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예고 없는 심장마비도 막을 방법이 있다”
2021년 6월 덴마크 축구선수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핀란드와의 유로2020 조별라운드 경기를 하던 중 심정지로 쓰러졌다. 그라운드에서 빠르게 심폐소생술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에릭센은 이후 이식형 제세동기를 삽입하고 재활을 거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현재 경기 풀타임을 뛸 정도로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맥 환자들은 심장이 갑자기 멈춰 온몸에 혈액을 공급할 수 없는 급성심장정지(심장마비)가 일어날 위험이 크다. 심장이 멈춘 상태로 수 분 동안 지속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렇게 급성심장정지를 겪는 사람은 연간 3만 명이 넘는다. 이들 중 병원으로 옮겨지기 전에 목격자로부터 심폐소생술을 받아 살아나는 경우는 약 11.6% 정도다. 빠른 시간 안에 심폐소생술을 받아 후유증 없이 살아나는 사람은 약 4.4%다.
이식형 제세동기(ICD)는 이식형 제세동기는 외부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아도, 급성심장정지가 일어나기 전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부정맥 단계에서 인식해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한다. 심장이 분당 100회 이상으로 너무 빨리 뛰거나, 분당 60회 이하로 너무 천천히 뛰거나, 불규칙하게 뛰는 일을 감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애보트와 보스턴사이언티픽, 바이오트로닉, 메드트로닉 4곳에서 이식형 제세동기를 출시했다.
전문가들은 급성심장정지 위험이 큰 환자들에게 이식형 제세동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급성심장정지를 겪어보지 않은 환자는 이식형 제세동기 삽입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노승영 고려대구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이 2007~201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국내에서 이식형 제세동기를 이식한 환자 4649명을 분석한 결과, 한 번이라도 급성심장정지를 겪었던 사람은 3201명(68.8%)이었다. 한 번도 겪지 않은 환자는 1448명(31.2%)으로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부정맥 환자가 급성심장정지를 겪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식형 제세동기를 이식한 비율은 9.7%에 그쳤다. 고려대 구로병원 노승영 교수는 이같은 결과를 지난 2019년 6월 국제 학술지 ‘페이싱및임상전기생리학’에 소개했다.
지난 20일 서울시 구로구 고려대구로병원에서 만난 노 교수는 ”급성심장정지 위험이 높아도 겪어보지 않은 환자들은 기기 삽입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 쉽다”면서도 “하지만 급성심장정지는 예고 없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심장사 위험이 높은 환자들을 병원에서 선별해 이식형 제세동기를 삽입한다면 이런 심장마비사를 상당수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노 교수와의 일문일답.
- 이식형 제세동기는 어떤 기기인가. 또한 어떤 환자들에게 이식형 제세동기가 필요한가.
“암 중에서도 비교적 예후가 좋은 갑상선암이 있고 치명적인 췌장암이나 백혈병이 있는 것처럼, 부정맥도 심각한 위험이 없는 것이 있고 한 번만 발생해도 사망에 이를 만큼 위험한 것이 있다. 심장이 펌프질하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혈액을 보내는데, 심장이 멈추거나 떨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런 질환을 치명적인 부정맥으로 본다. 특히 심장에서도 혈액이 나가는 곳인 심실에서 부정맥이 일어날 경우가 치명적이다.
이식형 제세동기라고 해서 늘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전기충격을 가해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제세동기와 같은 역할을 ‘몸속에서’ 한다. 치명적인 부정맥이 나타날 때 이것을 감지하고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한다.
급성심장정지를 겪었던 환자들은 대부분 이런 기기가 필요하다고 인지하고, 이 기기가 없으면 불안해하기도 한다. 반면 급성심장정지 위험은 있지만 한 번도 겪지 않았던 환자들은 몸속에 기기를 삽입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심장이 한 번 멈추는 일만으로도 생명을 잃을 수 있고 심장마비는 예고없이 일어난다. 국내에서 연간 약 10만 명 중 60명이 급성심장정지를 겪는다. 사고사와 외상을 제외하고 심장질환으로 인한 경우가 40~50명 정도다. 만약 이들이 이식형 제세동기를 삽입하고 있었다면 상당수가 생명을 구하지 않았을까.”
