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탓해, 전기차 산 네가 호갱”…‘망했다’ 욕먹던 일본차, 인기폭발?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입력 2023. 12. 3.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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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대망’
“HEV 망했다” 욕먹어도 인내
테슬라 탓·덕에 울다웃은 일본
‘칼 품은 국화’ 토요타의 반격
‘인내의 화신’ 도쿠가와 이에야스, 렉서스 ES, 테슬라 모델3 [사진출처=일본 웹사이트, 토요타, 테슬라]
“여기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다. 두견새를 울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든다”(도요토미 히데요시) “울 때까지 기다린다”(도쿠가와 이에야스)

칼이 지배하던 16~17세기 일본에서 가장 유명했던 세 인물의 성격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단, 정사(正史)가 아니라 나중에 각색된 야사(野史)입니다.

이 중 한명은 우리 민족에게는 ‘철천지원수’입니다. 임진왜란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죠.

일본 CEO들의 롤 모델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망 [사진=동서문화사 책 표지]
이번 ‘세상만車’ 내용은 그의 밑에서 굴욕을 버티며 인내한 끝에 대권을 차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관련 있습니다.

이에야스는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정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로 유명해졌습니다. 책 많이 읽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을 정도입니다. 국내에서는 ‘대망’(大望)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이들 3명은 제각기 다른 성향으로 일본을 지배했습니다. 노부나가는 ‘카리스마의 화신’, 히데요시는 ‘출세의 화신’, 이에야스는 ‘인내의 화신’으로 여겨집니다.

이에야스는 가문도 외모도 볼품없는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자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힘이 상대방보다 약한 상태에서 무모한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했습니다.

대신 히데요시의 압박을 요리조리 피하며 임진왜란에 자신의 군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힘을 비축했죠. 히데요시가 죽자마자 그의 가신그룹을 전멸시키고 권력을 장악, ‘에도막부’ 시대를 열었습니다.

일본 무가 정권 중 가장 오랫동안 존속됐고 평화로웠던 300여년 막부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에도는 오늘날 일본의 수도 ‘도쿄’입니다.

“노부나가가 쌀을 찧어 히데요시가 반죽한 떡을 이에야스가 먹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도 조선을 침략하지 않은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대망은 일본에서 기업경영 지침서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현대 기업 경영자들이 이들 3명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이에야스라고 합니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중 누구를 후계자로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일본 최고경영자 대부분은 이에야스라고 답했다고 하네요.

이유는 리더십 특징에 있다고 합니다. 막부를 300년 동안 안정되게 유지할 기틀을 마련한 그의 리더십을 배우고 싶어서라고 하죠.

기업 경영에 비유하면 300년을 지탱할 미래 먹거리를 찾아내고 지속경영 동기를 부여한 최고 경영자인 셈입니다.

일번인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명저인 국화와 칼, 축소지향의 일본인 [사진=을유문화사, 문학사상 책 표지]
‘대망’을 읽다보면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 연구서 ‘국화와 칼’에 나오는 내용이 떠오릅니다.

이에야스는 ‘칼 품은 국화’입니다. 겉 표정(다테마에)은 웃지만 속마음(혼네)을 드러내지 않고 칼을 갈을 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날선 칼을 휘둘렀습니다.

이에야스의 삶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가 되기도 합니다.

칼이 지배하는 시대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는 사무라이 칼에 목숨이 날아가는 일본 전국시대 혼란기의 생존 전략이 일본인의 유전자로 계승되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칼’이 지배한 전국시대 조상들의 생존전략인 다테마에와 혼네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일까요.

날이 바짝 서있는 폭력적인 칼을 숭상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며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다도(茶道)도 즐기는 복잡한 일본인들의 정신세계가 엿보입니다.

“테슬라 때문에 망했다” 욕먹어도 인내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 차량 [사진출처=매경DB, 테슬라 웹사이트]
전기차(EV)와 하이브리드카(HEV)의 각축전을 보면 토요타 자동차에 이에야스가 오버랩(overlap) 됩니다.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차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카는 이에야스처럼 ‘새옹지마’를 겪었습니다.

대세가 된 것으로 여겨진 전기차로 굴욕을 겪으면서도 하이브리드카를 고수하며 ‘인내의 화신’이 됐습니다.

원래 하이브리드카는 ‘탈석유 시대’를 연 ‘원조 친환경차’입니다. 연비 좋고 조용한 하이브리드카는 완전한 전기차 시대가 올 때까지 ‘가교’ 역할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받았습니다.

‘하이브리드 제왕’ 토요타는 테슬라의 앞길도 터줬습니다.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를 키웠습니다. 머스크의 테슬라가 일으킨 전기차 돌풍이 태풍으로 위력을 키웠기 때문이죠.

테슬라는 1회 주행거리가 ‘위수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기존 전기차의 한계를 모델3로 극복했습니다. 가격경쟁력도 높였죠.

모델3 돌풍에 자극받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볼보, 포르쉐, 현대차, 기아 등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기차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전기차는 예상보다 빨리 하이브리드카 시대를 끝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브리드카는 ‘반쪽짜리 전기차’로 위상이 추락했습니다.

“이젠 테슬라 덕에 다시 살맛났다”
인기 하이브리드카인 렉서스 ES [ 사진출처=토요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테슬라 ‘탓’에 끝났다고 평가받던 하이브리드카가 부활했습니다. 이게 다 테슬라 ‘덕’입니다.

‘테슬라 붐’이 일으킨 폭발적인 전기차 성장세를 충전 인프라스트럭처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서 충전 걱정이 적은 하이브리드카가 주목받았습니다.

