의사로 활동한 수쉬루타(Sushruta)는 '수쉬루타 삼히타(Sushruta Samhita, 수쉬루타의 논문)'에 백내장 수술방법을 소개해 놓았다. 

그가 기술한 방법은 구부러진 바늘을 사용하여 렌즈를 눈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흐릿해진 수정체 부위를 젖히거나 제거하여 빛이 자유롭게 각막을 통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이런 시술을 시도하면 눈이 더 이상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 없으므로 시력 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흐린 수정체가 거의 모든 빛을 차단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눈은 붕대를 감기 전에 따뜻하고 투명한 버터로 적셨고, 수쉬루타는 청결함을 유지하고,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니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수술법은 중국으로도 전해져 수나라와 당나라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유럽에서는 2세기에 영화 '글래디에이터'에도 등장하는 당대 최고의 로마 의사 갈렌(Galen, Galenos)이 바늘 모양의 도구로 백내장이 발생한 수정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고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백내장 추출 방법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청동 구강 흡인 기구도 발굴되었다. 백내장 수술은 이후에 아프리카에도 전해졌으며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중세에 이슬람권에서는 눈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10세기 페르시아 의사 알 라지(Muhammad ibn Zakariya al-Razi)는 수술법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이븐알리(Ammar ibn Ali of Mosul)는 1000년 경에 백내장을 치료하기 위해 주사기와 흡입술을 사용했다. 이븐알나피스(Ibn al-Nafis)를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이 안과에 대한 책을 남겼고, 안과의사에 대해서는 면허제도가 시행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발전한 안과학은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다. 허쉬베르크(Julius Hirschberg)는 1905년 미국 의학협회에서 “중세 유럽이 암흑기를 보내는 동안 이슬람의학자들은 과달키비르(스페인)에서 나일강(이집트)과 옥수스(러시아)강에 이르기까지 안과학의 등불을 밝혔다”라는 연설을 했다.

특이한 점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전세계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하는 일반적인 의술과 다르게 백내장 수술이 한 곳에서 시작된 기술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 걸로 추측된다는 점이다. 동양과 서양에서 오래 전에 기술된 백내장 수술법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아주 유사하다. 

1707년 이베스(Charles Saint Yves)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백내장 추출을 시도했다. 1747년에 다비엘(Jacques Daviel)은 이베스의 방법을 개선하여 피막외 백내장 추출을 보급하는데 기여했다. 

둘 중 누가 유럽 최초로 백내장 수술에 성공한 의사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가 있다. 다비엘은 각막을 절개하는 방법으로 치료율을 훨씬 향상시켰다. 이후로 백내장 수술법은 점점 더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약 3,000만 건의 백내장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력교정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레이저를 이용한 시력교정술의 발전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뿜어내는 광선인 레이저는 오늘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의학에서도 암 치료와 눈 수술 등에 널리 이용된다.

948년에 콜롬비아의 바라퀘르(Jose Barraquer)는 미세각막절개술과 각막절개술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시력을 개선할 수 있게 했다. 1970~1980년대에 러시아의 파이오도르프(Svyatoslav Fyodorv)는 방사상 각막 절개술을 개발했고 최초로 후방 이식형 콘택트 렌즈를 사용했다.

1987년에 미국의 맥도날드(Marguerite McDonald)는 최초로 광굴절 각막절제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또 페이먼(Gholam Peyman)은 레이저 현장 각막절삭술을 눈 수술에 이용했다. 그는 1989년에 각막 모양을 바꿀 수 있게 고안된 레이저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1998년에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FDA)는 레이저를 이용하여 라식(LASIK, Laser-assisted in situ keratomileusis, 레이저보조각막절삭가공성형술)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후 레이저사이트 테크날러지 회사(Lasersight Technologies Inc.)가 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제조업체가 되었다. 라식 관련된 연구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페이먼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0년에는 각막에 얇은 판을 만드는 데 미세각막절개술이 사용되었다. 라식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각막의 두께가 어느 정도 유지되어야 한다. 얇은 각막을 가진 이들에게 시력교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광굴절각막절제술(Photorefractive keratectomy, PRK)을 실시한다. 

PRK 수술은 시력 이상이 있는 생긴 분들의 시력을 교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며 얇은 각막을 가진 이들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또 회복 시간이 짧아서 일상 복귀가 빠르고 효과가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레이저각막상피절삭가공성형술(라섹, LASEK, Laser epithelial keratomileusis)은 2000년대 이후 라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각막 상피판을 제거하고 각막 실질은 표면을 깎아내는 방법이다. 수술방법에도 점점 변화가 생겨 현재는 라섹과 PRK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졌다.

시력교정을 위해 어떤 수술을 할 것인지는 안과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을 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다. 무슨 병이든 치료를 시도했다가 후회를 하게 되면 인생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을 수 있으므로 정보는 충분히 얻되 결정은 당사자가 심사숙고하여 직접 결정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 참고문헌
Daniel M. Albert.(Editor) The History of Ophthalmology. Wiley-Blackwell. 1996
쿤트 헤거.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 이룸. 김정미 옮김. 2005. 
Clifford A. Pickover. The Medical Book. Sterling, New York. 2012.  
Christopher T. Leffler, Andrey Klebanov, Wasim A. Samara, Andrzej Grzybowski. The history of cataract surgery: from couching to phacoemulsification. Annals of Translational Medicine, Vol 8, No 22 November 2020, pp1-46.
NVISION 홈페이지. https://www.nvisioncenters.com/lasik/history-and-invention/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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