- 이식형 제세동기를 실제 보니 크기가 명함보다도 작다. 몸속에 어떻게 이식하는지 자세히 설명해달라.
“이식형 제세동기 삽입은 굉장히 안전한 시술에 속한다. 합병증이 심각하거나 빈번하지 않고, 병원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소마취나 수면마취를 한다.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40분~1시간 정도 걸린다.
메드트로닉이 출시한 이식형 제세동기 ‘코발트XT’를 예로 들면 환자가 자주 쓰는 팔의 반대쪽 쇄골 아래 피부를 5~6cm 길이, 약 1cm 깊이로 절개하고, 본체와 배터리를 넣는다. 그리고 심장 쪽으로 가는 혈관인 쇄골하정맥에 얇은 선 한두 개를 넣는다. 이 선은 심장에서 부정맥이 발생하는지 모니터링 하고, 전류를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식형 제세동기 배터리는 약 10년 동안 쓸 수 있다. 이후 배터리를 갈아주는 시술이 필요한데, 10~15분 정도 걸릴 만큼 첫 번째 시술보다는 훨씬 덜 힘들다.”
- 이식형 제세동기가 어떻게 부정맥을 인식하고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가.
쇄골하정맥에 심은 유도 전극선이 365일 24시간 언제나 심장에서 부정맥이 일어나는지 감시하고 있다. 삽입 환자가 외래 진료를 오면 이식 부위 위에 ‘프로그래머’라는 기계를 올린다. 프로그래머를 코발트XT와 블루투스로 연결해 그동안의 기록을 살핀다. 부정맥이 발생했는지, 그렇다면 어떤 부정맥이 발생했는지, 그때마다 코발트XT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개발된 기기들은 심부전 환자들의 상태까지도 예측하는 기능을 개발해, 입원 위험이 큰 심부전 악화도 줄이고 있다.
이식형 제세동기는 부정맥이 발생하면 일단 여러 가지 알고리즘을 통해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부정맥인지 파악한다. 치명적이지 않은 부정맥이라면 일단 지켜보고, 목숨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이라면 정확한 계산을 통해 부정맥보다 더 빠르게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써 부정맥을 끝낸다. 만약 전류를 내보냈는데도 부정맥을 끝내는데 실패한다면, 다시 조금 더 센 전류를 흘려보낸다.
과거에는 이식형 제세동기에서 불필요한 전기충격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기쁜 일이 있거나 운동을 한 직후라서 평소보다 심박이 빨라졌는데 기기가 이를 이상 현상으로 감지하고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일을 방지할 뿐 아니라 전기충격(40J)보다 약한 전기(6~7J)를 흘려보내 부정맥을 끝내는 기능도 개발됐다. 코발트XT는 심박이 빨라질 경우 지금까지 환자의 심장 활동 데이터를 토대로 이것이 비정상적인 활동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이식형 제세동기에서 나오는 전기충격을 겪은 환자는 그 느낌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코발트XT는 전기충격을 꼭 필요한 순간에 최소한으로 내보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스마트 항빈맥 페이싱이라고 한다. 전기충격보다 약한 전기를 빠르게 반복적으로 내보내 전기충격 없이도 치명적인 부정맥을 끝낼 수 있다.”
-실제로 이식형 제세동기 덕분에 급성심장정지를 예방한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최근 전기충격 없이 스마트 항빈맥 페이싱 효과를 본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는 피부와 다른 장기가 딱딱해지는 전신 질환인 경피증을 앓고 있었다. 심장까지 섬유화가 진행돼 이식형 제세동기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프로그래머로 기록을 살핀 결과 지난 3개월 동안 부정맥이 무려 7~8번이나 일어났고, 그때마다 이식형 제세동기가 전기충격을 가하지 않고도 모든 부정맥을 안전하게 끝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이식형 제세동기는 급성심장정지 위험이 큰 환자에게서 부정맥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늘 감시하고 있다가 위급한 순간에 생명을 지켜낸다.”
참고 자료
Pacing and Clinical Electrophysiology(2019) DOI:10.1111/pace.1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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