‘혁신의 아이콘‘이지만 품질 논란을 자주 빚는 테슬라와 달리 속 썩이지 않는 품질을 갖춘 일본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습니다.

“하이브리드카에 집착한 토요타는 이제 망했다”는 말도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하이브리드카가 다시 친환경차 대표주자를 차지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전기차 시대가 끝난 게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이브리드카가 부활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죠.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회장도 자신이 그동안 전기차에만 전력투구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줄곧 경고해 왔다면서 혼네를 마침내 드러냈습니다.

토요타 라브4 하이브리드와 테슬라 모델Y [사진출처=토요타, 테슬라]
지난 10월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토요타 회장은 최근 미국 수요의 둔화를 포함한 전기차 관련 어려움과 관련해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고 있다”며 자신의 입장이 옳았다는 뜻을 피력했습니다.

그는 자동차 산업이 단지 전기차만이 아니라 하이브리드카나 다른 쪽에도 계속 투자해 위험을 회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고 강조했습니다.

WSJ은 미국에서는 전기차 판매 동력이 떨어지고 하이브리드카 구매자가 늘고 있다며 토요타 회장이 “내가 뭐랬어, 그렇게 말했잖아”라는 순간을 즐기고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죠.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중고 전기차 가치는 떨어지고 있지만 중고 하이브리드카 가치는 강세를 보인다는 분석에 “그러게, 왜 벌써 전기차 사서 고생하냐”고 토요타가 힐난하는 것같은 환청도 들립니다.

“전기차 올인 아냐, 멀티 패스웨이”
렉서스 UX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토요타도 전기차 대세가 한풀 꺾이자 기회가 왔다며 그동안 인내하며 갈아왔던 칼을 꺼냈습니다.

사토 코지 토요타자동차 신임 사장은 지난 4월7일 진행한 해외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전기차 올인(all in)이 아니라 전동화 올인’ 계획을 밝혔습니다.

토요타는 글로벌 자동차시장 상황에 맞게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수소연료전지차(FCEV), 전기차(BEV)를 맞춤 출시하는 ‘멀티 패스웨이’(Multi Pathway) 전략을 추진합니다.

신재생 에너지로 생활이 가능한 지역,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지역, 전력 수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지역 등 세계 각지의 에너지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토요타가 전 세계 각지에서 자동차를 생산·판매중인 것도 멀티 패스웨이에 영향을 줬습니다. 토요타에 있어서도 북미, 중국, 유럽은 큰 시장입니다.

토요타 하이럭스 수소 연료 전지 프로토타입 파워트레인 [사진출처=토요타]
토요타 전체 판매대수 10대 중 6대가 이들 시장에서 판매됩니다. 전기차 전환이 빠르게 진행됐던 곳입니다. 테슬라의 주요 수익원인 탄소배출권도 활발히 거래됐던 곳입니다.

지금은 판매가 주춤하고 있지만 가격이나 성능에서 경쟁력이 높은 전기차가 나오면 시장 규모가 다시 커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토요타도 ‘전기차 메카’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2035년까지 북미·중국·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을 모두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토요타 차량 10대 중 4대는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판매됩니다. 무시못할, 아니 중요한 시장이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자동차 시장은 ‘일본차 텃밭’이기도 합니다.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차 점유율이 70%에 달하니까요.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려고 공들이기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전력 사정과 충전 인프라 등을 감안하면 전기차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장입니다. 하이브리드카 판매도 아직은 적은 곳이죠..

토요타 입장에서는 이곳에서는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카 판매를 늘리는 게 전략적으로 이득입니다.

마침내 ‘날 세운 칼’ 꺼내든 토요타
PHEV 시스템 [사진출처=토요타]
토요타가 2030년까지 전기차 30종을 출시해 350만대를 팔겠다는 목표에서도 전기차에 올인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토요타는 지난해 1048만대를 판매했습니다. 2030년에도 판매대수가 비슷하다고 가정할 경우 전체 자동차 판매대수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33% 수준에 불과합니다.

일본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토요타는 2030년에 글로벌 시장에서 1400만~1500만대를 판매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기차 비중은 23% 수준에 머뭅니다. 4분의 3 가량은 다른 전동화 모델 몫인 셈입니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와 일본 정부가 그동안 전기차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이유는 일자리 감소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도 토요타가 앞으로 상당기간 전기차에 올인할 수 없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토요타 협력업체는 4만개 이상입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이나 하이브리드카보다 부품이 적게 들어가 일자리를 위협합니다.

토요타에는 전기차 게임체인저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고체 배터리’라는 무기도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해 안전성과 성능을 개선해줍니다. 화재 걱정도 충전 걱정도 덜어줍니다.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1000개 이상 보유했습니다. 자동차·배터리 관련 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토요타는 10분 충전하면 1000km 갈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빠르면 2027년 전기차에 탑재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토요타 계속 웃을까
토요타 알파드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하이브리드 제왕’에서 ‘전동화 제왕’으로 거듭나려는 토요타의 멀티 패스웨이 전략이 성공해 계속 영광을 누리게 될 지는 모릅니다. 이에야스 막부도 ‘영원히’ 존속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충전·안전 문제와 보조금 축소 등으로 전기차 성장세가 주춤하자 “내가 뭐라고 했어”라며 그동안 감춰왔던 혼네를 드러낸 토요타 회장의 웃음소리가 당분간은 들릴 것 같습니다.

두견새가 스스로 울 때까지 기다린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에야스처럼 다시 ‘혼네’ 상태로 돌아가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토요타의 ‘칼 품은 국화’ 전략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 패권을 두고 싸우는 전쟁에서는 전략·전술을 최대한 감춰 상대가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오판하게 만드는 게 승리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야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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