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포기? 퇴사 각오?…'육아휴직' 아빠들 괴롭힌 가장 큰 고민은
[편집자주] 스웨덴에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면서 육아의 적극적인 아빠를 '라떼파파(Latte PaPa)'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갈수록 육아를 위해 휴직을 선택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제도는 갖췄지만 기업 문화가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올해부터 '아이(童)를 낳고 기르기 위한 특단의 발상(Think)'을 찾아보고, '아이(童)를 우선으로 생각(Think)하는 문화' 조성을 위한 저출산 희망벨 '띵동(Think童)'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머니투데이는 주요 기업들의 남성 육아휴직 현황을 들여다봤다. 실제 남들보다 먼저 육아휴직을 사용한 '띵동파파(Think童+Latte PaPa)'들의 속내를 들어보고, 제도의 미비점도 살펴봤다.
머니투데이가 39개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기업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년대비 23.1% 증가했다. 분석 대상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48개 대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에서 직원수가 가장 많은 계열사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거나 남녀 육아휴직 현황을 따로 구분하지 않은 9개사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 "아직 갈 길 멀지만"..대기업 남성 육아휴직자 증가세
39개 대기업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20년 2741명 △2021년 3167명 △2022년 3899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의 경우 2년 전과 비교할 때 42.2% 늘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초 발표한 육아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는 38.1% 증가했다. 주요 대기업은 이 같은 증가세를 상회했다.
재계순위 1위인 삼성그룹만 하더라도 지난해 삼성전자의 남성 육아휴직자가 1310명으로 전년(999명) 대비 31.1% 늘었다. SK하이닉스(23.9%), 현대자동차(51.6%), LG전자(28.1%), 포스코(68.4%)의 증가율도 두드러졌다. SK하이닉스와 현대차, 포스코 등은 육아휴직 기간을 법정 기간(1년)의 2배인 2년으로 책정해 운영 중이다.
재계순위 6위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은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가 270명으로 전년(352명)보다 줄었다. 하지만 롯데는 남직원의 의무 육아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수치 변동에 큰 의미가 없다. 정부도 롯데를 대표적인 육아휴직 제도 우수기업으로 꼽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저출산 상황에서 육아휴직 대상자가 줄어든 결과"라고 말했다.
◆ 제도는 갖췄지만..아직도 눈치 보는 육휴
대기업을 중심으로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육아휴직 제도가 도입된 건 1987년이다. 남성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 건 1995년이다. 짧지 않은 역사지만, 남성 육아휴직은 여전히 '눈치 보고' 써야 하는 제도로 평가된다. 심지어 한국은 남성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이 1년으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길지만 사용률은 낮은 상황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육아휴직 통계 결과'를 보면, 2021년 기준 출생아 100명당 출생아 부모 중 남성 육아휴직자는 3.0명으로 여성(26.3명)과 큰 차이를 보인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가는 것에 대한 기업들의 불편한 시선과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선 설정에 따르면 경제적 부담 등이 작용한 결과다. 정부는 일·가정 양립에 적극적인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양성평등정책포럼에서 "가족친화적인 노동환경을 위한 제도적 외형은 갖춰져 있으나 실제 이용은 어려운 분위기"라며 "육아휴직 등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연령대와 고용형태, 기업규모, 지역별로 수요자 중심의 기업 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의 사례처럼 육아휴직을 '용기' 내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년대비 30.4% 늘어난 3만7885명이다. 6년 전과 비교하면 남성 육아휴직자는 약 5배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려면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이에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제도를 활용한 5명 아빠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 5명의 아빠가 전하는 '나의 육아휴직'
대기업에 다니는 B씨는 2021년 3월부터 6월까지 사내의 '초등 자녀 입학휴지기'라는 제도를 활용했다. 초등학교 입학 시기는 돌봄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만드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B씨는 사내에서 자녀 입학 휴지기 제도를 처음 활용했다. 그는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아이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C씨 역시 첫째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인 2019년에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썼다. 회사 차원에서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활용한 사례는 아니지만, 부서 내에선 첫 사례였다. C씨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위기가 많이 바뀌면서 지금은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많이 활용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D씨도 부서 내의 '1호 남성 육아휴직자'다. 2019년에 4개월 정도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모든 남성 육아휴직자가 그렇듯 회사 상황을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복직하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그는 "제가 육아휴직을 쓰는 걸 보고 비슷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건설사에 다니는 E씨는 2022년 1월부터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다행히 회사가 눈치를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약도 없었다. E씨는 "회사가 눈치를 주는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눈치를 보는 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스스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회사 눈치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고민
육아휴직을 쓴 '5명의 아빠'들은 "육아가 얼마나 힘든 건지 느낀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모처럼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 아내와의 갈등이 생긴 경우도 있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와의 특별한 추억을 되새기는 이들도 많았다. A씨는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이라며 "최근 둘째 아이가 생겼는데 내년에도 육아휴직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경험한 후 생긴 현실적인 고민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D씨는 "마음 같아선 (법정 기한인) 1년을 채워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주변에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E씨는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이 낮아 육아휴직 기간에 모아둔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빠육아 개선활동가인 김기탁 평론가는 "예전 우리의 아버지들은 무뚝뚝하고 무서운 존재였지만,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려고 하는 분들이 많다"며 "정부도 아빠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혜택을 주려면 확실하게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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