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銀, 홍콩 ELS 평균 8000만원···사라진 교훈 반복되는 눈물[김영필의 SIGNAL]

김영필 기자 2023. 12. 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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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변하지 않는 상품판매와 투자문화

[서울경제] 이 기사는 2023년 12월 2일 19:37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KB국민은행은 지금까지 얼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을까. 고객의 행복은 얼마나 찾았나. ELS 사태로만 놓고 보면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국민은행 홈페이지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일 논란이 커지고 있는 홍콩H지수 편입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해 “은행 직원조차도 무슨 상품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70대 이상 고령층에게 복잡한 고난도 상품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적합한가”라며 “은행들이 자기 면피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홍콩 H지수 ELS 사태가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2021년 상반기 1만2000선을 넘었던 홍콩 H지수가 이날 5761.73까지 떨어지면서 대규모 원금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ELS의 만기가 보통 3년이라 2021년 상반기 가입분이 문제가 되는 셈이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ELS만 5대 은행 기준 8조4100억 원에 달한다.

불완전판매는 철저히 가려내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시장과 국민들에게 어떠한 교훈도 남지 않았다. 왜 고객들의 눈물이 반복되고 있을까.

“KB 현재 약 2.2조 손실 전망 불완전판매 가려내 억울한 일 없어야”···“다만, 2008년 금융위기도 안 일어날 것 같은 일 벌어져”

홍콩 H지수발 ELS 태풍의 한 가운데 있는 KB금융(105560)지주 산하 KB국민은행은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ELS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집계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재 약 5조 원으로 H지수의 반등이 없다면 지금 기준으로 40%, 약 2조2000억 원 수준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KB의 경우 홍콩 H지수 ELS 가입 고객이 수만 명에 달한다. 이들의 평균 보유금액은 약 8000만 원이다. 고객 규모도 규모지만 금액도 크다. 수만 명이 수천 만 원에서 수억 원 안팎의 손실을 볼 수 있다. 초대형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KB뿐만 아니라 하나금융지주(086790) 산하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 등도 마찬가지다. 은행별로 ELS 가입고객의 90% 이상이 1회 이상 투자경험이 있다지만 상당 수는 한두 번 문제 없이 상환 받는 것을 보고 별다른 고민 없이 재투자했을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과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K씨는 2021년 2월 NH농협은행에 ELS 8000만 원을 투자했다가 400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최근 통보 받았다. 그는 별다른 상품 설명이나 H지수 변동에 대한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은행 직원이 원금 보장은 안 되지만 그럴 일이 별로 없다고 해 가입한 사례도 적지 않다.

여기에 주목할 대목이 있다. 실제 금융계에서는 “2021년 당시 홍콩 H지수가 12000이었는데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반토막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상당히 무책임한 발언이다. 월가에서 가장 어려운 게 거시경제 전망이다. 내년 지수 전망도 누구 하나 정확히 맞추는 사람이 없다(맞춘다면 떼돈을 벌 것이다). 날고 기는 인재들이 모였다는 월가가 그렇다. 금융의 역사에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생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새로 KB금융지주 수장에 오른 양종희 회장은 KB국민은행의 ELS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연합뉴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대표적이다. 2001년 9·11 테러와 닷컴버블 붕괴를 겪은 미국 정부는 주택경기 부양을 위해 장기 모기지 대출을 늘렸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도 덩달아 증가했다. 당시 월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묶어 부채담보부증권(CDO)까지 만들어 팔았다. 특히 금융공학을 통해 쓰레기 채권이 초우량 ‘AAA’ 신용등급 채권으로 탈바꿈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A는 혼자 있으면 돈을 갚을 확률이 10%, 연체할 확률이 90%다. 이런 A가 둘 있으면 두 사람 모두 돈을 갚은 확률은 1%(0.1×0.1)로 떨어지지만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도 갚을 확률은 18%(0.1×0.9+0.9×0.1), 둘 다 연체할 가능성은 81%가 된다. 사례가 더 늘어날수록 모든 사람이 연체할 가능성은 감소하고 일부는 언제나 받아낼 수 있게 된다. 금액은 적더라도 반드시 받아낼 수 있으니, 해당 금액만큼은 초우량이라고 쪼개 팔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주택경기의 끝이 찾아왔고 서브프라임 대출 연체율이 치솟았다. 수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던 CDO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 전역에서 동시에 연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위기가 터지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 보험사 AIG는 CDO가 부도나면 이를 보상해주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을 통해 수수료 수입을 올렸는데 CDO가 망가지면서 AIG에 보상 요구가 쇄도해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결국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CDO를 팔아치웠던 월가 이들만큼 AIG도 이게 부도가 나겠느냐고 자만했던 것이다.

숫자놀음의 끝이 이렇다. 특히 H지수 ELS가 원금손실 위기에 처했던 것도 처음이 아니다. 2015년 5월 1만5000선이었던 H지수가 약 7개월 만에 8000선 아래로 폭락해 원금손실이 가능한 녹인(knock-in) 구간에 진입했다. 다행히 2018년 H지수가 1만2000선을 회복하면서 탈 없이 끝났지만 이미 뚜렷한 징조는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2021년 적극적으로 H지수 ELS를 팔았다면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2015년의 H지수 ELS 위기나 그 전의 사태의 교훈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예금처럼 안전하고 수익 높은 상품은 현실에 없어···“저축은행 후순위채·동양그룹·DLF 사태까지 끊없이 반복”

따지고 보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늘 위기의 연속이었다. 글로벌 경기도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19 침체까지 위기는 되풀이된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는 부채 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진단한 바 있다. 신용확장에 따른 거품과 그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가 찾아오는 일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홍콩 H지수가 반토막 나겠어요?”라거나 “씨티은행이 망하겠어요?(씨티는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같은 말은 특정 시기는 유효할 수 있지만 언제나 들어맞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장의 대형 위기는 자주 발생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다.

