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방귀뀌려 성내기, 대동강 주인행세… 퇴출할 여의도사투리
국민에 속내 감추려는 이해타산 결과물
지대추구, 무책임 언행, 내로남불 수단
조국 소개한 "범죄자 변명기법" 닮기도
與 내로남불-김선달式 지분싸움 눈살
5000만 권력에 겸손, 실체있는 정치를
"여의도에서 (국회의원) 300명만 쓰는 고유의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 나는 나머지 5000만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 지난달 2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대전 일정에서 '여의도 사투리'를 겨냥해 주목을 끌었다. 5000만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선출된 공직자들에게 '전 국민 공통으로 쓸 수 있는 말'(표준어)을 요구하고, 자신도 실천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천 여부는 지켜볼 일이고, 어쨌든 사투리 자체를 비하한 건 아닐 것이다.
서울 한복판인 여의도에서 전·현직 고관대작들이 국민들의 직관을 회피하고, 속내를 알기 어려운 화법으로 일관하는 건 문제다. 각 지방 사투리는 지역 개성과 역사를 담아 자생한 것이다. 하지만 여의도 사투리는 정치인들의 이해타산이 만들어낸 '은어(隱語) 문화'에 가깝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란 격언이 있는 만큼 직언·즉답·비타협만 고집할 수는 없지만, 부정직·무책임함을 '정치문법'으로 포장하는 기만이 확대재생산되는 건 명백한 폐해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쪽지예산'등 지대추구에 이용하고, 피감기관 감사·질의를 저잣거리 시비·갑질 수준으로 전개하며 '국민 대표'를 강변한다. 비례대표 의석 산식(算式)을 '국민이 알 필요 없다'고 하고, 총선 출마를 물으니 '비(非)사법적 명예회복'이란 수사로 비켜간다. '암컷 설쳐', '어린 놈 건방진 놈' 등의 막말을 쏟아내고도 검찰혐오나 탄핵 등 진영논리 뒤에 숨고 보편을 가장해 타인을 공격한 잣대를 자신 앞에선 부러뜨린다.
이 정도면 그나마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뻔뻔함이나 난도(難度)가 더해지면 기출변형이 된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3년 10월 트위터(현재 'X')에 "범죄자들의 변명기법. 1) 절대 안 했다고 잡아뗀다. 2) 한 증거가 나오면 '별 거 아니'라 한다. 3) 별 것 같으면, '너도 비슷하게 안 했냐'며 물고 늘어진다. 4) 그것도 안 되면 '꼬리자르기' 한다"는 내용의 글을 리트윗했었다.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 일부의 사법리스크 대응에 비춰볼 만한 얘기다.
지난달 29일 법원에선 2018년 야당 울산시장 후보에 대한 하명(下明) 수사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1심에만 3년10개월이 걸렸고, 5년여 판단이 지연됐다. 사건 당시 울산경찰청장이었던 황운하 민주당 의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기로서 당선 혜택을 본 송철호 전 울산시장 등은 실형 선고에 "검찰의 편향된 주장만 수용했다"고 법원을 비난했다.
여당도 다를 게 없다. 지난달 16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당무에) 대통령을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인 위원장이 그 전날 윤석열 대통령 측으로부터 '소신껏,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하자 발끈했다. 지도부·친윤·스타 중진 희생 요청엔 침묵하던 그는 25일 울산 지역구 의정보고회에서 '대통령과 자주 만나 3시간 프리토킹하고, 하루 3~4번도 전화한다'고 했다. '방귀뀌려 성냈나' 싶을 정도다.
앞서 당권경쟁 때 '김·장연대'를 이뤄 경쟁 후보를 공격했던 대통령 최측근이, 자신이 '희생' 요청 대상이 되자 "권력자가 뭐라고 해도 저는 제 할말을 하고 산다"고 '간증'하는 일도 있었다. 인 위원장에게 "미스터 린튼", "우리와 같아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씀하시는 분" 등 차별언행 논란을 부른 정치인은 부산엑스포 유치 오판(誤判)을 사과한 윤 대통령에겐 "이분이 사과할 줄 아는 분이구나"라고 비판했다.
'봉이 김선달 식' 정치도 만연하다. 조선후기 설화에 등장하는 김선달은 주인 없던 대동강을 사기 매각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김선달은 대동강 강물을 길어가던 물장수들에게 접근해 '물을 지고 갈 때마다 내게 엽전 1냥씩 던져달라'면서 웃돈을 얹어 줬다. 그 다음날부터 평양성 동문에 앉아 물장수들로부터 한닢씩 던져 받거나, 빈손인 이를 꾸짖는 모습을 연출했다. 실체도 없는데 그를 '대동강 소유권자'로 착각한 한양 상인과 계약해 4000냥을 가로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대구로 향해, 온라인 설문지 형식으로 수만을 모았다는 연락망 지지자들과 만났다. 그는 연설에서 "막연하게 대구를 칭송하진 않겠다"고 했다. 발언 중에도 "(2021년 6·11 당대표 경선에서) 관성에 따라 과거를 찬양하고 '박정희 공항을 만들겠다'던 상대후보와 다르게 싸가지 없게 저는 '탄핵의 강'을 넘자고 했고, 약속했던 대선승리를 이뤄냈다. 저는 당당하게 그 실적을 가지고…(후략)"라고 말했다.
'대선승리가 내 실적'이라는 게 골자로 보인다. 대선승리에 부분 기여했을 순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제20대 대선 국면에서 '두번 가출'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당대표이면서 '선거대책위원회'를 떠났고, 윤석열 대선후보가 재편한 '선거대책본부'엔 합류하지 않았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추진엔 소극적이었다. 3·9 대선 본투표 전날 라디오에서 "많게는 10%(포인트)까지"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제칠 거라고, 선거결과에 비해 터무니없는 공언을 했다.
2021년 6월3일 전당대회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이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면서도 "대통령에게까지 형사적 책임이 이르는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당 밖의 윤 대통령(당시 후보)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탄핵 정치인과 수사 검사를 굳이 갈라놓고 볼 유인이 친박·전통적 지지층에 있었나.
불과 0.73%포인트 득표율차로 신승했지만 윤 대통령은 1639만4815표로 '역대 득표수 최다 대통령'이 됐다. 적어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정치인들이라면 '지분 싸움'을 능사로 여길 게 아니다. 하물며, 국민에게 선출됐거나 위임받은 임무도 없이 '권력의 주변'에 있을 뿐인 인물들은 숨죽이고 지내는 게 맞다고 본다. 여의도 사투리라는 구태와 함께 정치무대에서 아예 퇴장하면 더 좋다.
한편 일반국민은 윤 대통령에게 '신중한 국정'을 당연히, 끊임없이 요구할 수 있다. '역대 최다득표 낙선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1614만7738표)를 정치적으로 충분히 예우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여의도 사투리로 치부할 게 아니라 5000만 국민을 바라본 정치문법으로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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