안타까운 점은 국내에서도 금융상품 관련 사건이 많았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인 1999년 7월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대우그룹 채권을 편입한 펀드에 대한 환매 요구가 봇물 터지듯 터졌다. 대우채를 편입한 펀드는 110조 원으로 정부는 '8·12 환매 연기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정부는 그해 11월 환매 때는 원금의 80%, 그 다음 해 2월에는 95%를 환매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동양오리온투자신탁은 수천 억 원의 고객 손실을 보전해주기도 했다.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대사건이었다.

1998년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이헌재 전 부총리는 자신의 책 ‘위기를 쏘다’에서 “나도 (대우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장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대마불사. 대우 같은 큰 기업이 쉽게 망하겠느냐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투자자들도 설마 했던 셈이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동양그룹, DLF 등 숱한 사태에도 국내 금융사와 고객들의 투자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하지만 그 뒤에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2005년 우리파워인컴펀드 사태를 거쳐 2012년 저축은행 후순위채와 2013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회사채 사태를 겪고도 투자자들에게 많은 교훈이 남지 않았다. 당시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매입한 개인투자자는 약 4만1000명, 피해금액이 1조6000억 원이었다. 이후에도 DLF를 비롯해 라임 같은 사모펀드 사태가 연이어 터졌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 때만 해도 연 9~10% 안팎의 금리를 주는 후순위채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이들이 많았다”며 “예금처럼 안전하고 원금이 보장되면서 수익은 두세 배 많은, 그런 상품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술적으로는 금융당국이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판매 사태 이후 2020년부터 은행별로 파생상품 총량규제를 도입한 것이 국민은행의 ELS 판매 쏠림 현상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있다. 은행의 탐욕에 대규모 손실 사태와 불완전 판매가 반복된다는 비판도 있다.

사기성 판매는 반드시 잡아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십 년 간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데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감독당국의 적극적인 분쟁조정이 스스로 책임지고 투자하는 문화를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금융교육도 관건이다.

대통령실과 금감원이 은행권의 이자장사를 크게 나무라고 있지만 은행의 수익원은 예대마진과 수수료, 크게 두 가지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자를 덜 받게 하면 은행은 수수료 장사에 주력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ELS 사태의 재현일 수 있다.

물론 이자도 수수료 이익도 못 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이 수익을 제대로 못 내 적자를 내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갈 수 있다. 시중은행의 몰락은 기업과 자영업자, 서민 대출 회수로 이어지게 된다. 금융결제시스템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이는 국가 경제의 혈관이 막히는 것과 같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ELS 사태는 피해 규모와 관련자가 너무 많아 은행들이 불완전판매나 귀책여부를 가려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도 “금융사뿐만 아니라 국내 투자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도 사태 반복에 한몫”···“은행서는 대규모 손실 가능 상품 취급 제한”

정리하면, △홍콩 H지수 사태의 불완전판매는 철저히 가려내야 하지만 △투자자들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위기를 간과 △이제라도 자기투자 책임의 원칙을 명확히 세울 필요 등이다.

자기투자 책임과 관련해서는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말도 있다. 여러 번의 실패에도 금융사도, 투자자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만큼 물리적으로 완전히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고령층에게 ELS를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특정상품과 대상을 지정해 막는 투박한 방법보다는 은행의 경우 손실을 보더라도 원금의 80~90%는 건질 수 있는 상품만 취급할 수 있도록 하고 위험성과 수익이 큰 상품은 증권사에서 팔 수 있도록 구분 짓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ELS는 80~90% 확률로 정기예금보다 더 (수익이) 나오고 10~20% 확률로 손실이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품”이라고 했는데 뒤집어 보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으면 매우 높은 확률로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상품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의 M2 추이.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사람들을 고위험 상품으로 내몬 측면이 있다. 한국은행

하나 더 봐야 할 것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다. 고객들이 위험 대비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계속해서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부분이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2000년 전만 해도 연 5%를 넘었지만 이후 계속 하락세를 타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췄고 이후 약 15년 간 저금리를 유지해왔다. 예금과 국채금리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레 고객들은 더 높은 수익을 줄 수 있는 상품을 찾았다. 코로나19 셧다운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한 2020년에는 다시 한번 연준이 무제한 양적완화(QE)와 제로금리를 했고 연방정부는 각종 보조금을 나눠줘 시중에 돈이 넘쳐났다. 나스닥과 암호화폐 등이 폭등한 이유 중의 하나다.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1년 광의통화(M2) 평균잔액이 739조 3370억 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722조 7872억 원까지 불어났다. 넘치는 돈과 낮은 금리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더 높은 수익을 찾게 만들었다. 홍콩 H지수 ELS가 날개 돋치듯 팔린 2021년의 경우 정기예금이 연 1~2%였는데 ELS는 3~4%를 받을 수 있어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상호금융사의 예탁금과 1000만 원까지 비과세가 되는 출자금에 뭉칫돈이 몰렸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오랜 시간 동안의 저금리와 넘치는 유동성이 사람들을 겁 없게 만들었다”며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찾다 보니 계속해서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것 같다”고 봤다.

ELS 사태로 은행만 때려 잡는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잘잘못을 따져 문제가 발견되면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고 묻지마 상품 판매 관행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지만, 자기책임 원칙과 남지 않는 교훈, 시중의 유동성 같은 큰 그림을 같이 봐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의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책임을 어떻게 나눠지는 게 옳은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김영필의 SIGNAL’은 서울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 시그널(SIGNAL)을 통해 제공됩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이슈와 뒷이야기, 금융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다룹니다.

김영필 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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